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우린 왜 ‘최종병기 활’에 열광하는가?

朱雀 2011. 8. 26.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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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가운데 가장 많이 기대를 모은 작품은 단연 <7광구><>이었다. <최종병기 활>뭥미?’라고 물을 정도였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최종병기 활>에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목 자체가 왠지 <최종병기 그녀>를 떠올리는 구석이 있어서 내내 찜찜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 


어린 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철완소년 아톰><사파이어 왕자>등등의 애니메이션이 국산이 아니라 일본산(?)이란 사실을 알고 내내 치를 떨어왔기 때문에, <최종병기 활>이란 제목에선 왠지 짝퉁스런 냄새가 솔솔 풍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원과 안성기를 비롯한 막강 출연진에도 불구하고 <7광구>의 엄청난 악평에 영화를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은 그런대로 볼만했고, 만듬새도 나쁘지 않았지만 왠지 폭주족에 대한 찬양(?)하는 모양새에 찝찝했다. -특히 초반의 광복절 폭주신은 엄청난 대형사고를 일으켰음에도 그냥 유희정도로 묘사해서 여러모로 불편했다-

 

<최종병기 활>은 예고편을 보고나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성격파 배우인 류승룡과 박해일의 등장에 무척 기대가 커졌다. 게다가 <찬란한 유산>이후 팬이 되버린 문채원까지 가세한다니. 안볼 수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인터넷의 평들도 한결같이 찬사투성이라 마음놓고 감상할 수 있었다.

 

관람 후에는 왜 불과 14350만명을 돌파하며 순항중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참고로 <7광구>24일 현재 약 223만명, <>은 약 300만명- <최종병기 활>에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블록버스터에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물량공세를 하면 무조건 통할 것이라는 편견이다!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인 <괴물> <왕의 남자> <태극기를 휘날리며> <해운대> 등등을 떠올려 보자.

 

장르도 다르고, 주연도 다르고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이들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가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의식 있는 블록버스터라는 사실이다.

 

<최종병기 활>은 어떻게 의식이 있냐고? 우선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주인공 남이는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 병사에게 끌려간 여동생 자인을 구하기 위해 홀홀단신으로 10만대군의 한복판에 기꺼이 들어가는 인물이다.

 

병자호란은 사실 당시 조선 지도층이 조금만 외교술을 펼쳤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었다. 실제로 인조반정이 있기 전까지, 광해군은 나날이 국운이 쇄하가는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외줄타기 외교를 벌이면서 실리를 톡톡히 챙기고 있었다.

 

그러나 광해군에 대해 반감을 품은 양반세력에 의해 축출되고 인조가 옹립되면서, 상황이 골 때리게 바뀐다. 바로 인조를 내세운 세력들이 나날이 강력해지는 청나라를 오랑캐운운하며, 자극한 탓이다.

 

만주지역에서 흥기한 청나라로선 후방에 있는 조선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자고로 한반도를 제압하지 못하고는 중원의 지배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때문에 후연은 중원의 지배자가 되지 못했고 수나라는 결국 멸망했다. 고려 때문에 여진족은 중원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50만이란 숫자가 끌려갔음에도 제대로 된 송환노력이 거의 전무했던 것은 무능력을 떠나서, '나라'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한다. 근데 과연 이게 조선만의 문제일까?


임진왜란 이후 최고의 수군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던 조선을 지원군으로 삼고 싶어했던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실리를 취했던 광해군과 달리, 인조는 지원세력에 의해 노골적으로 청나라를 업수이 여기고, 명나라에 일방적인 짝사랑 외교를 펼침으로써 청나라의 침입을 스스로 자초하고 말았다.

 

게다가 국방수비에 전혀 대비하고 있지 않았으니, 참으로 무능력하고 밖에 할말이 없다. 병자호란이 터지고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못해, 신하로서 예를 취하는 삼전도의 굴욕이란 치욕을 맛보고야 만다.

 

왕이 이 정도인데, 백성들의 삶은 오죽이나 했을까?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끌려간 조선백성은 무려 50만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들의 끔찍하고 비통한 삶은 영화를 조금만 감상해도 눈앞에 선할 지경이다.

