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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재배 수확기>작은 것이 아름답고 작은 고추가 맵습니다.
    시골이야기 2015. 11. 24. 16:57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고추가 맵다.’ 별 상관 없을 것 같은 이 두 문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저는 자연재배(자연농) 농산물에 어울리는 말인 것 같습니다. 비료나 퇴비를 넣어서 인위적으로 크게 키우지 않는 자연재배 농산물은 원래 그 종자가 가지고 있는 만큼만 자랍니다. 그래서 시중에서 판매되는 유기농이나 일반 농산물보다 작습니다.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다른 밭에서 비료를 듬뿍 먹고 비정상적으로 크게 자란 일반 농산물(특히 무)을 보면 요즘 징그럽다는 생각도 합니다. 자연재배를 몰랐을 때는 그냥 큰 것이 좋은 줄만 알았습니다.

     

    올해 마지막 농사인 무와 당근을 캤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지난 주말부터 무, 배추를 캐기 시작하길래, 우리 집도 비 그친 틈을 타 부랴부랴 무와 당근을 캤습니다. 두둑에 비닐도 씌우지 않아 풀과 함께 자랐습니다. 풀 속에서 당근과 무를 캐는 것을 보고 동네 주민들은 언제 당근까지 심었냐며 하루에 몇 번씩 지나다녀도 몰랐다고 말합니다. 그럴 법도 합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풀과 당근이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봄이나 여름에 키우는 감자나 고구마에 비해 무와 당근을 자연재배 방식으로 키우는 것은 좀 수월합니다. 봄, 여름에는 비닐 멀칭 하지 않으면 잡초를 잡아 주느라 거의 매일 밭을 들락날락 해야 하는데, 올 가을 초에 무와 당근은 심어 놓고 솎아줄 때만 빼고 한 번도 밭에 들어가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가을 작물은 풀이 자라는 속도보다 더 빨리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캔 무는 대부분 작습니다. 좀 큰 것도 4살이 된 둘째 녀석 허벅지 정도 크기입니다. 저는 이 무가 둘째 녀석 허벅지처럼 귀엽습니다. 무 씨앗이 가진 원래 크기는 이만했는지도 모릅니다. 비료를 듬뿍 준 다른 밭 무들은 제 허벅지보다 큰 것도 있습니다. 어느 밭에서는 알타리무가 너무 크게 자라서 못 먹게 됐다고 합니다. 자연재배 책에서는 이러한 비료와 퇴비를 많이 먹고 자란 농산물을 ‘비만’에 비유합니다. <기적의 자연재배> 저자 송광일 박사는 “질소를 편식한 고도비만에 걸린 농산물”이라며, 이러한 농산물을 먹는 우리 체질도 허약해 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자연재배를 알게 되면서 150여 평 정도 되는 텃밭에서 비료를 뿌리지 않고 경운을 하지 않은 지 2년이 됐습니다. 자연재배 농산물을 판매하는 분들은 대부분 5년 이상 무투입(밭에 아무 것도 넣지 않는) 원칙을 지킨 분들들인데 그에 비하면 초보 자연재배 농사꾼입니다. 판매 하지 않고 우리 가족이 먹거나 많이 수확하면 주위사람과 나눕니다. 판매하지 않으니 농산물의 크기가 작거나 수확량이 적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연재배 농사로 생계를 잇는 농민들에게는 이것도 걱정입니다. 더 많은 소비자들이 크기가 작은 자연재배 농산물의 가치를 알게 되면 이들의 생계도 좀 나아지겠지요.

     

    저는 무투입 2년 밖에 되지 않아 무와 당근 크기가 제각각입니다. 무투입을 했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뿌린 비료기가 땅 속에 남아 있으면 크게 자라기도 한다고 합니다. 5년 이상은 되어야 남아 있던 비료기가 빠지고 7~8년 정도 지나면 땅 속의 자연 생태계가 회복돼 자연 그대로의 영양분을 농산물에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캔 엄지손가락만 한 무를 보면서 ‘아직 내 밭이 자연으로 돌아가기는 멀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을 자연재배 시각으로 해석하면 무슨 뜻일까요? 실제로 먹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실제로 큰 고추보다 작은 고추가 맵습니다. 작은 고추뿐만 아닙니다. 비료를 넣어서 키운 일반재배 무 맛이 약간 싱거운 반면, 우리 집에서 키운 자연재배 무는 작지만 맛이 진합니다. 자연재배 당근을 흙에서 캘 때 향긋한 당근 향이 뿜어 나옵니다. 자연재배 당근 주스는 아무 것도 안 넣어도 정말 단맛이 강합니다. 자연재배 취재차 방문했던 농장에서 자연재배 사과와 포도를 맛 본 적이 있는데, 새로운 맛이었습니다. 자연재배와 자연음식에 관심이 많은 옆지기는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라. 비료를 많이 뿌려서 크게 키우기만 한 농산물은 내가 먹어도 맛이 심심해. 각각의 채소마다 가지고 있는 진짜 맛을 모르는 거지.”

     

    이날 캔 무는 땅을 파서 볏짚과 함께 묻어두었습니다. 올 겨울 가끔씩 꺼내서 무생채도 해먹고 김치도 담고, 무국도 끓여 먹을 겁니다. 우리 밭에서 재배된 자연재배 농산물은 판매하지 않지만, 전국의 자연재배 농가로부터 직거래해서 구할 수 있습니다. 홍성군 홍동군의 자연재배 농가들이 만든 ‘홍성자연재배협동조합’에서도 자연재배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꼭 한 번 자연의 진짜 채소 맛을 보시길 권합니다. 옆지기 말대로 ‘미각의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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