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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유산

라오스판 노근리양민학살사건, 탐피유 동굴을 가다

[불편한 유산 #3] 라오스 탐피유 동굴


 1950년 7월 26일, 3일동안 미군이 민간인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이 시작된 날이다. 꼬박 61년이 흘렀지만 남은 이들의 아픔은 여전하다.  라오스에도 똑같은 사건이 있었다. 학살자는 이번에도 미군이었다.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437명을 동굴에서 학살한 탐피유사건이다. 그 불편한 전쟁 유산의 현장을 찾았다. 


포탄 연기 사이로 흘러 나오던 비명소리는 여전히 동굴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름도 제대로 적히지 못한 무덤의 주인이 되어야만 했던 이들. 왜 죽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목숨을 빼앗긴 그들의 눈물은, 이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흘러 내리고 있었다.


40여년이 지났지만 시간은 그렇게 멈춰 있다.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4백명이 넘는 민간인이 몰살 당한 불편한 전쟁 유산의 한 현장, 라오스 탐피유 동굴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



벌건 민둥산, 고엽제와 불발탄의 흔적


라오스 동부 씨앙쿠앙 지방에 있는 폰사완 중심가에서 차를 탔다. 시내를 빠져 나와 구불구불한 7번국도를 타고 동쪽 베트남 방향으로 향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다. 라오스 여행을 몇 주간 했지만 차창 밖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주변의 산들은 나무와 풀들이 듬성듬성 있을 뿐, 대부분 벌건 흙빛의 민둥산이다. 울창한 숲이 가득한 라오스의 여느 지역과 확실이 다른 모습이다. 


현지 가이드가 차분히 입을 뗐다. 전쟁이 흔적이라고 했다. 미군이 뿌린 고엽제로 식물이 잘자라지 않는 곳도 있고, 전쟁 중 터지지 않은 불발탄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숲을 제거한 곳도 있다고 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미군은 라오스에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중 폭격작전을 시행했다. 약 58만대의 폭격기들이 라오스 상공에서 2백만톤의 폭탄을 쏟아 부었다. 남베트남으로 물자를 공급하는 북베트남의 호치민 루트를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라오스 동부지역은 일명 비밀 전쟁의 장이 됐다. 시앙쿠앙 지방은 라오스에서 가장 큰 전쟁 피해지역이다. 


씁쓸한 풍경을 바라보고 한시간쯤 달려 조용한 시골로 들어섰다. 높지 않은 산이 있는 적막한 공터에 내렸다. 탐피유 동굴 입구였다.


탐피유 동굴 앞 동상, 희생된 민간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광기 어린 폭격, 437명의 민간을 학살로 이어져


1968년 11월 24일, 평소와 마찬가지로 동굴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1964년부터 미국이 라오스를 무차별 폭격하자 마을 사람들은 주변 동굴로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아이들과 부녀자들, 노인들이었다. 건강한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동굴 밖에서 주로 생활했다.


탐피유 동굴은 인근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동굴이었다. 이곳엔 임시 병원도 있었다. 전쟁으로 상처난 몸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동굴 한 구석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임시 학교도 있었다.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재잘거리는 웃음소리는 동굴 속의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땅이 뒤흔들렸다. 동굴 속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미군이 탐피유 동굴을 정밀 타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발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고 산 등성이에 맞았다. 모두가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사이 미군 전투기는 두번째 폭격을 했다. 이번에도 빗나갔다. 


동굴 속은 공포로 가득했다. 포탄이 터진 진동으로 동굴 위에서 돌들이 떨어져 이곳저곳에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세번째 포탄도 명중하지 못했다. 모두 노약자들이라 동굴을 빠져나갈 엄두는 내지 못한 채 폭격이 멈추기만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운은 그 때까지였다. 네번째 미사일은 정확하게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포탄 소리가 가라 앉자 동굴 속은 조용해졌다. 숨소리 하나 없었다. 


모두 죽었다. 437명의 민간인들이었다. 전쟁의 광기가 세계에서 가장 평온하고 순박한 라오스 아이들과 사람들을 그렇게 처참하게 학살했다.


탐피유 동굴 민간인 희생자 기념관, 크진 않지만 민간인 학살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인근에서 가장 컸던 탐피유 동굴에는 병원, 학교 등의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포격이 있은 후에 동굴 안에 모든 사람이 죽었다. 포격 당시 진동으로 돌과
흙이 떨어져 2m 가량 바닥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 밑에 여전히 희생자들의 유해가 남아있다. 

동굴 한쪽에는 임산부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이 곳도 포탄으로 모두 파괴됐다.

 동굴에서 발견된 유해

 전쟁에 사용됐던 포탄들, 특히 불발탄이 많아 전쟁 후에도 피해가 심각하다.