 

<최종병기 활>에서 당시 조선의 힘은 다양하게 그려진다. 오프닝 장면에서 역적으로 몰려 어린 여동생 자인과 함께 도망가는 남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때 공권력은 무자비하고 끔찍하기 이를데 없다.

 

반면, 자인의 혼례식에서 쳐들어오는 청나라 군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군사들의 모습에선 초반의 무시무시함이 허망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심지어 마지막에 등장하는 국경수비대의 초라한 모습은 여러모로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아내를 구하기 위해 각개약진하는 남이(박해일)와 서군(김무열)의 모습은
너무나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오늘날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는 경비원으로
어머니는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선 악귀보다 더한 그들이, 막상 외부의 적 앞에서는 무능력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일관하니 뭐라 말하기 어려운 기분을 자아낸다. 또한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50만 명이나 백성이 끌려갔음에도, 그들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은 대목에선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군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다. -‘도와달라는 탈북자의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는 어느 대사관 직원의 일화가 저절로 떠올랐다-

 

또한 매년 20조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4대강 관련공사는 철저히 함구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당연히 먹여야할 의무급식을 가지고 주민투표까지 붙인 작금의 사태는 더더욱 그러하다.

 

주인공 남이는 어떤가? 그는 조선 최고의 신궁으로 청나라 최고의 무장중 한명인 쥬신타를 무찌를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역적의 자식인 탓에 평생 관직에 나갈 수 없는 몸이었다.

 

, 그런 엄청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것을 떨쳐 보일 기회가 없었다. 역설적으로 병자호란이 아니었다면, 그는 평생 그런 엄청난 능력을 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면, 이 영화의 내용은 엄청나게 바뀌었을 것이다. 병자호란 당시 백성을 구하기 위해 활약을 펼쳤거나, 쥬신타와 대규모 전쟁을 벌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여동생만을 구하기 위해 홀홀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듬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게 되었다. 이 부분도 많은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각개약진중이다. 복지가 전무한 세상에서 혼자 힘으로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되고,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지만, 시대의 모순과 책임을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최종병기 활>은 그런 의미에서 '답'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 진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엄혹한 이 시대에 '우리는 어찌 살아가야 하느냐?'고.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야 하고, 치솟아 오르는 물가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골치아픈 정치적인 사안은 빼놓더라도, 오늘날 치솟는 물가와 깨끗한 야채를 먹고 싶어하는 시민이 결국에는 아파트에 화분을 놓고 토마토를 비롯한 채소류를 직접 재배해서 먹는 현실은 국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남이 같은 인물이 등용되지 못하는 사회는 또 어떤가? 이는 철저하게 잘못된 사회가 아닐까? 능력있는 인물이 제 능력을 전혀 펼칠 수 없어서, 술이나 마시고 드잡이질로 세월을 허송하는 것은 비단 영화 속 인물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평생 열심히 살아도 제집하나 가질 수 없고, ‘부산저축은행 사건처럼 평생 모은 재산을 아무런 잘못 없이 하루아침에 날려버리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최종병기 활>은 여러모로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밤마다 포로로 잡힌 조선 여성을 욕보이는 도르곤 왕자. 실제 역사에선 더욱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우린 이런 치욕과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물론 <최종병기 활>은 고증을 잘 해서 대륙의 활인 육량시와 조선의 활인 각궁을 비롯해서 말과 만주어 그리고 복색에서 당시를 느끼게 한다. 탄탄한 스토리와 류승룡-박해일-문채원 등의 출연진의 탄탄한 연기도 보는 순간 매료케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대의 아픔과 서러움을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스토리텔링은 그 어느 때보다 고단하고 엄혹한 시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최종병기 활>의 흥행을 단순히 ‘90억의 힘이나 고증 같은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판단한다.

 

수백만 명이 기꺼이 자신의 귀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극장을 찾아 <최종병기 활>을 관람하는 데는 뭔가 중요한 이유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디 그 마음을 누군가가 헤아려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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