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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보다 시원하다는 어머니의 32년 된 선풍기

 

 

에어컨보다 시원하다는 어머니의  32년 된 선풍기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어제가 아버지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모였습니다. 시골집에는 늙으신 어머니 혼자 계십니다. 더위가 한풀 꺾였다고 하지만 시골도 역시 덥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외지 생활에 익숙한 우리들은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덥다고 난리를 피며 에어컨을 켭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가 더위를 이겨내기 힘들까봐, 몇 년 전 에어컨을 사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 에어컨을 켠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한 번씩 다녀갈 때만 덥다고 틀어주는 정도입니다. 이번처럼 더운 여름에도 어머니는 선풍기로 버틴 모양입니다. 안부전화를 할 때마다 더우면 에어컨 틀라고 하지만 81세의 노모에게는 선풍기가 제일인 모양입니다.

 

“올 여름은 하도 더워서 매일 밤 선풍기를 두 대나 틀고 잠을 청했어.”

 

어머니에게는 오래된 선풍기 한 대가 있습니다. 햇수로 아마 32년쯤은 되었을 겁니다. 고령에도 기억력 하나는 저희보다 더 좋은 어머니는 큰누나 시집가기 전에 선풍기를 샀다고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입니다. 계산을 해보니 1980년쯤인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선풍기가 흔하디흔한 물건 중의 하나지만 당시만 해도 TV, 냉장고에 이어 혼수용품에 꼭 들어가는 제법 귀한 품목이었습니다. 이듬해 결혼한 큰 누나의 혼수품에도 당연히 선풍기가 들어갔습니다.

 

“그때 보리매상하고 장에 갔는데, 선풍기가 27000원 정도 했어. 건데 선풍기 팔던 장사꾼이 이 선풍기를 사면 좋다고 자꾸 권해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31000원이라고 했지. 다른 것보다 4000이나 더 비싸 한참을 고민하다 샀는데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장 한 번 안 났어. 당시 ‘한일선풍기’가 인기는 최고였거든.”

 

선풍기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입니다. 당시 도시로 유학 갔던 형들의 한 달 하숙비가 40000원 정도였으니 그때의 선풍기는 가격으로 치면 요즈음의 에어컨과 비슷하지만 그 값어치는 지금의 에어컨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시골집에는 3대의 선풍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깨끗한 요즈음 선풍기는 뒷방 신세고 , 늘 32년 된 낡은 선풍기가 어머니의 곁을 지킵니다. 묵은 때가 묻어 얼핏 보기에도 낡아 보이는 선풍기는 오늘도 어머니 곁에서 씽씽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선풍기 바람은 이것만 못해. 에어컨보다 더 시원하다니까.”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