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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재난을 마주했다. 일상의 회복을 향한 갖가지 노력과 정부대책이 세워졌으나, 여성노동이 저평가 되고 있던 사회에서 재난을 마주한 여성노동자는 해고 1순위에 처하고, 정당한 가치 인정 없이 가정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돌봄노동을 모두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재난위기 대책이 논의 되고 있는 것에 문제제기 한다. 코로나19를 마주한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와 삶터에서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는지 <해고·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기획을 세워 총 13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해 여성의 현장 상황을 알리고자 한다.[기자말]
[이전 기사: 코로나19 위기, 지금 왜 '여성노동자'인가?]

*이 글은 ○○재가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김수정(가명)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재가복지센터(아래 센터)는 요양보호사를 어르신 집으로 파견하는 재가와 방문목욕, 어르신들을 송영(아침에 모셔오고 저녁에 모셔다 드리는 과정)하여 센터 내에서 돌보는 주간보호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나 오전 9시 30분이 되면 어르신들이 건물 4층에 위치한 센터로 속속 들어오신다. 센터가 위치한 지역에 사시는 어르신이 가장 많지만, 인접해 있는 다른 지역에서도 오신다. 100평 규모 센터의 주간보호 대상자 정원은 36명이다. 1월 말 한국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뒤 조금씩 확대양상을 보이자 안 오시는 어르신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2월 18일 우리 대구 지역에서 슈퍼 확진자가 나왔다. 센터에서는 소독을 강화하고 아침 입소부터 간호선생님이 하루 세 번 체온을 체크했다. 열이 있으신 어르신들은 바로 돌려보낸다는 방침을 세운 참이다.

다들 마음 한켠 감염의 우려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특정 종교인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어서 정부 지침대로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발열 증세가 있는지 주의하면 괜찮으려니 생각했다. 주말에 열이 있거나 구토를 하는 어르신들이 생겼다. 지역 보건소로 달려갔지만, 보건소 내부에서도 확진자가 나와 문이 닫혀있어 검사를 받을 수 없었다. 할 수없이 보호자한테 상황을 말씀드리고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2월 마지막 주가 시작되었다. 휴원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원장님께 건의를 드렸더니 지역 내 휴원하는 다른 센터들이 많지 않으니 좀 지켜보자고 하였다. 수요일 밤, 열이 있던 어르신이 확진판정을 받았다며 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날부터 한 달 가까이 두려움과 답답함이 우리 모두를 훑고 지나가며 예측할 수 없는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어차피 임금은 최저임금... 경력 인정도 안 돼

사회복지사로 근무한 지 5월이면 만 3년이 된다. 처음에는 대상자 집을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방문하여 재가어르신을 상담하는 방문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지금은 주간보호 업무를 맡고 있다. 주간보호를 제공하는 센터는 대상자 7명당 요양보호사 한 명이 있어야 하고, 사회복지사, 간호사(간호조무사), 조리원, 운전기사는 필수인력이다. 운전기사를 제외하고 일하는 분들은 모두 여성이다.

30대가 가장 젊고 대부분 경력단절을 한번 겪고 다시 취업한 40~60대 여성들이다. 요양병원이나 다른 요양 시설에서는 사회복지사가 중간관리자 역할을 한다지만 우리 센터에서는 역할만 다를 뿐 위계는 없는 편이다. 어차피 임금은 모두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고, 오래 일한다고 해서 호봉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다른 곳으로 가도 경력이 임금으로 책정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라고 하지만 전문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경력 단절된 뒤 다시 일을 시작하는 여성들이 선택하는 직업은 비슷하다. 우리 센터에 있는 분들도 요양보호사지만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180만 명 중에 여성노동자는 150만 명이나 된다. 여성들이 집중된 일자리치고 임금이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일자리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나는 아직 학업을 마치지 않은 작은 애와 완전한 독립을 하지 않은 큰애, 그리고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엄마를 모시고 산다. 내가 버는 돈은 딱 우리 가족 생활비이다. 저축을 못 하니 기댈 곳 없는 처지에 노후에 대한 걱정이 한 번씩 올라온다.

쉴 수가 없던 자가격리 기간

주간보호 대상자 중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즉시 휴원 조치가 내려졌고 우리는 정말 미친 듯이 대상자 집에 일일이 전화해 알리고 구별로 나눠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보건소로 달려갔다. 증상이 없으면 검사를 못 해준다는 걸 '확진자가 나왔고 접촉을 했다'며 전화를 수십 통 걸고 예약을 해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다행히 음성판정이 나왔지만, 어르신을 비롯한 몇 명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모두 14일간의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엄마랑 같이 내가 근무하는 센터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다니지 못하고 갇혀 있으니 엄마 증세는 안 좋아졌다. 음식은 배달시키거나 집에서 해 먹었다. 자가 격리를 해야 했을 때 한편으로 이참에 미뤄둔 일도 하고 좀 쉬자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증세가 심해지는 엄마를 살펴야 했고, 식사 시간은 도돌이표같이 반복되었다. 세끼를 해 먹으려니 매번 뭘 해 먹을지 난감하고, 배달을 시키니 늘어가는 일회용품에 마음이 불편했다. 집 안에만 있어야 했던 2주간은 정말 정신적으로 힘겨웠다. 자가 격리가 끝나자마자 엄마를 차에 태우고 근처 산 주변을 마음껏 드라이브했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가중된 돌봄을 넘어서니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왔다. 3월을 며칠 앞두고 센터가 휴원을 해 2월 급여는 그대로 받았다. 3월은 모두 무급휴직이었다. 14일 자가격리자로 등록이 되었지만, 격리가 시작된 3일간의 급여를 받았다며 14일 자가격리자에게 지원되는 생계자금을 받을 수 없었다.

