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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현실을 마주하다
어려운 현실도 보고, 현장에서 만들어가는 다양한 시도에 희망도 보다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 판단하면 자칫 치명적인 오해와 착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물 안에 머물고 있으면서 우물 밖에 나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인식론적 겸손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경험도 상대화하고 언론 보도도 한번쯤은 의심해봐야 합니다.

청년아카데미에서 현장을 찾아 나서는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현장을 만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입니다. ‘진실’은 단순히 정보가 아니라 눈물과 웃음, 고뇌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삶 자체입니다. 현장의 목소리에는 현장의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네 곳의 현장을 탐방했습니다. 더운 여름 저녁시간에도 직장인이나 청년대학생들 15명이 모였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전철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세 친해졌습니다. 각 사람에게는 눈이 두 개 뿐이지만 우리에게는 서른 개의 눈이 있으니 더없이 풍성하고 다채로운 탐방이 되리라는 기대도 생겨났습니다.

넘을 수 없던 벽 오르는 담쟁이처럼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어떤 곳인지 ‘대충’ 알 수 있습니다. 반올림에서 회사 측에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기사 제목을 딸깍(클릭)해서 들어가봅니다. 삼성과 가족대책위가 합의를 했는데도 재협상을 요구한다는 내용입니다. 반도체 피해자 가족들이 반올림과 결별했다는 기사도 상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삼성의 우선 보상에 관해 피해자 가족들 간에 의견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철 2호선 강남역 8번 출구 앞 반올림 천막 현장에 ‘진실’을 들으려고 찾아갔습니다. 앞서 읽었던 기사가 기업의 입장을 받아쓰기했다는 점, 은폐·축소한 부분에 담긴 기업의 교묘한 수법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속으면서 살아온 것일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첨단산업이라고 알려져 있고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한다던 반도체산업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그림자가 있는데 반도체 노동자들이 일하던 중에 백혈병 등의 병에 걸려 젊은 나이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심각한 점은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적당히 돈을 주어 입막음하려는 기업의 태도였습니다. 반올림이 시작된 것은 2007년입니다.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기업과의 힘겨운 싸움을 오랜 시간 해온 것입니다.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벽을 마치 담쟁이넝쿨이 자라가듯 조금씩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딸과 아들처럼 희생되는 사람을 막아야겠다는 피해자 가족과 반올림 활동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청년들, 사회를 견인해가다


두 번째 탐방은 <무중력지대 대방동>입니다. 1호선 대방역 3번 출구로 나가면 주말농장 한 켠에 주황색 컨테이너 몇 개로 지은 건물이 보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편안하고 자유로운 넓은 공간이 펼쳐져있고 2층에는 사무실마다 창의적인 단체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010년 ‘청년유니온’에서부터 시작된 흐름이 청년연대은행 ‘토닥’,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라는 청년운동단체로 이어졌고, 서울시와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서울청년의회’라는 민관 협업의 경험도 쌓였습니다. 무중력지대 대방동은 서울시와 청년단체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청년 자치 공간입니다. 그러나 서울시가 청년들을 위해 마련해준 공간이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 처한 문제상황을 풀어가기 위해 발로 뛰어 만들어낸 성과였습니다.

20~30대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N포 세대, 청년실업, 청년부채 등 우리 사회가 도와야 할 약자가 되어 있습니다. 실제 적지 않은 청년들이 대학등록금, 주거비용 마련을 위해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고 있으며, 졸업 후에는 1년 이상을 취업 준비하며 보냅니다. 그나마 얻은 곳은 계약직, 비정규직이고 그마저도 얻지 못하면 알바를 전전해야 합니다. 과거의 시선, 고성장시대의 눈으로 보면 오늘의 청년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조건 자체가 달라져 있음을 인정해야 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어느 세월에 풀릴 것인가? 결국 청년세대가 물꼬를 트고 우리 사회를 견인해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긴 세월이 걸려도 끝까지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26일에 시계가 멈춰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안산으로 향했습니다. 전철 4호선 상록수역 앞에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보장과 연장을 위한 서명운동을 도왔습니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던 시민들 다수가 서명해주고 상황이 어떤지 질문해오기도 했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가슴 아파하고 진상 규명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며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세월호 특조위마저 해산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찾아간 날은, 단원고 ‘기억교실’을 해체하기로 ‘합의’하고 교실에서 아이들의 유품을 정리한 날이었습니다. 2학년 9반 피해학생 어머님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전후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합의’가 합의가 아니라 정부와 교육부의 힘에 떠밀린 결과일 뿐이라는 것, ‘기억교실’은 우리 사회를 안전한 사회로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이었음을 가슴 아프게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왔는데도,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는 현실에 절망했고, 동시에 이 싸움이 제주4·3이나 광주5·18처럼 50년, 100년이 걸리는 것임을 마음에 새겼다고 했습니다. 그분들의 비장함이 우리 가슴에 전해졌습니다.

어깨동무할 친구만 있다면


네 번째 탐방 목적지는 <희년은행>이었습니다. 희년은행은 2014년부터 청년부채탕감운동을 해온 젊은 활동가들이 시작한 대안은행 만들기 프로젝트입니다. 희년은행은 담보나 신용이 아니라 활동하는 조합원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식, ‘관계 금융’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청년 부채를 청년세대 스스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돈 이상의 것, 함께 머리 맞대고 어깨동무할 친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희년은행 활동가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학자금 대출을 힘겹게 갚아가는 후배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현장에서 만들어가는 다양한 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가을에도 금요일 저녁마다 사회연대학교가 열립니다. 이번에는 도시재개발, 청년주거, 노숙인, 난민과 이주민, 대안교육을 주제로 다룹니다. 옥바라지선교센터, 민달팽이 유니온, 홈리스행동, 공익법센터 어필, 아름다운마을학교, 416가족협의회에서 듣게 될 ‘진실’이 무엇일지 기대가 됩니다. ‘진실’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새로운 만남과 관계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정인곤 |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며 보람된 일이라 생각해 활동가로 지내고 있습니다. 활동가가 운동의 역사를 함께 써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겨 역사 연구자로도 훈련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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