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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흔적/핫이슈

학생들이 서남표 총장 개혁실패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핫이슈] 동아와 조선일보의 이상한 카이스트 왜곡보도

카이스트 학부총학생회 비상총회가 13일 오후 7시에 열렸습니다. 개교 이래 첫 비상총회이기 때문에 관심을 모았었죠. 오늘(14일) 아침신문들도 이 내용을 주요기사로 다루고 있더군요.

그런데 일부 언론이 이 사안을 다루는 방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부분을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팩트에 대한 해석은 자유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통상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그건 왜곡에 가깝습니다. 오늘(14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카이스트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서남표 총장 개혁 실패를 학생들이 정면으로 거부했다는 동아일보

동아일보의 1면 기사 제목은 <KAIST 학생들 “서 총장 개혁, 실패 아니다”>입니다. 제목도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기사 첫 문장은 왜곡에 가깝습니다. 인용합니다.

“KAIST 학부 학생들은 13일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교 이래 첫 비상학생총회를 열고 서남표 총장의 개혁 정책을 실패로 낙인찍으려는 시도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물론 ‘서남표 총장에 대한 개혁실패 인정 요구’에 대해 학생들이 부결시킨 건 맞습니다. 이건 팩트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투표 내용을 보면 ‘부결=개혁 실패 아니다’로 단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투표에 참여한 852명 가운데 ‘개혁실패 인정요구’에 찬성한 학생이 416명입니다. 반대가 317명, 기권이 119명이죠. 기권을 제외하고 찬반으로만 따지면 ‘서남표 총장의 개혁실패 인정 요구’를 지지한 학생이 더 많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반에 10명이 미치지 못해 부결이 된 겁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투표결과를 동아일보는 ‘자기식대로’ 단정을 해서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통과시킨 ‘반 서남표 정책들’은 무언가

동아일보의 보도가 왜곡에 가깝다는 건 다른 안건들을 통해서도 확인이 됩니다. 볼까요. 학교 정책결정 과정에 학생대표들이 참여하고 의결권을 보장하도록 하자는 안건에는 914명 중 872명이 찬성했습니다.

여기에 차등수업료 전면 폐지, 재수강 횟수 제한 폐지, 전면 영어강의 방침 개정, 인문사회 선택과목 증설, 학사경고 1학년생 지원 강화, 총장선출 시 학생투표권 보장 등의 요구 안건들도 모두 통과됐습니다. ‘서남표 총장에 대한 개혁실패 인정 요구’만 과반에 10명이 모자라 부결됐을 뿐 나머지 안건들은 거의 모두 통과됐다는 얘기입니다. 통과된 안건들은 서남표 총장이 밀어붙인 각종 정책들에 반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투표결과를 동아일보는 <KAIST 학생들 “서 총장 개혁, 실패 아니다”>로 해석하더니 “(학생들이) 서남표 총장의 개혁 정책을 실패로 낙인찍으려는 시도를 정면으로 거부했다”고 보도합니다. 이 기사 상단에는 서 총장이 학생들을 껴안는 장면이 사진으로 배치돼 있습니다. 기사와 사진을 이런 식으로 배치하면 기사를 꼼꼼히 보지 않은 독자들은 잘못된 정보를 가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 정도면 왜곡에 가깝다는 얘기입니다.

카이스트 학생 절반 이상 “서남표 개혁 실패 아니다”라는 조선일보

조선일보 오늘(14일자 12면) 보도도 문제가 많습니다. 조선일보는 <카이스트 학생 절반 이상 “서남표 개혁 실패 아니다”>라고 제목을 뽑았는데요, 일단 이 제목부터 왜곡의 여지가 많습니다. 일부 보도내용을 인용합니다.

“카이스트 학부 총학생회는 13일 오후 7시부터 대학본부 앞에서 첫 비상총회를 열고 ‘(서 총장의) 경쟁 위주의 제도 개혁 실패 인정을 요구한다’는 안건에 대해 투표를 진행했으나, 찬성 인원(416명·48.8%)이 과반수에 못 미쳐 부결됐다. 반대는 317명(37.2%), 기권은 119(14.0%)명이었다. 학생 절반 이상이 서 총장 개혁이 실패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일보는 반대와 기권을 합쳐 ‘학생 절반 이상이 서 총장 개혁이 실패라고 대답하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니까 ‘기권’과 ‘반대’를 같은 표심으로 해석을 한 것이죠. ‘기권=반대’라는 등식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들 마음대로 성립을 시킨 겁니다.

물론 ‘조선일보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투표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해석의 여지가 많은 부분을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건 왜곡에 가깝습니다. 이번 카이스트 학생들 가운데 기권을 선택한 14%의 표심을 반대로 등치시키는 건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학생들과 포옹하는 사진을 함께 배치하면서 제목을 이런 식으로 뽑는 건 왜곡입니다.

조선일보는 그래도 동아일보에 비해선 ‘오버’가 덜한 편입니다. “학생 4명과 교수 1명의 잇따른 자살로 혼란에 빠졌던 카이스트(KAIST)에서 학생들이 서남표 총장의 개혁 조치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으니까요. “서남표 총장의 개혁 정책을 실패로 낙인찍으려는 시도를 정면으로 거부했다”는 동아일보보다는 그래도 ‘사실전달’에 공평을 기했다는 말입니다. ‘강하게 반대하지 않겠다’와 ‘정면으로 거부했다’는 차이가 크니까요.

<사진(위)=동아일보 2011년 4월14일자 1면>
<사진(중간)=경향신문 2011년 4월14일자 5면>
<사진(아래)=조선일보 2011년 4월14일자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