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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테러리스트, 그가 고민하고 방황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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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휘의 <테러리스트>/1956년

빛바랜 개구리색 얼룩무늬 군복, 세상에 흩어진 백가지 색을 단 하나로 덧칠하려는 듯 의기양양한 검은 썬글라스, 전장에 선 지휘관의 그것마냥 허리춤에 단단히 꽂힌 권총……요즘 집회현장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아니 어느날 갑자기 아스팔트로 쏟아져 나온 과거의 망령들이다. 전투적 복장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을 주지만 이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살벌한 구호는 차치하고라도 이들은 가스통에 불을 붙여 거리를 활보하고 공권력이라도 부여받은 듯 버스를 세우고 공포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때로는 섬뜩한 웃통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릴 적 반공집회에서나 봤음직한 '○○○ 화형식'은 예사다.

시민단체의 순순한 집회라기보다는 테러리스트들의 행군처럼 보이는 이 풍경을 연출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극우단체들이다. 자칭 '보수'라 부르지만 어디에도 아름다운 진짜 보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입버릇처럼 좌파척결이라는 구호가 들려온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는 것이 무엇이 문제이겠냐마는 이들이 보는 세상은 단순하다 못해 세상을 두 부류의 인간들로 축소시켜 버린다. 빨갱이들과 빨갱이가 아닌 사람들. 그렇다면 이들에게 빨갱이는 누구인가.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자신들과 생각이 같지 않으면 모조리 좌파고 빨갱이다. 하기야 보수적 민족주의자로 평가받는 김구 선생마저 테러리스트니 좌파니 하는 밧줄로 꽁꽁 묶어버리는 이들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스스로를 보수라 부르며 '원조 보수'를 지우려는 이들은 그저 정치 모리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다. 

 

                   ▲ 집회를 방해하는 극우단체 회원   사진>오마이뉴스

이들에 비하면 왕년의 테러리스트 걸(傑)은 차라리 순수했다. 걸에게 인생의 목표는 단 하나, 공산당 척결이다. 그렇다고 요즘의 극우단체들처럼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죄다 공산당으로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그는 상대방의 생각을 들어보려는 의지가 있었다. 비록 공산당을 분별하기 위한 수단이기는 했지만. 또 그는 삶의 목적인 공산당 척결 외에는 다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치깡패이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선우휘의 소설 <테러리스트>를 읽다보면 먼저 지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극렬 반공주의자로 알려진 그가 목표를 상실한 어느 테러리스트의 방황과 좌절을 얘기했다는 것도 그렇고 이 소설을 진보적 종합교양잡지로 알려진 《사상계》에 발표했다는 점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신문기자가 됐다는 그의 고백이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선우휘의 이념적 성향의 변화과정은 잠시 뒤로 하고 소설 <테러리스트>에 나타난 어느 테러리스트의 고민을 잠시 엿보기로 하자. 

소설 <테러리스트>는 해방 후 소련군이 진주한 북쪽에서 공산당 척결에 앞장섰던 즉 대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로 활약했던 걸과 학구 그리고 길주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남쪽에 내려와서도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해방공간에서 공산당 척결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실천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악랄한 반공정책으로 공산당이 사라진 공간에서 삶의 목표에 대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저자는 이 세 친구를 통해 서로 삶을 바라보고 또 살아가는 서로 다른 유형의 인간형을 창조해 낸다.

특히 저자가 주목한 인물은 걸이다. 걸에게 공산당 척결은 삶의 목적이기도 하고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목표가 사라진 지금 그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그러기에 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적 욕구가 강하다. 그의 이런 욕구는 테러리스트로서의 목적과 그에 따른 목표를 찾기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반면 학구는 고민하는 걸에게 과거의 대단한 활약상을 상기시키는 과거지향적 인물이다. 이에 반해 길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철저하게 현실에 야합하는 인간형이다. 자유당 시절 유행했던 정치깡패로의 변신이 그것이다. 

그 자신의 문제뿐만 아닐 모든 좋지 못한 일의 근원은 '빨갱이' 공산당놈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 위에 걸은 그의 머리로써 그 밖의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산당이 없어진 지금에 와서 누구를 보고 주먹을 내둘러야 할는지, 그 주먹질의 대상을 잃어버린 일이었다. -<테러리스트> 중에서-

걸의 고민은 사람들이 오가는 화려한 거리와 악기점의 노랫소리에 뒤섞여 악을 쓰고 있는 선거운동의 스피커 소리에 커져만 갈 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선우휘는 극렬 반공주의자였다. 이런 점에서 걸의 고민을 이념적 혼돈이나 변화의 시작으로 인식한다면 행간을 읽지 못한 우를 범하게 된다. 소설 <테러리스트>는 철저하게 반공주의적 시각에서 쓰여졌고 시작부터 끝맺음까지 이런 시선은 철저하게 유지되고 지켜진다.  왕년의 대반공 테러리스트 걸의 고민과 방황을 통해 저자는 더욱 공고해진 반공체제 구축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저자와는 또 다른 꿈을 꾸어본다. 걸의 고민이 해묵은 이념의 복원과 자신과 마주선 사람들에 대한 극악무도한 테러가 아닌 자신 스스로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어두운 과거에 빠져드는 자신의 심장을 겨눈 테러이기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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