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쥐불놀이, 도박 그리고 불륜

728x90

이기영의 <서화>/1933년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던
30,40대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쥐불놀이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설날 세뱃돈만큼이나 소중하게 모아두었던 빈 깡통도 보름 뒤에 있을 쥐불놀이를 위해서였다. 깡통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마른 풀이나 종이로 밑불을 놓아 불씨를 만든 다음 마른 장작을 빼곡히 채운다. 꺼지지나 않을까 깡통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너른 들판 한가운데로 모인다. 어느 틈엔가 들판은 쥐불을 하나씩 들고 나온 동네 아이들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누구의 신호랄 것도 없이 각자 크게 원을 그리며 쥐불을 돌리면 겨울 들녘은 온통 새빨갛게 불춤의 향연이 한판 벌어진다.
 

작가 이기영의 시선은 지금 이 쥐불놀이를 향하고 있다.

 

한데 난데없는 불빛이 그 산 밑으로 반짝이었다. 그것은 마치 땅 위로 태양 하나가 또 하나 솟아오르는 것처럼불길은 볼 동안에 점점 커갔다. 그러자 도깨비불 같은 불들이 예서 제서 웅기중기 일어났다. -『서화』 중에서-

 

쥐불놀이는 보통 정월 대보름에 땅 속의 해충이나 유충, 호시탐탐 곡식을 탐내는 들쥐들을 몰아내기 위해 행해지곤 했다.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일종의 세시풍속이었다. 쥐불놀이의 마지막에 깡통에 남은 불씨로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불을 지피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였다. 그런 쥐불놀이가 지금은 어느 전통놀이 체험장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어버렸다. 쥐불놀이의 풍속이 사라지는 현상은 이미 일제 강점기 초기부터 시작되었나 보다. 작가 이기영은 쥐불놀이가 사라져 가는 농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이기영의 소설 『서화』를 우리말로 옮기면 쥐 서자에 불 화자니 쥐불놀이란 뜻일게다. 이기영은 피폐해져 가는 농촌의 현실을 사라져가는 쥐불놀이를 통해 바라본다. 또 쥐불놀이는 봉건적 인습과 사고를 태워버리는 상징이 되고 있다. 저자의 시선은 쥐불놀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허구한 날 도박에 미쳐있고 불륜에 빠져있는 반개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제법 매력있는 외모를 가진 돌쇠는 어리버리 응삼이를 노름판으로 불러들여 하룻밤새 큰 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응삼이의 소판 돈을 노리는 이가 비단 돌쇠뿐만은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응삼이의 돈을 돌쇠가 차지한 것 뿐이었다. 게다가 이 돌쇠란 놈은 응삼이의 아내 이쁜이와 또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이 노름사건으로 온 동네가 떠들썩하지만 돌쇠도 할 말은 있다.

 

여보 어머니 하루 진종일 나무를 한 짐 잔뜩 해서 갖다 판대야 십오 전 받기가 어렵고 품을 팔래도 팔 수가 없지 않소. 그런데 노름을 하면 하룻밤에도 몇 백 원이 왔다갔다 한단 말이야. 일 년 내 남의 농사를 짓는대야 남는 것이 무에냐 말야. 나도 그전에는 착실히 농사를 지어보았는데…” -『서화』 중에서

 

아버지 김첨지도 돌쇠를 마냥 꾸짖을 수만은 없었다. 김첨지는 이참사집 논 열마지기를 얻어부치는 소작인이었다. 해마다 농사를 지어야 도조를 치르고 구실을 치르고 나면 오히려 빚만 늘어나는 오그랑장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 주인이라도 나타나면 도조를 마음대로 올리곤 했다. 기근에 소작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런 논이라도 부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요즘말로 투잡이니 쓰리잡이니 하는 것들은 김첨지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낚시질도 하고 나무도 해다 팔고 참외장사도 하고 도야지도 길러보고 누에도 쳐보았지만 모두 똥값이었다. 노름꾼이 되어가는 아들을 마냥 꾸짖을 수만은 없는 이유였다.

 

이 세상이 도모지 어떻게 되어갈 셈인고?” -『서화』 중에서

 

여기 돌쇠의 하룻밤 행운(?)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동네 젊은이가 있다. 바로 면서기 원준이다. 그는 돌쇠와 이쁜이의 불륜행각까지 목격하고는 이쁜이를 겁탈하려다 실패한 속물 지식인이다. 분한 마음에 원준이는 구장을 통해 마을회의를 소집하게 된다. 마을회의의 안건은 당연히 도박과 풍기문란이었다. 여기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광조, 그는 소설 『서화』를 읽는 내내 나타나지 않았던 인물이다. 동경유학생 출신의 광조는 이기영의 또 다른 소설 『민촌』에 등장하는 서울댁을 연상시킨다.

 

광조는 도박은 비단 어느 한 사람(돌쇠)만의 문제가 아닌 동네 전체의 문제이므로 누구를 탓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또 풍기문란에 대해서는 남녀간의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강제결혼과 조혼의 폐습이라고 주장한다. 동네사람들은 광조의 주장에 호응한다. 불의의 일격을 맞은 원준은 하루 아침에 고쳐질 폐습이 아니라면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광조의 주장과 신념은 확고했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생활상에 어떤 잘못을 발견할 때는 우리는 그 즉시로 그것을 고쳐야 할 의무가 있을 줄 압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 잘못을 영영 고치지 못하고 말을 것이외다.” -『서화』 중에서-

 

이렇게 마을회의도 끝이 나고 소설 『서화』도 마을회의를 엿들은 이쁜이와 돌쇠의 알콩달콩 대화 속에 막을 내리게 된다. 얼핏 보면 작가 이기영은 쥐불놀이 중에 벌어진 노름과 불륜을 광조를 통해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닐게다. 가난 앞에 도덕이며 윤리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기영은 무너져가는 농촌현실을 보았고 그 속에서 계급적 자각을 하게 되는 농민들을 꿈꾸었을 것이다. 물론 광조의 일장연설에 동네 사람들은 호응만 할 뿐 여전히 계급의식에는 눈을 뜨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또 저자는 쥐불놀이를 통해 농촌의 참상을 더욱 격화시키는 인습과 폐습을 일소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마치 들쥐와 해충이 바글거리는 들녘에 쥐불을 놓는 것처럼

 

이기영의 소설이 빛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당시의 다른 작가들처럼 특정 지식인을 내세운 시혜적 입장에서 농촌현실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농민 자신들이다. 농민들 스스로가 현실을 직시하고 자각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작가 이기영이 쥐불놀이가 사라져가는 현실을 피폐해가는 농촌의 모습으로 그렸다면 지금은 아예 박물관의 유물이 되어버린 쥐불놀이가 상징하는 우리 농촌의 현실은 어떠한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