3월은 무급이라고 구청에 전화하면 시에 전화하라 하고 시에서는 유급으로 받은 게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안 된다는 소리만 되풀이할 뿐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후 시에서 지급하는 긴급생계지원자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구청에서 얘기해 줘 기다렸다. 그런데 자가격리자로 등록이 되어 중복지급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의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할 수 없이 생활금 대출을 신청했다. 화도 나고 불안하고 슬펐다.

정부나 시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을 모두 알아봤는데 사업주가 일정 정도 부담하고 서류를 발급해 주거나 신청해야 해서 사업주 같은 경우에는 안 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지원정책도 종류가 많고 복잡하다. 중복신청이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다. 받는 사람이나 행정적으로나 품이 너무 많이 든다. 어느 국가처럼 단순한 절차로 모두 지원해주면 좋겠다. 이후에 세금으로든 환수를 하면 되지 않을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센터는 3월 27일부터 긴급돌봄으로 주간보호를 다시 시작했는데, 온다는 어르신은 7명뿐이었다. 앞으로 이 사태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데, 원장은 기존 인원을 유지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도 다달이 원장이 300만 원 인건비를 부담해야 했다. 한 달 전에 신청을 해야 해 4월부터 실시한다면 5월이 되어야 고용유지지원금 휴업수당의 70%(이후 4개월은 90% 지원으로 변경됨) 지원이 나온다. 원래대로 회복이 되려면 연말쯤 되어야 가능할 것 같았다.

모두 모여서 의논을 하였다. 원장은 충분히 상황을 설명하고 센터가 정상화되면 제일 먼저 다시 부르겠다고 하였다. 실업급여를 받을 사람과 휴업수당 70%를 받고 휴직할 사람을 정했다. 제일 나중에 들어온 요양보호사가 나가기로 했다. 다른 곳에서는 근속이 오래된 사람부터 내보낸다고 하던데 우리는 반대로 했다. 오래된 사람이 어르신과 유대관계도 더 잘 형성되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모두 센터의 어려운 상황을 알고 실업급여로 버티는 편이 낫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요양보호사 3명과 운전기사 1명이 권고사직 되었다.

긴급돌봄하는 요양보호사 2명과 간호조무사, 조리원은 출근하고 나는 5월부터 출근하기로 하였다. 엄마를 긴급돌봄 신청해서 보내고 나니 여유가 좀 생긴다. 너무 힘들 때는 동생한테 잠시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올케도 회사 일에 집에 있는 아이 둘에 지지고 볶는데 엄마까지는 안 될 말이다.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한 상황임에도 돌봄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위해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았음에도 출근을 하고 있다. 재난상황에서 돌봄노동을 해야하지만 어떻게 하는것이 맞을까, 고민하게 된다.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한 상황임에도 돌봄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위해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았음에도 출근을 하고 있다. 재난상황에서 돌봄노동을 해야하지만 어떻게 하는것이 맞을까,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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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은 하지만, 아직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 다시 똑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더 잘 대처할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확진된 어르신 중 기저질환이 있는데 치매가 있어서 관리가 안 되니까 입원을 안 시켜줬다. 보건소에 계속 입원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또 한 어르신은 대화가 안 되는 치매이다. 우리가 대신 마스크를 받을 수가 없다.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백신이나 치료제도 없는데, 얼마만큼 버틸지 사업주한테도 너무 치명적이다. 스스로 관리가 안 되는 어르신 대상으로 손 씻기며 '마스크 써라' 를 계속 해야 하는 생활방역체계가 제대로 될지...

이런 사태를 겪고 나니 재난이 왔을 때 돌봄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데, 공동의 돌봄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집에서나 밖에서나 여성에게 맡겨지는 돌봄은 전염성 바이러스가 닥쳤을 때 생명과도 직결되는데, 왜 이 일을 하는 우리는 먹고살기도 빠듯할까? 혼란스럽다. 코로나19 이전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판을 바꾸는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 [상담] 코로나19 관련 여성 노동상담 : 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tel.1670-1611(전국공통) /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담전화 tel. 1644-1884(전국공통)
* [참여] '코로나19가 여성의 임금노동과 가족 내 돌봄노동에 미친 영향' 설문조사 : https://bit.ly/2020womenworker

*다음 기사: 재택근무 하자마자 월급 줄어... 콜센터상담원이 겪는 이중고

태그:#요양보호사, #돌봄노동자, #해고 돌봄 1순위, #여성노동자, #임금차별타파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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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코로나19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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