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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ch/만년필 연구소

연애와 만년필 생활의 공통점





처음엔 주로 눈이 반응한다.

'첫눈에 반했다'라는 표현이 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1차적인 정보수집 기관 중의 하나인 시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많은 경우 남녀 관계는 시각정보에 의해 시작된다. 많은 경우 잘못된 정보로 판명되긴 하지만 말이다..


만년필의 시작도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 사용한지가 오래된 사람은 주로 기능이나 촉감 등의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선택을 하겠지만 초심자의 만년필 선택에 있어서 디자인이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전에 해군병들을 지원한 이들에게 자주 물었던 질문이다. 왜 해군을 지원했냐고. 육해공 따지고 보면 군생활 비슷할 텐데 딱히 해군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십중팔구 '옷이 멋있어서'였다.


애플 제품이나 몽블랑 만년필의 가격대비 효율은 여전히 논란거리이지만 그들의 디자인이 뛰어나다는 것은 다수가 인정하는 바이고 이런 생각이 실제 구매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만년필 입문의 경우 부모님께 물려받은 경우나 지인에게 선물받은 경우 등 여러가지 사연이 있을 것이나 주로 지인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멋있어 보여서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만년필은 단순한 필기구를 넘어서 옷이나 가방과 어울리는 하나의 악세사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기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엔 닭살돋는 멘트일지는 모르겠으나 회사간의 협상테이블에서 만년필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져서 협상과 계약이 술술 풀린다는 표현을 쓰는 일본의 만년필 서적을 본 적도 있다.


오바이긴 하지만 이 역시 만년필의 멋과 분위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사귈 땐 애지중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만년필을 고가품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고가품인 만년필이 유명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쓸만한 몇 만원 대의 저가 만년필이 많이 생산되는 걸 보면 이제 딱히 고가품으로만 볼 수도 없겠다.


뭐랄까. 딱히 커피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여러 가격대가 존재하지만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그런 소비품이라고.


아무튼 아직도 고가품이라는 인식과 볼펜과 연필에 비해 비싼 가격 등등에 의해 초기에는 만년필을 애지중지 다룬다. 필통 속에서 다른 필기구와 부딪쳐서 긁히지나 않을까하여 따로 파우치도 구입하고 아직 사용하지도 않을 잉크도 몇 병 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유명한(?) 표현이 있지 않은가.

"이루어진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다"라는....


그리고 생물에게 있어 같은 자극과 긴장이 지속되지 않는다 (전문용어로 '극치'라고 하지 아마). 결국 적응하고 익숙해지면서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만년필을 사고 처음엔 세상을 다 가진듯하지만 잉크가 채워진 그대로 몇주가 흐르기도 하고 몇년간 간단한 물세척도 하지 않기 일쑤다.




사랑도 연습이 필요하듯이

이전에 필기감의 상대성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때 수박을 예로 들었는데 수박의 단맛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일본사람들은 소금을 뿌려먹는다는 것이다. 같은 수박인데도 상대적인 맛이나 다른 이전의 경험이 있으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미식가나 요리평론가들도 하나의 요리를 평하기 위해 다양한 요리를 맛보며 혀를 단련시킨다. 만년필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제껏 연성이라고 느껴졌던 촉도 더욱 더 연성인 촉을 경험한 뒤 다시 만지면 탁하거나 거친 맛이 느껴지는 것이 이러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때문에 '자신만의 한자루의 만년필'을 찾는 여정 중의 사람이라면 여러 만년필을 경험해보고 여러 상대적인 감을 뛰어넘어 정말 자신에게 맞는 그런 펜의 크기와 촉의 재질, 촉의 굵기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연애도 많이 해 본 사람이 결혼해서도 잘 산다고 하지 않던가. 다른 말이 아니고 여러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자신에게 잘 맞는 이를 제대로 찾아서 잘 산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만년필을 찾는 과정도 배우자를 찾는 과정과 별반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고로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 만년필도 잘 고른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결국 편한 상대에게 돌아온다.

위와 이어지는 내용이다. 현실에서도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다. 여러 좋은 조건의 상대들을 두루 거친 이가 결국 결혼상대로 선택하는 건 정말 편한, 친구같은 상대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지만 =.=;;)


새로운 만년필을 접하고는 이전의 만년필이 보잘 것 없거나 자신에게 안맞는다고 느껴진 적이 있을 것이다. 새 만년필만의 멋과 감촉에 푹 빠져서 몇 주 혹은 몇 달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새 만년필이 잘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의 만년필이 몇 년간 사용해 온, 자신에게 편한 만년필이었다면 새 만년필의 자극이 수그르 들고 나면 다시 옛 애인을 찾기 마련이다.


보통 연애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호르몬 분비는 2년간이라고 한다. 호르몬 과다 현상이 끝나고 찾게되는 상대가 정말 자기에게 맞는 상대인 법이다.




결혼식이 종착역이 아니듯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

앞서 만년필 고르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여러 연애를 경험하고 짝을 맞아들였다고 하자. 하지만 이후에 많은 이들이 맞아들인 만년필을 초기에는 애지중지 잘 받들지만 이후엔 시들해져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경우에는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치겠지만 만년필은 말을 할 수 없다. 일방적으로 주인의 관심 밖에 나서 일년에 한번도 제대로 잉크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좀 더 심한 경우는 부주의해서 펜촉이 상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겠다. 


만년필이 멋도 있고 여러 촉감을 알게되면 꽤 매력있는 필기구이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듯이 다른 만년필보다 시간이나 금전적 관리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결혼 후에 연애때는 몰랐던 상대의 모습을 알아가고 갈등 및 조정을 통해 살아가듯이 만년필도 구매 후 사용해 가면서 자신의 필기습관과 타협하고 만년필에 대한 지속적인 공부와 관리가 필요하다.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것이 연애나 결혼의 최종 목적이 아니듯이 영수증과 함께 만년필을 손에 넣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그 때부터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