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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라면값, 회사 달라도 10년간 똑같았던 이유?

by 이윤기 201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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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공정거래위원회가 휴대전화 기기 가격을 부풀려 팔아온 것을 적발하여 과징금을 부과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이번 주에는 국내 라면제조업체들이 지난 2001년부터 서로 짜고 라면 값을 인상하였다가 공정거래위원회가에 적발되었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 지난주에도 제 블로그에 비슷한 내용의 글이포스팅되었습니다만, 오늘포스팅은 같은 주제로 라디오 방송을 하였던 원고입니다. 관련 포스팅 : 2012/03/23 -  농심 등 대기업 라면값도 매번 짜고 올렸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농심, 삼양, 오뚜기, 야쿠르트 등 국내 주요 라면 제조회사들은 겉으로는 서로 경쟁관계인 것처럼 소비자를 속이면서 2001년부터 지난 9년 동안 매번 서로 짜고 라면값을 인상하였다고 합니다.

공정위는 라면값 인상을 담합하여 부당이익을 챙겨 온 라면회사들에게 시정명령과 함께 모두 135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하였답니다.

연간 판매량 37억개, 매출 1조 7787억, 이익은 얼마나 남겼을까?

이 회사들이 라면값 인상을 담합하여 부당하게 챙긴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의 1년 라면 판매량이 37억개, 라면 제조사들의 연간 매출이 1조 7782억원이나 된다고 하니 라면 값을 담합하여 남긴 이익이 엄청난 금액인 모양입니다.

지난주 휴대전화 업체와 통신사에 부과한 과징금이 453억 3000만원이었던 것에 비교해봐도 라면회사들에게 부과한 1354억 과징금은 적지 않은 금액인 것 같습니다.(관련 포스팅 : 2012/03/20 - 삼성, SK 사기 행각에 과징금만 내라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점유율 70%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이면서 가격 담합을 주도한 농심에는 1077억 6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고, 삼양식품 116억 1400만원, 오뚜기 97억 5900만원, 한국야쿠르트 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다고 합니다.

후속 보도에 따르면 업계에서는 삼양식품이 라면시장 공세를 강화하면서 경쟁업체인 농심에 타격을 주기 위해 라면값 담합을 신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담합 자진신고(리니언시)를 하는 경우 과징금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삼양이 노린 효과 주의 하나라고 합니다. 과징금이 확정되면 농심은 지난해 영업이익 1101억원을 고스란히 과징금으로 내야 할 만큼 큰 타격을 입게 되지만 삼양은 리니언시를 적용 받아 과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국민일보 : 삼양의 야심...시장 판도 바꿀까?)

아무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니 라면 제조사들은 한 회사만 라면값을 올렸을 때 감수해야 하는 매출 감소나 소비자들의 반발로 인한 회사 이미지 타격 부담을 덜기 위하여 매번 서로 짜고 라면 값을 올렸다는 겁니다.
 
특히 라면 제조사들의 주력 상품인 신라면, 삼양라면, 진라면, 왕라면의 출고가격과 권장소비자 가격은 매번 가격 인상 때마다 아예 똑같이 결정하여, 소비자들이 가격을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할 수 없도록 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들 제품의 가격인상은 지난 10년간 6번의 가격인상때마다 모두 똑같은 금액으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라면 업계 1위인 농심이 주도하여 가격 인상안을 만들어 나머지 3개 업체에 알려주면 이 업체들이 비슷한 수준으로 순차적으로 값을 인상하는 수법을 썼다는 것입니다.

지난 10년 간 왜 라면 가격은 똑같았을까?

아울러 이들 라면회사들은 라면협의회를 구성하여 각 회사의 "판매실적․목표, 거래처에 대한 영업지원책, 홍보 및 판촉계획, 신제품 출시계획 등 민감한 경영정보 역시 상시적으로 교환함으로써 담합 이탈자를 감시하고, 담합의 내실을 강화하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업계 1위인 농심이 "가격을 선도적으로 인상했음에도 타 업체가 가격 인상에 뒤따르지 않는 경우 구가지원기간(인상 전 가격 판매 기간)을 대폭 연장하는 방식을 통해 가격인상을 하지 않는 업체를 즉각적으로 견제"하여 담합 이탈을 막았다고 합니다.
 
공정위가 밝힌 사정이 이러한데도 농심을 비롯한 라면회사들도 '담합한 사실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공정위가 활약을 보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룰'을 지키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경쟁사인 삼양의 제보가 있었네요.

공정위 보도자료에는 경쟁사의 제보라든지, 담합 자진신고(리니언시) 적용에 관한 이야기가 할 줄도 없어서 지난 3년 동안 공정위가 치밀하게 조사를 하여 밝혀낸 놀라운 성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후속 보도를 보니 업계 2위인 삼양의 꼼수가 있었다고 하네요.

아무튼 재벌 기업들의 부당한 거래에 관하여 공정위가 수백억 ~수천억 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하여도 기업들이 이런 부당 거래를 그만두지 않는 것을 보면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인 모양입니다.

자본주의 선진국 미국만 하여도 가격담합이나 부당거래, 주가조작, 분식회계, 비자금 사건 등으로 적발되는 경우 CEO와 회계책임자는 20~30년씩 중형을 선고 받고, 막대한 손해배상으로 기업이 파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미국에서 이런 불법을 저질렀다면?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비슷한 잘못을 저질러도 CEO나 관련자들이 법적 처벌을 받고 감옥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사회공헌을 위한 기금을 내거나 이번 경우처럼 시정명령을 받고 과징금을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소비자입장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할 때마다 부당 이득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조처를 취하지 않는 것, 아니 못하는 것도 늘 불만입니다.

라면 회사의 부당한 이익을 과징금으로 받아내면 결국 국고의 일부가 되겠습니다만, 부당하게 짜고 올린 라면 값을 인하하는 실질적 조처가 없으면 소비자가 당한 직접 손해를 보상 받을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라면 회사들이 1000억 원이 넘는 과징금을 내더라도 회사가 벌어들이는 이익이 과징금보다 많으면 결국 이런 가격 담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공정한 거래가 자리 잡으려면 라면 회사 1~2곳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강력한 처벌과 함께 소비자들의 피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오늘 아침에 방송하였던 KBS 창원 라디오 생방송 경남 청취자 칼럼 원고를 수정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