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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산다, 너와 내가 (2)
무경운 농법, 흙 속 생명들 이야기 읽은 소감

무경운 농법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흙 속 생명들의 조화 속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나는지에 대한 글 두 편을 읽고 짧은 글 한 편 썼습니다<편집자 주>.


다른 존재의 밥이 되는 삶

'서로 살리는 밥의 삶'은 내가 죽음으로써 너를 살리는 삶,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사는 삶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흙속 생명들은 몸소 '서로 살리는 밥의 삶'을 살고 있다. 자기가 죽으면 다른 생명들의 먹이가 되어 자기가 가진 양분을 내어주고, 죽은 뒤에 썩어 양분이 되기도 하면서 흙을 흙일 수 있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흙속 생명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의식해서 흙의 구조와 성분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먹잇감을 찾으려고 또는 자신을 지키려고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레 흙에게 영향을 준다. 자기 일상을 묵묵히 정성스레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들이 살고 있는 흙이라는 세상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그 흙이라는 세상이 있을 수 있게 한다는 게 놀라웠다.

"식물은 스스로 삼출액을 분비하며 균류와 세균들을 빨아들이지만, 식물의 생존은 미생물들과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있더라도, 흙속 생물들이 식물에게 필요한 양분을 주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전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따로따로 사는 존재인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흙 만지고 하늘땅살이 한다는 것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질서를 따라 살지 않겠다는 고백이고, 서로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생명의 순환에 내 몸을 맞기겠다는 고백인 것 같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남남으로 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원래 지어진 뜻에 맞는 것 같다. 서로 살리는 밥의 삶, 더 힘 있고 가볍게 걸어갈 수 있을 듯하다. - 주은


흙을 살리는, 흙을 살피는 농사

한 해 농사 시작하기 전에 밭을 꼭 갈아엎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흙에 대해 공부하면서 우리가 선택해오고 있던 일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이 작물을 언제 심고 거두고 어떤 병충해를 입는지 텃밭 관련된 책들을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모든 작물을 품고, 키워내는 흙에 대한 관심은 가지지 않았다.

글을 읽으며 흙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매일 밟고 다니는 흙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이 돌보아주지 않아도 흙 스스로가 해나가고 있는 일을 알게 되고 우리가 선택한 농사법이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느낀다.

김매기를 할 때 있는 풀을 모두 뽑아버리지 않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나물을 채취한다거나, 옥수수싹이 날 때 주변 풀들을 남겨두어 새 피해를 줄이는 것은 김매기를 조금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해가고 있는 농사는 흔히 사람들이 짓는 농사법과는 다르게 더욱 많은 시간과 정성, 관심이 필요하다. 무경운 농사에 관한 글에서 '알맞게 몸을 움직이면 일이 운동이자 놀이여서 배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제까지 항상 밭일은 내가 해야 하는 일에서 밀려나 있었고, 한 번에 밀린 숙제 하듯이 할 때가 많았다. 글을 읽으며 우리가 짓고 있는 농사에 대하여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느껴졌다. - 예진


자기 먹거리는 자기가 기른다면


보통 사람들이 경운을 한다고 하면 단순히 두둑만 삽으로 엎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밭 전체를 갈아서 다시 밭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흙을 갈지 않으면 흙 안에 살고 있는 여러 생물들을 보호할 수 있고 흙도 건강해지고 좋아진다. 화학비료도 쓰지 않을 수 있게 되고 심지어는 식물의 병까지 막아준다고 한다. 이렇게 무경운 농사는 장점이 많다.


농사는 자연의 힘을 빌려, 흙의 힘을 빌려와서 짓는 것인데. 언제부턴가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우리는 어찌 보면 자연을 거슬러서 농사를 짓는 건데 배려는커녕 오염시키고 있다. 최대한 흙을 진심으로 정성껏 대하여 고마운 마음으로 소중하고 조심히 쓰는 것. 그것이 무경운 농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이익만 바라보고 이기적인 농사가 아닌, 힘들고 더디지만 흙도 좋아지고 배려하면서 짓는 농사 말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줄어들고 전부 음식을 사먹으려 하고 특정한 사람들이 많은 농사를 지으려니 이렇게 지을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또 이런 농사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자기 먹거리는 자기가 길러 먹으면 좋겠고 이런 농사를 추구하고 짓는 사람도 늘어나면 좋겠다. - 어진


몸 써서 땅과 소통하는 농사

늦봄~초여름 벌레들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씨앗을 심거나 김매기를 하다가 개미굴을 팔 때가 있다. 그럼 개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알을 옮긴다. 이 때 작업을 계속하면 개미들이 팔을 타고 올라와 물 수도 있어서 옆으로 옮겨가서 해야 한다. 개미 말고도 지렁이, 땅거미 등 여러 벌레들이 많다. 성가시긴 하지만, 이런 벌레들은 땅 속에 구멍을 파고 공기구멍을 만들어주어, 땅과 작물 모두 건강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와 공생하며 살아가는 생명들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비닐을 치면 땅은 점점 푸석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땅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점점 기계에 의존하면, 밭과 진심으로 만나려는 마음도 사라지고 생기를 잃는다. 되도록 몸을 써서 자연과 만나가는 게 좋은 것 같다.

