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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친일반성과 사상전환 그리고 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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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태준의 『해방 전후』/「문학」1호(1946.8)/창비사 펴냄

이태준이
1946년 「문학」지를 통해 발표한 소설 『해방 전후』는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태준은 『해방 전후』를 통해 급격한 사상전환을 시도한다. 일제시대에도 순수문학만을 고집했고 경향파 작가들과도 거리를 두었던 그가 해방 이후 급작스레 사회주의자로 변신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월북한 이후 숙청 당하기까지의 과정도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 이태준이다. 『해방 전후』가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했으니 소설의 이해를 위해서도 작가 이태준에 대한 간략하나마 소개가 필요할 듯 하다.

 

상허(尙虛) 이태준은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했다. 1925년 여운형의 추천으로 시 <오몽녀>를 시대일보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앞서 살펴본대로 『까마귀』, 『달밤』, 『복덕방』 등 60여 편의 단편을 발표하면서 한국단편소설의 완성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를 한국의 모파상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태준이 활동한 문인단체는 구인회 1933년 이효석, 유치진, 정지용 등 9명의 문인들이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반발해 순수문학을 기치로 발족했다. 이후 회원의 탈퇴와 가입이 반복되었으나 이름처럼 늘 9명의 회원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순수문학을 추구했던 구인회작가들은 일제말기 친일로 돌아서게 되고 이에 환멸을 느낀 이태준은 철원으로 낙향하게 된다. 이태준이 일제시대 지식인 특히 문인들의 족쇄였던 친일에서 자유로운 몇 안 되는 작가로 평가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도 친일문인단체인 문인보국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를 친일작가로 분류할 만큼의 친일행적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작가적 양심에는 작지않은 오점이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 작가의 수기라는 소설 『해방 전후』에는 이태준의 이력에서 살펴봤던 대부분의 내용이 그대로 등장한다. 그는 이 소설을 끝으로 월북을 감행한다. 그는 주인공 현을 통해 해방 전 친일행위를 반성하고 해방 후 겪게 되는 이념적 고민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크게 부각되지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던 그의 친일행위 반성은 그가 느닷없이 감행하게 되는 사상전환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는 왜 한 편의 짧은 소설에 민감한 두 문제를 동시에 언급하고는 돌연 사회주의자가 되고 월북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구인회의 설립목적에서도 살펴봤듯이 해방 전 저자는 당시 유행하던 프로문학에 확고한 반대의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의 아직까지의 작품세계는 대개 신변적인 것이 많았다. 신변적인 것에 즐기어 한계를 둔 것은 아니나 계급보다 민족의 비애에 더 솔직했던 그는 계급에 편향했던 좌익엔 차라리 반감이었고 그렇다고 일제의 조선민족정책에 정면 충돌로 나서기에는 현만이 아니라 조선문학의 진용 전체가 너무나 미약했고 너무나 국제적으로 고립해 있었다. -『해방 전후』 중에서-

 

그러나 그는 동료들의 친일행위를 바로 옆에서 목격하게 되었고 자신 또한 미약하나마 친일에 동조했다. 해방 후 돌이켜보매 그가 그토록 반대했던 사회주의 진영과 자신이 몸담았던 민족주의 진영의 엇갈린 행보는 그로 하여금 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잡한 고민을 던져주지 않았을까? 저자는 자기변명에 가깝게 친일행적에 대한 반성을 한다.

 

가끔 품속에 서린 현실자로서의 고민이 불끈거리지 않았음은 아니나 가혹한 검열제도 밑에서는 오직 인종(인종)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 체관의 세계로밖에는 열릴 길이 없었던 것이다. -『해방 전후』 중에서-

 

게다가 저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해방 공간의 모습들은 실망 그 자체였다. 임시정부는 민중이 꿈꾸는 것 같은 위용은커녕 개인 자격으로도 쉽사리 나타나주지 않았다. 또 해방 공간에서의 남과 북은 상반된 모습으로 저자의 신념을 흔들어 놓는다.

 

북쪽에서는 소련군이 일본군을 여지없이 무찌르며 조선인의 골수에 사무친 원한을 충분히 이해해서 왜적에 대한 철저한 소탕을 개시한 듯 들리나, 미국군은 조선 민중의 기대는 모른 척하고 일본인들에게 관대한 삐라부터를 뿌리어, 아직도 총독부와 일본 군대가 조선 민중에게 보아라 미국은 아직 일본과 상대이지 너희 따위 민족은 문제가 아니다하는 자세를 부리기 좋게 하였고… -『해방 전후』 중에서-

 

무엇보다도 저자의 분신과도 같이 등장하는 김직원이라는 인물에 대한 실망은 그의 선택에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된 듯 보인다. 이태준의 다른 소설에서도 언급했듯이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소설 속에 자주 담아내어 반근대주의 작가라는 비판까지 받던 그였다. 유교학자인 김직원은 사상전환 전까지의 이태준 자신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현은 차츰 해방 후 혼란스러웠던 좌우 대립 와중에 진정한 해방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가 생각하는 완전 독립은 하나된 조국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우 대립보다는 좌우 합작이 답이라 생각했다. 결국 외세에 의한 불완전한 독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현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우익진영의 결정과 달리 삼상회의의 찬탁을 지지하게 된다. ‘김직원에게 이런 현의 결정은 공산주의자로 보일 뿐이었다. 현은 고루한 신념의 틀에 갇혀있는 김직원을 설득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대립의 골만 깊어간다.

 

이렇게 역사적 또는 국제적인 견해가 없이 단순하게, 독립전쟁을 해 얻은 해방으로 착각하는 사람에겐 여간 기술로는 계몽이 불가능하고, 현 자신에게 그런 기술이 없음을 깨닫자 그저 웃는 낯으로 음식을 권했을 뿐이다. -『해방 전후』 중에서-

 

현은 김직원에게서 몰락해가는 조국을 한탄하며 곤명호에 몸을 던진 청나라 학자 왕국유의 애틋한 최후를 본다.

 

한 작가의 수기라는 『해방 전후』가 이태준 자신의 이야기가 분명하다면 그는 소설 속 현과 비슷한 경험적 과정을 통해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상전환을 위해 친일반성을 했던 친일반성의 결과물이 사상전환이 됐던 그에게 월북은 필연적 선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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