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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폭탄실험의 북한에 간 일본인

통일된 한반도를 기대하며
17.09.17 00:07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한반도의 정세가 날로 긴박함을 더해 가는가운데 일본 정부와 언론은 그 분위기에 편승해 자극적인 발언과 보도로 일본 국내에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시기에 나고야 거주의일본인들이 지난 9월2일부터 7일까지 평양을 방문했다. 언론에 비쳐진 모습 이면에 담겨진 북한의모습을 보고 배우기 위해 계획된 이번에 방북에 참가한 후지이 가츠히코씨의 방문기를 본인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번역, 게재한다. 후지이씨는 오랫동안 나고야를중심으로 빈곤, 반전, 평화운동을 해왔고 이번 방북도 그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문 중 북한에 대한 명칭은필자 본인의 요청에 의해 '조선' 혹은 '공화국'으로 표기한다)

후지이 가츠히코(부전(不戰) 네트워크 운영위원)

평양시내 모습 평양시내 입구(멀리 3대헌장탑이 보인다) ⓒ 후지이 가츠히코

'북일 교육/문화교류 추진 아이치 모임(이하 '아이치 모임')'의 주선으로 세 명의 참가자가 베이징을 경유해서 9월 2일부터 7일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혹은 '공화국')을 방문했다. 우리를 맞아준 곳은 '조선대외문화연락협회(대문협)'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국소속 국원 두 명의 안내를 받았다.
나는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그 결과 한반도가 분단된 것에 대해 일본인으로써 책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젊을 시절부터 한반도의 현실에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한국에서 '촛불혁명'으로 문재인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정말 기뻤고 취임연설과 5.18기념식 연설을 들으면서 눈물을흘리기도 했다.
조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많은 일본인은 조선이 나쁜 나라라며 늘 손가락질하고 차별하는데, 이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정도이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평양시내 모습 평양 지하철 부흥역 개찰구 ⓒ 후지이 가츠히코

평양시내 모습 승객을 가득 싣고 달리는 무궤도전차와 버스.(왼쪽이 무궤도전차) ⓒ 후지이 가츠히코

일본에 알려진 '미래과학자거리'의 빌딩숲 뿐 아니라, 평양시내에는 꽤 넓은 지역에 걸쳐 고층빌딩이 들어서 있었다. 시가지로는 버스, 무궤도전차, 노면전차가 달리고 택시도 적지않게 볼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지하철이 동서남북으로 달리고(거리는 길지 않은 것 같다), 철도도 있다. 부탁을 해서 타보게 된 지하철은대단히 깊었는데, 지하철이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탄 지하철 내부는 조명이반 정도만 켜 있어서 약간 어두웠지만, 책을 읽지만 않는다면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본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예요"
'과학자거리'에 있는 46층 건물의 10층에 있는 가정을 방문했다. S씨(54세, 대학교수), P씨(50세, 사무직)와 딸(25세, 대학원생, 컴퓨터 관계의 교사희망) 3인가족.  2014년 10월에 아파트가 생겼을 때 입주했다는데, 침실을 포함한 5개의 방을 모두 보여 주었다. 주택비, 수도, 광열비 모두가 무료(국원의 설명으로는 난방은 온돌, 냉방은 지열을 이용하고 있다. 또한 조선은 사회주의국가이기때문에 주택, 의료, 교육은 무료). 이 곳에 이사오기 전의 집은 1986년에 입주했는데 넓이가 그곳보다 두 배 정도 된다고 한다. 장보기는 1층에 있는 일용품점을 이용한다. 딸이 결혼해도 방이 많기 때문에함께 살 생각이다. P씨의 취미는 가까운 대동강변을 산책하거나 이웃과 생일파티를 하고 수다를 떠는 것이다. P씨에게 일본에 대해 어떻게생각하는지를 묻자, "식민지 지배를 하고 고통을 줬기 때문에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반 인민과는 구별합니다"라고. 딸에게 일본인에게 하고 싶은말이 있냐고 하자, "제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북일간 국교가 정상화된다면 "(방문단장인) 다케우치선생을 만나러 일본에가고 싶다"라며 생긋 웃었다.

평양시내 모습 미래과학자 거리의 아파트. 이곳에서 대학교수인 S씨댁을 방문했다. ⓒ 후지이 가츠히코

판문점과 개성에 가다

평양중심가를 나와 거의 직선도로를 달려 남으로 2시간정도일까? 채소밭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옥수수밭이 나타났다. 합동농장의 형식으로 작업반을만들고 있다고 한다. 시가지와 달리 울퉁불퉁한 길가에는 가끔 몇 사람이 도로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아주 드물었고 사람들은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주위에 주택이 보이지 않았는데, 조선은 산이 많아서 평지는되도록 논밭으로 이용하고 주택은 산쪽에 짓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에 주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력은 수력과 화력이 중심인데대체에너지 이용도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판문점 도착. 인민군 병사가 한국전쟁 정전회담이 이루어진 장소로 안내를 해 주었다. 정전회담은 1951년 7월 10일부터 개성에서 시작되었는데, 10월 25일에 이 곳으로 옮겨 2년간 718회의 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다음은 조인식 장소로 갔는데, 미국이 옥외 천막에서 갖자고하였으나 김일성 주석이 제대로 된 장소에서 할 것을 주장해 이 건물을 5일만에 지었다고 한다. 미국이 갖고 돌아가지 않아그대로 남아 있는 유엔깃발을 촬영. 정전협정 후, 정전협정 위반문제 등의 군사회담은 1만회 이상 있었다고 하는데 1991년 3월 25일 이후 미국이 물러나고 한국이나온 뒤로 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편 안내해 준 병사는 싹싹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 일본(인)은 조선을 어떻게 보는지, 아베정권은 어떤지 등을 싱글싱글웃어가면서 물어오기도 했다.

