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된 연평도, 주민들은 한 숨만

포탄이 지나간 자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유리창은 모두 깨졌고, 거리에 세워진 차들은 온전한 것이 없습니다. 직격탄을 맞은 집은 전소돼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포탄을 맞은 시멘트벽과 거리 곳곳은 그날의 참혹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주민들이 머물렀던 대피소, 급히 피난을 하면서 아이들의 책가방과 먹다 남긴 과자봉지만이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그저께(23일) 북한의 포격 도발 후 큰 혼란을 겪었던 연평도는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 긴장감이 돌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여객선 운행이 정상화되면서 피난을 갔던 주민들이 다시 섬을 찾았습니다. 급하게 피난가며 미처 챙기지 못한 옷가지와 생필품 등을 꾸리기 위해섭니다.

오늘 오후 3시 반경 연평도에 도착한 배, 5시 출발을 앞두고 주민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1시간여 뿐 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채 가시지 않아 짐을 챙기는 손놀림은 바쁘고, 인천행 배로 다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습니다. 아이를 업은 엄마도 전기가 끊긴 어두운 집에서 아이의 물건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포격으로 피해를 입은 주택은 총 31동. 포탄을 직접 맞아 피해가 가장 큰 집앞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아직도 그날의 악몽을 잊지 못했습니다.

[변재순(72) / 연평도 주민] "여기 앉아 보고 있었는데, 뭐가 파바박 하더니 불이 펑 나는거야"

할머니와 함께 온 고등학생 손자는 앞날이 막막합니다.

[이성원(17) / 연평도 주민] "처참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뭐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요."

처참하게 변해버린 보금자리를 찾은 주민들의 얼굴에선 착잡함이 묻어나고 한숨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연평도 주민] "내가 연평도에서 태어나서 71년 살았는데, 이 곳을 임시나마 나간다는데 괴로워요."

한 순간에 평온했던 일상을 깨버린 북한의 포격, 연평도 주민들은 아직 그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까지 연평도 주민의 80%, 1115명이 인천 등지로 피난했습니다. 하지만 피난지에 연고가 없는 주민들은 찜질방 등에서 숙박을 해결해야 하는등, 악몽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연평도에서 오마이뉴스 최인성입니다.

| 2010.11.25 22:5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