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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왜 하필 교과서에는 김동인의 [붉은 산]이 실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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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붉은 산>/1932년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민족의식을 자연주의적 경향으로 쓴 것으로, 일제 침략기에 수난받는 민족과 조국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잘 나타난 역작이다." 다음백과사전에는 김동인의 『붉은 산』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덧붙여 "내용은 만주에 이민해 가 있는 동포들의 촌락을 중심으로 '삵'이라는 주인공이 희생을 무릅쓰고 동포를 위해 투쟁한 영웅적인 행동을 그렸다."고 되어 있다.

문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된 사전이니 굳이 부정할 이유도 없거니와 부정할 만한 문학적 지식도 갖추고 있지 않다. 누구나 실제로 읽어본 그대로의 감상일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김동인 스스로 말년에 『붉은 산』의 가치를 폄하해 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친일의 길을 걷게 된 시기는 『붉은 산』을 집필하고 한참 후의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변절하기 전 작가의 시대정신이 순수했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과로 작가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그의 말년의 행적들을 지우고 본다면 『붉은 산』은 역작임에 틀림없다. 반전이 주는 묘미와 대립된 인물들간의 극적 화해는 단편소설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민족을 이끌어내는 상징 또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다운 소설이다. 또 당시 지식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편 『붉은 산』은 엉뚱한(?) 소설이기도 하다. 자연주의와 탐미주의적 작품경향을 보여온 소설가 김동인이 민족주의적 경향이 짙은 작품을 썼다는 점도 그렇고 『붉은 산』의 전개 또한 그렇다. 아무리 반전의 묘미가 주는 재미가 있다손치더라고 소설 속에서 그 개연성과 복선을 찾을 수 없다면 읽는 이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해설을 맡은 임규찬의 말대로 작가 김동인의 간결하고 박력있는 문체가 이를 은연중에 막아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동인이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을 위문하러 갔던 기사.
   1939년4월8일자 매일신보.  출처>위키백과사전

만주의 XX촌은 조선사람들만 사는 곳이다. 글깨나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지만 모두 중국인의 소작인이다. 어느날 XX촌에 나타난 주인공 정익호, 그를 익호라 부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의 생김새와 변변치 못한 행동 탓에 삵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여(작중 말하는 이)가 삵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그가 나중에 XX촌 마을 사람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리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반전에 대한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의 인물이다. XX촌 조선사람들에게 삵은 그저 암종뿐이었다.

"생김생김으로 보아서 얼굴이 쥐와 같고 날카로운 이빨이 있으며 눈에는 교활함과 독한 기운이 늘 나타나 있으며 코에는 코털이 밖으로까지 보이도록 길게 났고, 몸집은 작으나 민첩하게 되었고 나이는 스물다섯에서 사십까지 임의로 볼 수 있으며 그 몸이나 얼굴 생김이 어디로 보든 남에게 미움을 사고 근접지 못할 놈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동리의 처녀들이며 젊은 색시들은 익호가 이 동리에 들어온 뒤로부터는 마음 놓고 나다니지를 못하였다. 철없이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도 몇이 있었다." -『붉은 산』중에서 -

이런 그가 송첨지라는 노인을 죽인 중국인 지주에게 복수하려 갔다가 동구 밖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된다. XX촌 사람들은 송첨지의 죽음에 분노만 할 뿐 나서지는 못하고 있는 터였다. 삵은 왜 죽음을 무릎쓰고 복수를 해야만 했을까? 같은 조선사람들에게조차 해꼬지나 하던 그가, 어쩌면 삵은 여의 말대로 밥버러지같은 자신의 삶이 가치없는 생명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 돌파구로 복수를 선택했고 다분히 개인적인 선택이 XX촌 사람들의 잠재된 민족의식을 자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극적으로 묘사된 삵의 임종 묘사는 『붉은 산』을 민족주의 경향의 소설로 분류하는 핵심적인 도구가 된다. 삵은 황막한 만주 벌판에서 붉은 산과 흰옷을 본다. 상징이랄 것도 없이 여는 친절히 설명해 준다. 삵이 죽음에 임하여 고국과 동포가 생각난 것이라고, 익호는 여에게 창가를 불러줄 것을 요구하고 XX촌 사람들도 식어가는 익호를 둘러싸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합창한다. 비로소 삵과 XX촌 사람들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동포애가 봄날 새순 돋듯 움트는 순간이다.

왜 하필 교과서에는 김동인의 소설 중 『붉은 산』이 실렸을까? 왜 하필 학창시절  『붉은 산』으로 민족주의 소설을 배워야 했을까? 민족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선동한 그의 소설을 말이다. 한국 근대문학의 많은 작가들이 그들이 남긴 문학사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월북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수십년 동안 교과서에서 외면당해 왔다. 이들에 비하면 작가 김동인은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통만큼이나 쓰라렸던 혼돈의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역사 바로세우기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들에 대한 재평가 사업이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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