씨앗을 심을 때부터 수확할 때까지 수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우리 정성으로 인해 밭은 더욱 좋은 열매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화학비료가 아닌 직접 만든 퇴비와 산에서 퍼오는 부엽토를 먹고 자란 작물은 몸에도 좋다. 몸과 마음을 써서 수많은 생명들과 마주하고 사랑하는 그런 농사를 지어나가고 싶다. - 성은


천천히 느릿느릿 변화를 보다

무경운은 거친 유기물(산에 검불, 썩은 나뭇가지, 볏짚, 왕겨)들과 잘 삭은 거름(퇴비, 발효 시킨 쌀겨)들과 흙을 통해 밭을 가꾸어가는 것이다. 우리도 산에 있는 부엽토, 똥과 오줌, 부산물로 농사를 짓는다. 또한 아무 풀이나 다 뽑지 않고 그 작물에 맞게 풀을 뽑고 서로의 좋은 기질을 더 북돋을 수 있는 작물들을 함께 심는 것 또한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무경운 농사는 '가장 느림의 농사'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다른 농사에 비해 느리고 생산량도 적다. 하지만 저자는 느림을 즐긴다. 기계로 농사를 짓는 건 생산량과 빠름을 추구한다. 하지만 우리같이 기계를 쓰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농사를 짓는 건, 농사를 지으며 얻는 배움들, 작물들의 싹을 기다리며 얻는 즐거움, 땀 흘리며 노동하여 얻는 유익함이 있다. 빨리 가면 자세하게 세밀하게 볼 수 없지만 천천히 느릿느릿하게 가면 여러 가지 변화들을 눈여겨볼 수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 내년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다.

생산량 위주의 농사가 아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힘, 자급자족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훈련이 하늘땅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해마다 농사에 대한 경험들이 쌓여 배움을 얻고 더 즐겁게 농사지을 수 있는 것 같다. 농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자랑스럽다. - 진혁


식물은 수동적이지 않다

이전에는 식물은 수동적이라고만 생각했다. 씨앗이 뿌려지는 것도 식물 스스로 정할 수 없고, 양분도 주어지는 대로 살게 되고, 누군가 꺾으면 꺾이는 것이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식물은 동물들이 자기 잎을 먹게끔 자라는 것도 있고, 씨를 퍼뜨리는 일도, 곤충이든, 새든, 바람이든 필요한 도움을 선택해서 받아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합성으로 얻은 양분을 삼출액으로 만들어 내보내서 자신에게 필요한 균들을 모으는 것을 보고, 식물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필요를 채워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 스스로는 양분 합성을 할 줄 모르고,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동물이 도리어 의존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초제를 뿌리면, 기껏 에너지를 써가며 생명들을 모았던 당사자인 식물은 참 황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서, 그리고 정말 필요해서 불러온 생명들을, 농부의 손으로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물에게는 탄소, 질소, 산소가 필요하다, 온도는 이것이 적당하다, pH는 이 정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을 안 것만으로 식물의 성장의 비밀을 푼 것인 것처럼,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왔기 때문에 제초제를 뿌리고 화학비료를 주는 것이 아닐까. 식물만 보고, 뿌리 옆에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을 못 본 것이다. (생명에 관한 것은 특히) 모르는 것에 집중해서 조심히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 같다. - 은진


흙 속 생명들과 공생하기

기계를 쓰지 않고 농사를 한다는 것은 몸이 중심이 된다. 나만이 중심이 되어 뭇생명과 어울리지 못함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의 중심을 그것들과 어울리도록 두는 것이다. 나라는 한 낱생명과 온생명의 어울림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 나라는 게 온생명에게 할 수 있는 마땅한 대우 가운데 하나가 ‘무경운’인 것 같다. 흙을 알고, 나를 아는 것, 또, 안 것에 대해 책임있게 살아가는 것이 무경운이 나에게 준 큰 배움이다.

개인적으로는 안 것에 대해 책임있게 사는 게 잘 안 된다. 대표적으로 봄마다 밭을 갈아엎는다. 마음 같아선 배운 것도 있고 들은 것도 있어 무경운 하고 싶지만, 해마다 밭이 바뀌어 그 때마다 밭을 다듬다보니 경운하게 된다. 그리고 성격상으로도 호미나 손으로 그때 그때 조금씩 김매기하는 것보다 삽으로 몽땅 갈아엎어버리는 것에 몸이 따른다. 겉으로 보기에 깔끔하고 단정한 것도 그것 나름 의미가 있지만 깊고 넓은 땅과 그 땅 속 생명들과 같이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갈아엎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렇게 글 읽고 글 쓴 것을 계기로 앞으로 철저하게 무경운 해볼까 생각해봐야겠다.  - 해민


'유기농'보다 '유기적'으로 살아가기

'유기적'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생물체처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이란다. 그런데 '유기농업'을 찾아보니, 화학비료나 농약 사용을 삼가고 유기비료를 사용해 무공해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이라고 한다. 의미가 너무 좁아진 것 같다. 사전에 나온 '유기적'의 의미만 생각해봐도 글에서 본 토양 먹이그물처럼 땅에서 살아가는 것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흐름의 부분이 되어 농사짓는 것이 '유기농' 아닐까.

우리가 심을 작물이 땅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또 그 작물을 좋아하는 동물, 벌레가 누구인지에 따라 매해 밭 배치를 바꾼다. 어떻게 하면 자연적인 흐름을 사람이 깨지 않고 그 속에서 함께 농사지을 수 있는지 고민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같다. -  상원

상원, 해민, 은진, 진혁, 성은, 어진, 예진, 주은 | 밝은누리움터에서 하늘, 땅과 소통하는 것을 배우고 있는 삼일학림 학생들입니다.


<아름다운마을>은 마을 주민들의 소박한 생활과 농촌과 도시를 함께 살리는 마을공동체 이야기를 전합니다.


펴낸곳 |  생명평화연대 www.welife.org

문   의 |  033-436-0031 / maeul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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