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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사쿠라 불나방' 친일 문학인들을 향한 촌철살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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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의 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2011.3)

1945년 8월15일 아침, 김동인은 조선총독부 검열과장 아베 다츠이치를 만났다. 김동인은 아베에게 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 단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탁했다. 그 날이 어떤 날이었던가! 이미 정오에 있을 일본의 항복 선언을 알고 있던 아베는 김동인의 청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의 자존심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는 당시의 장면을 상상해 보면 손발이 절로 오그라듬을 느낀다.

김동인이 누군가? 이 땅에 실질적인 근대문학의 꽃을 피운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그가 아닌가! <감자>, <배따라기>,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 등 김동인의 소설들을 읽어보지 않고는 정상적인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교과서와 참고서에는 그의 작품들로 넘쳐났다. 그의 작품을 통해 일제 강점기 조선 민중들의 궁핍한 삶과 조국 해방을 향한 선조들의 투쟁 정신을 배웠다. 그러나 김동인이 사쿠라에 매혹되어 해방되던 날 아침까지 총독부를 드나들던 불나방이었다면 이 역사적 모순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쿠라 불나방>의 저자 이윤옥 시인은 이런 김동인에게 다음과 같은 촌철살인의 시를 헌사한다.

아베씨 내 좋은 아이디어가 있소 광복 두 시간 전 총독부 학무국 동인이 찾아간 사무실 안 침묵이 흐른다/아 아베씨 좀 보소 그걸 만듭시다. 시국에 공헌할 작가 단을 꾸리자구요/아베, 머리 절레절레 흔든 뜻은 이런 쓰레기 같은 조선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아부하기에 바쁜 조선놈 어서 꺼졌으면 싶었겠지/그리고 두 시간 뒤 조선을 빛을 찾았다 동인이 시국 작가 단 꾸려 줄 생각 하고 있을 때 만주 벌판 북풍한설 속 독립군이 있어 나라 찾으매 아! 어찌도 이리 훌륭한 조상이 있는 것이냐! 어찌도 이러 부끄러운 조상이 있는 것이냐! -<사쿠라 불나방> '광복 두 시간 전까지 친일하던 김동인' 중에서-

통쾌하다. 이윤옥의 시집 <사쿠라 불나방>은 잘못된 과거청산을 말하기 전에 십 년 묵은 체증이 일시에 풀리는 듯 시원함을 준다. 저자는 위대한 작가로 포장된 친일 문학인들에 대해 그들의 개인사가 아닌 역사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집 <사쿠라 불나방>은 저자 본연의 영역인 시보다는 친일로 점철된 근대 문학인들에 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한 고발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저자는 해방이 된 지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이 참을 수 없을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특히 친일 문학인들에 대한 청산은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논하기 전에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한 교육적 차원에서히도 시급하게 마침표를 찍어야 할 중차대한 일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제대로 된 친일파 청산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 한데도 혹자들은 발적적 미래를 위해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거나 그때 친일 안 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친일파 청산을 반대하는 무리들 또한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여기 소개된 친일 문학학인들 만큼이나 천박한 역사 인식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며 역사는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친일파 청산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다. 보다 발전적인 미래를 향한 길목에서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국화 옆에서>라는 시로 유명한 서정주는 왜 잘못된 역사의 청산이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조선 청년들에게 가미가제 특공대원이 되라고 부르짖었던 서정주는 해방이 되고서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 시의 대상은 피로 정권을 잡은 살인마 전두환이다.

처음으로/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사쿠라 불나방> '오장마쓰이를 위한 사모곡, 서정주' 중에서-

친일파 청산은 죽은 자에 대한 부관참시가 아니다. 서정주처럼 빈약한 역사의식을 가진 자들이 또다시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 친일파 청산의 핵심이다. 순수 문학인도, 민족주의 문학인도, 좌파 문학인도 너나 할것 없이 사쿠라 불나방의 대열에 줄을 섰던 것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뿐인가!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땅 반환소송을 하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 장교로, 해방된 조국에서는 장기집권을 위해 무수한 생명을 앗아간 독재자의 딸이 아버지에 대한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나라가 이 곳이 아니던가! 우리는 지금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못한 혹독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친일파 청산에는 거창하고 대단한 명분이나 이유보다는 미래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물려주기 위한 잘못된 과거의 반성이라는 소박한 꿈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이 꿈을 위해 저자 이윤옥 시인은 20명의 친일 문학인들을 선정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계간 「실천문학」,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공동 발표한 문학 분야 친일 인물 42인 중에서 19명을 선정했고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이완용의 오른팔이자 <혈의 누> 작가인 이인직을 포함시켰다. 최소한 이들 20인의 친일행적만이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김기진(평론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 김동인(감자), 김동환(국경의 밤), 김상용(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문집(문학 평론가), 김억(해파리의 노래), 김용제(문학 평론가), 노천명(사슴), 모윤숙(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서정주(국화 옆에서), 유진오(김강사와 T교수), 유치진(소), 이광수(무정), 정비석(자유부인), 주요한(불놀이), 채만식(탁류), 최남선(해에게서 소년에게), 최재서(문학 평론가), 최정희(인맥, 김동환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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