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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때르릉", 당신은 전화가 있어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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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전화>/1925년

1876년 전화를 처음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장인 가디너 허바드는 당시 미국 최고의 전신회사인 웨스턴유니언사를 찾아가 전화기 특허권을 사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웨스턴유니언사는 내부 검토 결과 전화기는 신기한 장난감에 불과하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전화기는 결점이 너무 많아 통신수단으로 쓸 수 없다. 그저 장난감이나 신기한 물건일뿐이다.”

사실 전화를 최초 발명한 사람은 벨이 아니다. 안토니오 무치가 이미 1854년에 기계식 전화기를 발명했으나 1876년 벨이 전기식 전화기의 특허를 취득함으로써 잘못 알려진 것이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1973년 모토로라 연구소의 마틴 쿠퍼는 자신이 최초로 만든 휴대전화로 친구와 이런 통화를 했다고 한다. 쿠퍼와 통화한 친구는 최초로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설립한 <벨 전화회사>의 지주회사인 AT&T 직원이었다고 한다.

“안녕, 나는 지금 휴대전화로 전화하고 있어. 손에 들고 다니는 전화 말이야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전화. 지구 반대편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들을 수 있는 전화로 인해 인류의 생활이 몇 단계 진보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기한 장난감에 불과했던 전화가 이제는 개인의 필수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삶의 질을 몇 단계 높여주었다는 전화 아니 문명의 이기들이 인간에게 꼭 행복만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염상섭의 소설 『전화』는 이런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삼대』로 더 유명한 염상섭은 또 다른 단편소설  『전화』를 통해 당시 세태와 인간의 무한한 욕심을 풍자하고 있다.

요즘말로 하면 OO이벤트에 담첨된 이주사. 이주사는 아내의 비녀며 가락지며 뒤꽂이를 죄다 팔아 삼백원을 주고 전화를 놓았다. 『전화』가 1925년 조선문단에 실렸으니 우리나라에 전화가 들어온 게 1896년임을 감안한다면 미래의 사장을 꿈꾸는 이주사에게 전화는 부의 상징이자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그런 전화가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하나는 아내의 바가지였다. 이주사가 허구헌날 일만 끝나면 출입하던 요리집 기생 채홍이의 존재가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전화를 놓고 첫 전화의 주인공도 다름아닌 채홍이었다.

“녜, . 어디세요? ? 누구세요? ?...! 거긴 누구시냔 말예요?...종로예요? 지금 안계슈

다른 하나는 직장 동료 김주사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이주사가 채홍의 전화 때문에 아내에게 시달리는 동안 김주사는 어느새 채홍의 마음을 가로채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아내의 바가지에 지쳤던지 아니면 가정을 지키고 싶었던지 이주사와 아내는 김주사의 아버지에게 전화기를 오백원에 팔았으나 애당초 김주사 아버지가 건넨 돈은 칠백원이었다. 김주사가 중간에 이백원을 가로챈 것이다.

소설 『전화』는 이주사와 아내와 채홍 그리고 김주사간에 단 며칠 동안 전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이 마치 단막극처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서술보다는 인물들간에 오가는 대화를 많이 삽입해 생동감과 현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전화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문명의 이기임과 동시에 남성중심사회와 인간의 욕심을 풍자하기 위해 설정한 도구인 셈이다.

전화를 팔아버린 이들 부부는 다시 예전의 생활을 되찾았을까? 사탕을 한 번 물어본 아이는 사탕이 주는 달콤함을 잊지 못한다.

“여보, 우리 어떻게 또 전화 하나 맬 수 없소?”

114년 전 고종이 명성황후의 묘소와 통화를 하기 위해 들여온 특권의 상징 전화가 이제는 개인의 휴대품이 되었다. 향후 100년 후 인류의 삶은 과거 천 년을 맞먹을 변화와 만나게 될 것이다. 바로 끊임없이 발명되는 전화를 뛰어넘는 문명의 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손으로 발명했기에 인간은 늘 문명의 이기를 지배하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라. 과연 우리는 문명의 이기를 손에 쥐고 살고 있을까? 혹시 문명의 이기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가? 회색빛 네모난 세상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있는 당신은 전화가 있어 불행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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