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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포 가야산을 걸으며 삶의 출구를 찾다
    떠나기 2015. 10. 16. 09:36



    삶이 뭔가에 가로막힌 것 같을 때, 가끔 산은 출구가 되어 줍니다.




    인적 없는 산길을 홀로 걷다보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깨닫게 됩니다. 깨닫는다기보다 내 안의 생각이 정리되는 것이겠지요.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산은 답을 찾기 참 좋은 공간입니다. 절이 도심 속이 아니라 깊은 산속에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요.

    며칠 전 뭔가 턱하니 삶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 가야산을 찾았습니다. 해인사 덕분에 경남 합천에 있는 가야산이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충남 예산군과 서산시에 걸쳐 있는 가야산도 오래된 역사유적을 간직한 명산으로 꼽힙니다. 경남 가야산은 국립공원이고, 충남 가야산은 도립공원입니다. 저는 충남 가야산이 더 좋습니다. 아무리 멋진 산이라 해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산이 좋은 법입니다. 충남도청이 이전한 내포신도시에서 가야산 등산로 입구인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까지 자가용으로 20분이면 충분합니다. 


    역사의 쓸쓸한 흔적, 남연군 묘 

    산길로 접어들기 전 흥선대원군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신라의 왕릉처럼 큰 무덤인줄 알았으나 묘는 높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경기도 남송정에 있던 무덤을 1846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 했다고 하니 명당 중에 명당인가 봅니다. 실제로 묘를 옮긴 지 7년 후에 태어난 차남이 12세 나이로 임금이 되었으며, 그가 고종입니다. 고종의 아들 순종까지 왕위에 올랐습니다. ‘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고 지목했던 지사(정만인)가 '2대 이후에는 화가 미칠 수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 되고 순종은 대한제국 황제로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는 불우한 왕이 됩니다. 

    역사 이야기를 한가지만 덧붙이면, 남연군의 묘를 옮겨오기 위해 흥선대원군은 가야사라는 천년고찰을 불태우고 탑이 있던 곳에 묘를 이장했습니다. 원래 가야산은 백제 때 상왕산으로 불렸는데, 신라가 통일한 이후에 이 산밑에 가야사를 세우면서 지금의 가야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합니다. 가야산을 중심으로한 산줄기를 가야산맥이라 불르지요. 이름의 근원이었던 절이 불타고 없다는 것 자체가 씁쓸함으로 다가옵니다.


    능선, 평야와 바다를 가르다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숨은 가파오지만 마음은 편안해 집니다. 단풍이 화려하지 않지만 낙엽이 수북히 쌓인 산길이 가을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알려줍니다. 첫 봉우리에 다다르기 전까지 오르는 길에만 집중합니다. 힘들더라도 그냥 한발한발 내딛습니다. 단순한 몸짓에 머리가 맑아집니다. 맑아진 머리로 이것 저것 생각하다보면 산 아래에서와는 다른 답을 찾습니다. 그리 단순한 답을 산 아래에서는 왜 찾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묵묵히 오르다보면 어느새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우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암석 앞에서 시야가 확 트입니다. 첫번째 정상, 옥양봉(621m)입니다. 이곳부터 600여 미터의 봉우리들을 지나는 능선이 이어집니다. 가야산은 예당평야와 태안반도를 가르는 가야산맥의 주봉입니다. 가야산맥은 충남의 남북으로 뻗어 동서를 가릅니다. 예당평야의 황금 들녘과 서해 천수만 바다를 양쪽으로 내려다보며 능선을 걷는 것은 가야산 등반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서해 낙조를 품은 운해가 가야산 경관 중 최고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날은 구름한 점 없는 푸른 가을 하늘이었습니다.




    산은 동적이지만, 숲은 정적입니다. 움직이다 멈추면 세상이 또 달라 보입니다. 




    정상보다 숲이 아름다운 산

    가야산 석문봉(653m) 정상석에는 '내포의 정기가 이곳에서 발원하다'라고 적혀있습니다. 내포는 홍성, 예산, 당진, 서산 등의 지역을 일컫습니다. 가야산은 내포지역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조선 후기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지역의 땅은 "기름지고 평평하면서 넓다"며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답니다. 그 이름을 따서 내포신도시가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삽교읍 일대에 들어섰습니다. 

    최고봉인 가야봉(678m)은 등산 진입로에서 만났던 남연군의 묘만큼이나 안쓰러웠습니다. 내포의 중심 가야산의 정상은 방송사 중계소 철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철조망으로 둘러 싸여 최고봉을 밟을 수 있는 영광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내리막 길을 걷습니다. 다만 가야봉에서 내려오다 만난 아늑한 숲에서 충분히 위로받았습니다. 넓게 펼쳐진 원시림에서 잠시 걸음을 멈춤니다. 산은 동적이지만, 숲은 정적입니다. 산은 오르든, 내려가든 몸을 움직이게 만들지만, 숲은 느리게 걷거나 멈춰 서 주위를 둘러보게 합니다. 움직이다 멈추면 세상은 또 달라 보입니다. 오래된 숲일수록 고요합니다. 고요함 속에서 나에게 집중합니다. 자연은 그런 것 같습니다. 자동차 소음이나, 도시의 인위적인 풍경은 그것들에게 신경을 빼앗기게 만들지만, 자연은 있는 듯 없는 듯 내 존재만 들여다 볼 수 있게 돕습니다. 


    산 아래에서 실천하기 



    오전 10시에 산을 올라 오후 4시 30분경에 하산했습니다. 낮의 대부분 시간을 산에서 보냈습니다. 10km가 넘는 산길을 걸을 수 있는 산이 동네 근처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명상하기에는 10km정도의 거리가 딱 좋은 것 같습니다.

    산에서 다짐한 것은 '작은 소재부터 매일 꾸준히 글을 쓰자'는 것입니다. 지금 그 다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신문사를 그만둔 뒤 뭔가 의미있고, 파급력이 있는 글(기사)을 써야겠다는 중압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미있는', '대단한' 글은 하루 아침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은 소재부터 꾸준히 쓰다보면 언젠가 더 큰 주제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은 소재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겁니다. 이 글도 읽는 분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 지 궁금하네요. 

    이번 글을 쓰면서 소재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뉴스가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글쓰는 대상에 대해 충실하게 접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가야산에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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