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아들은 왜 거수경례를 한 채 철로 위에 섰을까

862일 전, 휴가 나온 아들이 죽었다. 아들은 집앞 기찻길에서 거수경례를 한 채 생을 마감했다.

아들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손은 자꾸 가슴으로 향했다. 연신 손바닥으로 가슴을 짓이겨봤지만, 콱 박힌 바윗돌은 좀처럼 내려앉지 않았다. 눈물과 말이 뒤섞인 엄마의 응어리가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쏟아졌다.

"아이고 이놈아, 엄마보고 평생 잊지 말라고 집 앞에서 이렇게... 이렇게 돼버렸냐..."

2015년 5월 27일은 고 김대웅 일병(가명, 살아 있다면 25세)의 휴가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야 했던 엄마는 현관문을 나서기 전 아들을 꼬옥 껴안았다.

"엄마가 (부대에) 못 데려다줘서 미안해. 아들, 엄마가 사랑해."

아들은 평소처럼 답했다.

"네, 엄마. 알았어요."

엄마는 그렇게 아들과의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흰 천을 든 순간 '내 새끼구나...'

일터에 나온 엄마는 자신이 평소와 다름을 느꼈다.

"제가 십몇 년 일하면서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손님하고 싸운다던가, 물건을 던진다던가... 근데 그날따라 가슴이 콩닥콩닥한 게 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사실 엄마의 가슴엔 이미 근심의 싹이 움터 있었다. 휴가 첫날 만난 아들은 살이 쏙 빠져 있었다. 엄마는 "너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라고 반복해 물었다. 아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밥을 잘 못 먹어서 그래요"라고 답했다. 엄마는 "저녁에 맛있는 거 해줄게"라며 아들의 등을 토닥였지만, 하루 종일 아들의 야윈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 기자의 말
남겨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멀쩡하다고 해서 국가의 부름을 받은 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유공자 혹은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해 엄마는 직접 아들의 사체검안서를 들고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를 찾아가야 합니다.

사실 엄마는 보상금을 주겠다는 종이 쪼가리보다 훨씬 더 절실한 게 있습니다. 철저한 조사, 투명한 정보공개, 진심어린 사과, 따뜻한 위로,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웃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일상이 그들의 가슴에 콕콕 트라우마를 새겼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가 차원의 군트라우마센터를 만들자는 의미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바로가기)에서 국가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군피해치유센터 함께'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 스토리펀딩 링크
- 프로젝트 : 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7468
- 3화 : https://storyfunding.kakao.com/episode/29626

(글 : 소중한 기자, 영상 : 안정호 기자)

| 2017.10.0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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