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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남 탓으로 허송세월 하더니 이제는 하늘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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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이 부른 자연의 복수일까 대지를 촉촉히 적셔야 할 비가 그만 대지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장마라는 단어는 이제 한때 유행했던 패션마냥 빛바랜 사진 속 추억으로 그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소위 말하던 장마시즌이 끝나고 한여름 더위를 걱정하고 있던 찰나에 구름은 한반도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내리기를 멈추고 한바탕 퍼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 속으로 자취를 감추곤 한다. 이번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을 강타한 비는 인간이 왜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하는지를 새삼스레 보여주고 있다. 단 하룻밤새 500mm 가까이 내린 비는 수십 명의 인명을 앗아갔고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말았다. 가히 재앙의 전조라 할 만하다.
 
게다가 폭우로 수많은 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이 때 지도자의 안이한 현실인식은 이런 재앙이 이번으로 끝이 아닐 것 같은 불안감마저 주고 있다. 어제 서울 반포동에 있는 한강홍수통제소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폭우에 언급이 그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폭우 피해 상황 등을 현장점검하면서 "지금처럼 비가 많이 오면 어떤 도시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이런 용량의 비가 오는 데 맞춰 있는 도시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의 속뜻은 무슨 의미인가. 이번 폭우 피해는 인재가 아닌 천재라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서울시는 또 어떤가. 피해가 속출하자 100년만의 폭우 탓으로 돌리고 있다. 대부분의 시민들과 전문가들은 인재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들만 독야청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임회피라고 하기에는 그 피해가 너무도 크고 고도의 정치적 술수라고 하기에는 인면수심이다.  

쏟아지는 폭우야 그들이 말한대로 천재라지만 산이 무너지고 도시가 물에 잠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상황마저 천재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아무리 남 탓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지만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이들에게서 판도라 상자 맨 밑바닥에 남아있었다던 희망마저 날려보낸 느낌이다.

인재의 증거들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산사태의 원인은 무리한 개발로 허약해진 지반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마다 많지 않은 양의 비에도 침수가 반복되는 도시 상황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어느 전문가의 지적대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디자인 서울'이라는 명목 아래 여기저기 대리석으로 도배를 하는 상황에서 빗물이 빠져나갈 틈이 봉쇄되고 있으니 예견된 재앙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천재 운운은 자기변명일 뿐더러 심각한 자기 모순에 빠져있음을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에서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참석자들과 이번 폭우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기후변화가 무섭긴 무섭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바라보는 현실과 달리 자신의 이른바 '녹색성장'에 대해 여러 차례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 기조연설에서도 우리나라를 기후변화에 관한 한 얼리무버(Early Mover)로 소개하면서 각국의 자발적 참여를 호소하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따라 예상되는 각종 재난과 재앙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폭우 피해에 대해 '천재' 운운하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말했던 녹색성장이 얼마나 속빈 강정이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다. 4대강 파헤치는 것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말이다. 국민들은 다 아는데 대통령만 모르고 있었던 걸까.

한 나라의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한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를 따르는 측근들에 의해 정책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하늘 탓만 하는 대통령을 보고 어느 누가 또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재난에 대비할 각고의 노력을 하겠는가.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내 탓이요 해야 하는 게 모름지기 지도자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물론 수십년 전부터 반복되온 상황을 두고 자신에게만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에 대해 대통령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난 4년 동안 전 정권 탓만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대통령은 5년으로 단절된 개인의 영역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지속된, 또 앞으로 지속될 연속선 상 위의 연결고리다. 결국 남 탓하는 버릇은 제 얼굴에 침뱉는 격 밖에 안된다. 

오세훈 시장이 궁지에 몰려있는 게 안타까워서 그랬는지, 4대강 공사를 밀어부치고 있는 장본인으로서 이번 폭우 피해가 난개발로 인한 인재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피해가기 위해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재' 운운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회피다. 대통령의 이런 안이한 상황인식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악어는 먹이를 질근질근 씹으면서도 그 먹이에 대해 애도의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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