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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긴글

개교 40주년, KAIST의 전환점이 되어야

 올해로 개교 40주년을 맞은 KAIST에게 2011년은, 앞으로의 40년을 좌우하는 전환점이 되어야한다.

 1971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원(KAIS)이 설립되고 올해로 40년이 되었다. 국가가 필요로하는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연구중심 대학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하여 설립된 KAIST는 국가와 국민들의 성원에 부응하여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이공학 교육기관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세계과학계가 선망하는 대학이 되기 위해, KAIST는 지난 2006년 미국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지낸 서남표 교수를 총장으로 선임하였고 모두의 기대를 고 '서남표호'의 항해는 시작되었다.

대학경쟁력을 위한 서총장의 개혁, 언론 칭찬일색

 임기 초기부터 차등 등록금제, 전면 영어수업 등 파격적인 정책들을 내놓은 '서남표호'는 언론의 호의적인 보도 순풍을 맞아 빠른 개혁을 추진하였다. 외국 기관에서 실시한 대학순위가 올라가고 수많은 인사들이 기부금을 내놓는 등의 개혁의 성과들은 수많은 언론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타 대학들도 카이스트를 따라 영어 강의를 도입하였고 이는 곧 글로벌화의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서총장의 개혁이 칭송받던 때, 그 어디에도 서총장의 개혁 방침에 교수와 학생들과의 협의가 빠져있었다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용자들' KAIST 용기있는 학생들의 모임에서 프레시안에 기고한, '카이스트 '서남표식 교육혁신', 그 실상은…'만이 구성원들의 의견이 묵살되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었다.

과도한 보도 경쟁, 사태의 본질은 어디에

 문제가 제기된 것은 서남표 총장이 연임에 성공한 직후인 2011년, 넉 달만에 네명의 학생들이 연이어 자살한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언론들은 일제히 강도높은 서남표 총장의 개혁을 문제삼고 나섰다. 연일 신문과 뉴스에서는 서남표호의 개혁이 구성원들간의 과도한 경쟁을 부추겼으며 이로 인해 구성원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려진 '불행한 카이스트 학생들'에 대한 과장된 기사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언론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 지난 4월 8일 '총장과의 대화' 간담회가 기자들의 출입을 막고 비공개로 진행된 까닭도 이에 기인한다. 기자가 있는 자리에서는 답변할 수 없다는 서총장의 단호한 의지도 있었지만, 왜곡된 기사에 대한 학생들의 우려가 비공개 진행을 가능케했다.

약 천 여명의 학생이 모여 논의, 비상총학생회 성사

 외부의 뜨거운 관심속에서, 지난 4월 13일 저녁 7시 KAIST 본관 앞 잔디밭에는 천 여명의 학생들이 모인 사상 초유의 비상학생총회가 진행되었다. 의사정족수의 두 배에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이 사태에 대한 학생들의 참여 의지를 보였다. 크게 네 가지의 안건으로 구성된 이번 총회에서는 “비민주적인 원규 개정 (학교 정책 결정 과정에 학생 대표 참여 보 장)”, “학생 요구안 관철”, “차기총장선출시 학생투표권 보장” 등이 가결되었다. 그 중 두번째 안건이었던 '경쟁 위주의 제도 개혁의 실패 인정을 요구한다.’는 재석 852명 중 찬성 416명, 반대 317명으로 재석인원 과반의 찬성에 10명이 부족하여 부결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언론들의 확대해석은 <생들 "서 총장 개혁, 실패 아니다>(조선, 동아 대덕넷, 4월 14일) 기사를 통해 안건 부결을 왜곡하였다. 시정을 요구한 총학생회의 요구는 묵살되었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KAIST, 혁신비상위원회

 지난 15일 서울 강남 메리어트 호텔에서 KAIST 임시 이사회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에서 15명의 이사들이 '혁신비상위원회'에서 개혁 정책에 대한 논의를 더 진행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KAIST 사태는 진정국면으로 들어선 것으로 비춰진다. 서총장 지명으로 최병규 교학부총장, 주대준 대외부총장, 양동열 연구부총장, 이균민 교무처장, 박희경 기획처장 5명, 평교수 측에서는 경종민, 김정회, 한재흥, 박현욱, 임세영 교수 5명이 참여하며 학생 대표로서 곽영출 학부총학생회장과 안상현 대학원총학생회장, 이병찬 전 학부부총학생회장 등 3명이 혁신비상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칫 자신들의 의견이 또 묻히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이번 임시 이사회에 제출된 학교측의 개선안은 또다시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앞으로 삼개월동안 진행될 혁신비상위원회에서 서총장의 약속이 계속 지속될지 미지수이다. 2006년 총장에 임명된 이후, 서남표 총장은 학생들을 당장의 이익을 쫓는 어리석은 젊은이로 치부해왔다. 'Anyway good night'이라는 인사와 함께 퇴장한 지난 2008년의 총장 간담회때의 서총장의 모습은 지난 8일 간담회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학생들은 말한다.

지난 40년간, 국민들로부터 이토록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을까

 2000년대 초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카이스트>가 많은 사랑을 받으며 카이스트는 '천재들의 공부터'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수학, 과학에 재능있는 영재들이 모여 진실을 탐구하고 로봇 축구와 같은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모습은 국민의 세금으로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하였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KAIST는 국내 대학교육의 틀을 바꾸며 새로운 제도의 시험장 노릇을 해왔다. 지난 4월 14일  MBC 백분토론에서 정재승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가 지적했듯 카이스트의 무시험전형, 무학년/무학과제도 운영, 학사과정에서부터 연구과목 개설 등의 획기적인 제도들은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를 이끌었다. 구성원들의 능력을 믿고 공부와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기에,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며 투자를 계속 할 수 있었다.

 국민들에게 KAIST의 실패는 곧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실패 그리고 과학기술 정책의 실패로 다가올 수 있다. 40주년을 맞은 KAIST에게 다음 40년을 위한 숨고르기가 필요한 시기이다. 미래의 한국을 이끌 창의적인 리더를 키울 KAIST, 이 새로운 도약에서는 학교 구성원들의 생각이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