판문점 판문점에서 필자 ⓒ 후지이 가츠히코

한반도의 통일국가인 고려(918-1392)의 수도였던 개성에서는 당시의 유교교육기관이며 세계문화유산인 고려성균관의 건물을사용한 고려박물관과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왕릉을 방문했다. 개성공업단지가 운영되고 있다면 꼭 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수소폭탄실험 당일에도 평온한 모습의 평양
3일 평양에서 판문점, 개성으로 가는 도중 차 안에서 국원이 "수소폭탄실험이 성공했다"고 알려주었다. 개성에서도 평양에 돌아와서도우리가 보는 거리 풍경에 특별히 달라진 모습은 없었다. 7일 아침 평양공항으로 향할 때 공원같은 곳에서 십 여명의 여성들이 치마저고리를 입고 춤을 연습하는것 같은 모습이 두 둔데 정도 있었는데 그것이 핵실험성공 축하 준비인지, 9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69주년 축하 준비인지는 알 수가 없다.

평양시내 모습 나들이옷을 입고 있는 여성들 ⓒ 후지이 가츠히코

핵실험을 화제로 일순 긴장된 분위기

4일 저녁, 대문협 일본국장이 우리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환영회를 열어 주었다. 국장은 "이런 어려운 시기에 와 줘서기쁘다. 일본에서는 조선에 대한 비난과 공격만 일삼는데 여러분들의 눈으로 똑바로 현실을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인사했다. 답례로 방북단장인 다케우치씨가"공화국이 놓여있는 상황은 이해하고 있다. 얼마 전 유엔에서 핵무기금지조약이 채택되었는데 일본정부는 많은 국민의 바람을 거스르고 반대를 했다. 일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을 경험을 했기때문에 핵무기금지의 요구가 크다. 그런 상황에서 공화국이 핵실험을 한 것에 대해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인사했다. 그러자 바로 국장은 "일본인이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경험했다고 하는데조선인도 똑같이 피폭을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거의 무시하고 있다. 단장은 이해해달라고 하지만조선이 왜 핵무기개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하는 것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적대세력이조선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호한 말투로 응답했다. 다케우치 단장이 "공화국의 핵무기는 타국을 공격하는것이 아니고,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답변해 짧은 언쟁은 마무리되었다.
단장의 요청으로 발언하게 된 나는 "조선이 나라의 자립, 자주, 독립을 위협받는 상황에 있고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해 미국과 대화,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여러분들의 조국을 분단시킨책임이 일본에 있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환영회에 대해 우리 방북단도 귀국 전날 답례연을 열었다.

평양시내 모습 평양산원 입구 ⓒ 후지이 가츠히코

평양시내 모습 강가에서 낚시를 즐기는 시민들 ⓒ 후지이 가츠히코



일본은 한반도 통일 방해하지 말아야

정말 많은 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과학기술전당,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이 도시락을 지참해 즐기는 중앙동물원, 체육인 종합식료공장, 백화점, 널뛰기를 활용한 연기가 많은평양 교예극장 공연, 조선혁명박물관, 채소전용농장, 농장단지, 유치원, 어린이 전용 옥류아동병원, 류경안과종합병원, 소학교, 그리고 우리의 요청으로 간고구려 고분군. 인민군 병사 외에는 사진촬영도 기본적으로 자유였다.
한 장면이 떠오른다. 평양역 앞에 아주 가늘고 긴 비닐하우스같은 것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했는데 대중적인 술집이라고할 수 있겠다. 노래방도 있다고 들었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평양을 느낄 수 있었다. 대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없는지라는물음에 안내해 준 국원은 "그것은 예전부터의 과제"라고 말했다. "사회주의라고 하더라도 각 나라의방식이 있다"라고도 했다. 조선식사회주의라고 하는 제도 안에서, 조선민중은 주택, 의료, 교육을 무료로 보장받는다. 차가 없으면 묵묵히 걷거나자전거를 이용한다. 몇 사람이 수작업으로 도로보수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서로 도우며 살아 가는 모습이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하루빨리 조선과 대화를 개시하고, 현재의 군사분계선을 만든 휴전협정을 항구적인 평화협정으로 바꾸길 바란다. 평화헌법을 갖고 있는 일본이야말로미국이 그렇게 하도록 설득을 해야만 한다(다만 그 전에 조선과 국교정상화를 해야 하지만).
한반도가 통일되어 모두가 손을 잡고 살아갈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바라고 그려본다. 일본은 결코 그것을 방해해서는안된다.

평양 평양에서 방문했던 S씨 댁에서 필자 ⓒ 후지이 가츠히코

평양시내 모습 개선문에서 바라본 평양시내(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공존하고 있다) ⓒ 후지이 가츠히코

평양시내 모습 평양시가지. 고층건물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 후지이 가츠히코

(번(번역: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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