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시콜콜

화장실 없는 집에서 살아보셨나요?

by 이윤기 2015. 2. 5.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화장실 없는 집에서 살아 보셨나요? 당신이 사는 집에 화장실이 없으면 어떤 불편을 겪게 될지 생각해보신 일이 있나요? 뭐 대부분 그런 상상을 해본 일이 없겠지요. 저는 연초부터 불운이 닥쳐 지난 주 며칠 간 화장실 없는 집에서 지내는 혹독한 시련을 경험하였습니다. 


혹독한 시련이라고 한 까닭은 차차 알게 되실겁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이 훨씬 넘은 아파트인데, 지난 1월 중순부터 아래층에 거실 천정에 물이 새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래층 거실에 물이 샐 까닭이 없어 관리사무소에 점검을 요청하였는데 전문가들이 모여서 내린 판단이 저희 화장실에서 물이 샌다는 것이었습니다. 


원인이 밝혀진 이상 아래층에 더 이상 피해를 줄 수 없어 최대한 빨리 수리를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타일 종류도, 세면기나 샤워기 종류도 고르지 않았습니다. 방수 공사와 함께 화장실 리모델링을 맡은 분들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최대한 서둘러 물이 새는 것을 고쳐달라고 부탁하였지요. 




화장실 방수공사...짧으면 5일 길면 10일...화장실 '사용금지' 난감하네...


겨울이라 공사가 많은 않았기 때문인지 공사 금액에 합의가 되자 다음날부터 바로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설비회사 사장님이 공사 전날 화장실에 있던 살람살이를 다 치워달라고 부탁하면서 짧으면 5~6일 길면 10일 정도까지 화장실 사용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5~6일이지만 막상 화장실 바닥을 다 뜯어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방수공사가 생기면 공기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공사에 며칠이 걸리던 간에 아래층 사는 분들에게 피해를 줄 수가 없으니 하루 빨리 공사를 시작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짧으면 5일 길면 10일까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대략 남감하였지만 가족회의를 열어 최대한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하였습니다. 일단 집에 있는 가족 세 명은 모두 새벽에 수영장을 가기 때문에 씻는 문제는 수영장에서 해결하고, 하필 이 기간에 맞춰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는 큰 아들은 동네 목욕탕을 이용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가장 큰 어려움은 씻는 것이 아니라 누는 것이었습니다. 평일에는 각자 사무실로 출근하여 용변을 해결하였는데, 문제는 저녁 시간과 주말을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상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는데, 문제는 추운 겨울 밤에 자기 전에 2~3번씩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가 화장실까지 다녀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가장 쉬운 선택은 화장실 가는 횟수를 줄이는 일이었습니다. 가급적 수분 섭취를 줄이는 것이 첫 번째였구요. 차나 커피처럼 탈수를 촉진하는 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이 두 번째였습니다. 화장실 가고 싶은 신호가 와도 최대한 버티고 있다가 다른 식구와 함께 가게 되더군요. 


잠자다 일어나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상가 화장실까지....


아들 녀석들 사춘기가 지난 후에 남자 셋이서 함께 오줌을 함께 누러 다닌 기억이 없는데, 오랜 만에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가 다 같이 단체로 오줌 누러 다니는 재미(?)있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힘든 것은 잠자다가 뇨기가 느껴질 때였습니다. 저는 화장실 수리 공사가 시작되고 처음 3일 동안 출장을 갔다온 덕분에 큰 어려움을 격지는 않았는데, 식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잠자다 새벽에 상가 화장실까지 갔다오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에 누가 화장실까지 갔다왔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재미있는 일과가 되었지요.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그래도 배탈 난 사람은 안 생겼으니 그나마 다행이다"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습니다. 정말이지 배탈이라도 낫다면 보통 난감하지 않았겠더군요. 


수영장이 문을 닫은 일요일에는 아이들 모두 할아버지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샤워까지 다 마치고 집으로 왔습니다. 다행히 화장실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6일 만에 공사가 끝났습니다. 


전에 귀농한 친구가 정화조 시설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화장실 없는 집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예사로 들었는데, 화장실 없는 집에서 일주일 살아보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가더군요. 


공사가 끝난 첫 날은 샤워기와 세면기는 사용하지 말고 우선 변기만 사용하라고 하시더군요. 앉아서 용변을 볼 때는 엉덩이를 살짝 들고 사용해야 한다는 제약조건이 있었지만, 그래도 상가 화장실까지 가는 것에 비해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이던지요. 


멀쩡한 집에 살면서 화장실 없이 지내보니 '화장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겠더군요. 먹고 마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누는 일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