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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지리산 뻐꾸기가 평생 간직한 회중시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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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태의 <꿈꾸는 시계>/1988년

인터넷 서점을 뒤져봐도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책이 마치 운명이었던 것마냥 어느날 책장 깊숙한 곳에서 아무렇게나 누워서 나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 휴지가 밀리지도 않을만큼 묵은 먼지가 쌓인 책표지는 세정제를 동원하고서야 비로소 제 빛을 찾는다. 누렇게 바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세월에 익을대로 익은 캐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던 깨알같은 글자들이 흑백필름 돌아가듯 하나 둘 추억을 끄집어낸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가 다가 아니라는 철없는(?) 생각에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샀던 그 책, 문순태의 <꿈꾸는 시계>는 20년을 훌쩍 넘은 시간동안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책 표지에 실린 작가의 젊었을 적 사진은 초로의 노인이 되어 인터넷 속에 남아있을 뿐 20여 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그의 꿈은 나에게 작은 위안으로 다가온다.

지리산 뻐꾸기가 평생 시침을 없애버리고 간직했던 회중시계는 35년에 20여 년을 더한 시간동안 급격한 변화 속에 변화를 거부하는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이해하려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선뜻 다가오지 않던 회중시계의 비밀을 이제는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되레 슬픔으로 전해져 온다.

문순태의 <꿈꾸는 시계>는 비전향 장기수의 얘기다. 아니 그는 전향할 것도 없는 오로지 자신의 생활과 역할에만 충실했던 우직한 사상범(?)이다. 35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가 시침을 없애고 간직했던 회중시계처럼 시간이 멈춰버린 감방을 나오던 날 그는 시침을 넣고는 정작 자신은 다시 시침이 없던 회중시계의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 회중시계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을까?

문순태의 단편소설 <꿈꾸는 시계>에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까지 그리고 대학생 아들을 통해 본 1980년대 숨가빴던 민주화 투쟁까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그 과정에서 얽히고 설킨 대립과 반목을 담담하게 화해와 용서로 풀어나가려는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나에게는 뒤틀린 현대사의 단초가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고민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의기투합의 이유였고 알쏭달쏭했던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회중시계가 그 고민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소설은 주인공 나에게 또 내 친구들에게 우상이었던 최점수가 35년의 감옥생활을 청산하고 삼일절 특사로 풀려난다는 소식으로부터 시작한다. 35년 동안 외부세계와 차단된 친구를 위해 나는 친구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삼일절 아침 교도소로 향하는 길에 최점수에 관한 기억들을 더듬고 있다. 무난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분명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행동하려는 엄격주의자였던 최점수. 이런 최점수의 성격은 때로는 바보스런 면이 있었다. 바로 우정이었다. 이 우정 때문에 그는 친구들의 우상이 되었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좌익분자가 되었다.

여순반란사건이 진압되고 지리산으로 숨어들어간 최점수는 지리산 뻐꾸기처럼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눈만 뜨면 변하는 세상이 싫었던 것이다. 그를 우상으로 생각했던 친구들은 그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냈고 그는 다시 좌익이 되고 또 우익이 되었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개인사는 민주주의도 싫고 공산주의도 싫다는 말 한마디가 전향한 후에도 공산주의를 버리지 못했다는 빌미가 되어 사상범으로 체포되고 35년간의 기나긴 감방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다만 그는 자기의 삶에 충실했던 것 뿐인데...

석방되던 날 최점수가 나에게 보여준 시침이 없는 회중시계. 그가 시침을 없애면서까지 간직하고 싶었던 기억. 그 기억은 일본이 통치하던 시절 지리 선생님께 생신 기념으로 회중시계를 사드렸던 일이다. 나라가 없었던 시절 우리 강토으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대해 역설하셨던 그래서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었던 지리 선생님께 드렸던 회중시계가 해방이 되고나서 보니 일본놈 앞잡이였던 오형사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보는 이들이 속시원할 정도로 친일파였던 오형사를 맘껏 두들겨 패주고 회중시계를 다시 빼았으나 얼마 뒤 오형사는 경찰서장이 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최점수의 삶을 위한 투쟁은 일본놈 앞잡이 오형사가 해방이 되고나서도 경찰서장으로 부임하는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하고부터 시작되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기 전에 충실한 자기의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제삼자에 의해 그렇게 규정되고 만 것이다. 

저자도 한국 현대사의 모순이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 우익이 되는 현실에 분노한 최점수는 의도하지 않게 좌익이 되고 만 것이다. 회중시계에 담긴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다. 또 최점수가 나와의 재회를 만끽하기도 전에 낡은 회중시계의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은 이념 대립 이전의 순수했던 시절로의 회귀를 상징한다고 할 것이다.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 때, 우리에겐 삼천리 강산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해주셨던, 우리들이 존경한 스승께 선물로 드렸던, 이 회중시계를 자네한테 맡기고 가니, 부디 존경받는 스승이 되기를 바라네. 그리고 우리들 사랑과 존경의 증표인 이 시계는 삼십오 년 만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네. 나를 찾지 말게. 나는 시침이 없는 이 낡은 회중시계의 시간 속으로 사라지네. -<꿈꾸는 시계> 중에서-

최점수가 석방되던 날 같이 기뻐해 주기로 했던 친구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백주대낮에 야당 최고위원에 대한 테러 아닌 테러가 자행되는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여전히 추악한 이념의 악몽 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하고 있는 현실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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