 전쟁 후 불발탄에 의해 희생된 라오스 한 아이, 지금도 한해 40여명의 아이들이 죽거나 다친다.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라오스의 수많은 불상과 절도 파괴됐다.
 

동굴 앞에는 희생자들의 묘지가 있다.

 탐피유 동굴 첫번째 민간인 희생자의 묘지, 이름조차 알 수 없어 숫자로 1이라 했다.

 탐피유 동굴 입구

 동굴 입구에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초가 놓여 있었다.

 동굴 내부 전경. 저 바닥 아래 여전히 희생자들의 유해와 전쟁 당시 쓰였던 물건들이 묻혀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동굴 안의 모습

전쟁 당시 쓰여졌던 포탄, 이젠 녹슬어 기념관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시 미군 민간인 학살 5000여명


1950년 7월 26일은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이 시작된 날이다. 한국전쟁 중 미군은 남으로 피난가던 민간인들을 노근리 철교 밑 일명 쌍굴다리에 몰아 넣고 3일동안 전투기로 폭격하고 총으로 쏴 댔다. 그렇게 300여명이 죽었다.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았고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았던, 단지 살기 위해 남으로 내려가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노근리 뿐 아니다. 얼마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에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172건이 발생했으며, 그 결과 최소 5천291명이 죽었다. 90% 가까이가 무차별 공중 폭격에 의해서였다. 정부의 공식적인 조사 결과가 이러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은 훨씬 더할 것이다.


베트남 미라이, 소말리아 하요, 이라크 하디타, 아프간 등 수많은 지역에서도 미군은 양민들을 학살했다. 최근에는 임산부를 죽이고, 서서히 총을 쏴면서 저희들끼리 킬킬대며 웃으며 죽이는 사실도 밝혀졌다.


민간인이 죽었다. 대부분 어린아이들과 여자들, 그리고 노인들이다. 하지만 전쟁 중에 당한 그들의 죽음은 역사 속에서 쓸쓸하게 흘러 가고 있다. 제대로 된 진상 파악에는 관심이 없다. 문제가 불거지면 형식적인 사과에 그칠 뿐이다. 처참하게 죽어간 이들만 억울한 뿐이다.



끝나지 않은 전쟁


하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이하 SIPRI)가 발표한 ‘군비·군축·국제안보 연감’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1년에 1000명 넘는 희생자를 낳은 전쟁이 해마다 15건 이상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2009년 17건, 2008년 16건, 2007년 14건, 2006년 17건, 2005년 17건, 2004년 19건이 발생했다. 이 전쟁의 중심에는 항상 미국이 있다.


군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SIPRI가 2011년에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전세계 군비지출액은 약 1조6천억달러이다. 1999년 8천490억 달러에서 약 2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은 작년 한 해 전세계 군비의 약 43%에 달하는 비용을 군비에 지출했다. 언제나 그렇듯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군비에 지출하고 있다.


군비 경쟁은 군수업체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 SIPRI의 2011년 공개 보고서를 보면 2009년에 세계 100대 군수업체들(중국 제외)의 군수품 판매액이 4천1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2002년 이후 약 60%가 늘어났다. 미국은 이 분야에서도 압도적이다. 2009년 100대 군수업체의 판매액 중 61.5%는 미국의 45개 업체에 의한 것이다. 세계 10대 군수업체 중 7곳이 미국 업체이다.


물론 전쟁과 학살이 미군 만의 일이겠는가.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참상은 비밀이 아닌지 오래됐다. 키르기스스탄 베잇에서는 소련군에 의해 1937년 138명이 죽은 사건도 있었다. 이 학살도 1991년에서야 밝혀졌다. 독일이 유럽에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했던 일은 굳이 입에 담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의 지점은 현재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최강국인 나라가 군비를 축소하기는 커녕 군비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을 처참하게 학살한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기 보다 비인도적인 무기를 금지하는 국제 협약 조차 제대로 가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평화보다는 이미 너무나도 커버린 군수산업을 위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죄 없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어디선간 민간인들이 학살당하고 있다. 단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잔인하게 죽어가는 것이다. 문득 몇 년 전 한 잡지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마음이 매우 아픈 날이다.


“거대한 고통으로 신음하는 세계,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일 저녁 굶은 채 잠자리에 드는 이 세계에서 군사비 지출은 1조5천억 달러에 달했다. 즉, 이는 이 지구상의 모든 생존 인물에게 거의 200달러씩 부담을 지우는 것을 의미한다. 지출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얘기다. 세계가 더 안전할 수 있도록, 막대한 자원이 경제발전, 그리고 법치국가를 강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군비 축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2009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