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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호텔에서 그린 1인칭 관찰자 시점 그림. 흔히 손만 그리는데 발까지 그렸다. 소파 무늬가 자연스럽다. ⓒ 오창환

가족 어반스케쳐스 여행으로 제주도를 갔을 때 점심을 먹으러 포도 호텔에 갔다. 포도호텔은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했는데 제주의 오름과 초가집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건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 송이 포도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포도호텔은 핀크스 골프클럽에 속한 건물로 숙박료가 비싼 데다가 객실도 몇 개 안 돼서 거기서 묵기는 쉽지 않다.

대신 호텔 식당에 가서 우동을 먹기로 했다. 우동은 1인당 2만5000원인데도 인기가 좋다. 우리가 갔을 때 무려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반스케쳐들은 기다림에 너그럽다.

"잘됐네, 기다리면서 그림 한 장 그리면 되겠다."

포도호텔 로비에 앉아 소파와 카운터를 그렸다. 그림 속에 자신의 손이나 발을 넣는 경우가 있다. 그런 그림이 재미있는 구도인데도 잘 그리게 되지 않는 이유는 이 각도에서 손에 그리는 것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조금만 틀어져도 손이 이상하게 된다. 나는 이런 경우 따로 종이를 꺼내서 몇 번 연습하고 그린다. 손이 없었으면 아주 단순했을 그림이 손발이 들어가니 제법 흥미로운 그림이 되었다.

소설에서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을 화자(話者)라고 한다. 주요섭이 1935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보면 24살 과부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이 주인공이고 두 사람의 관계를 서술하는 화자로 옥희가 나온다. 옥희가 주인공이 아니므로 이런 경우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이라고 한다.

포도호텔 그림을 보면 앞에 보이는 소파와 카운터가 주인공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확실히 나타나 있다. 소설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과 비슷해서 나는 이런 그림을 1인칭 관찰자 시점의 그림이라고 한다. 

알퐁스 도데는 1885년 단편소설 <별>을 썼다. '나'는 젊은 시절 뤼브롱산에서 양치기 일을 했다. 세상과 고립되어 살던 나는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흠모했는데, 산으로 심부름 왔던 아가씨가 강물이 불어 집에 갈 수 없게 되었고 나는 아가씨가 쉴 수 있는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모닥불을 피우고 나와 앉았다. 나는 누추할지언정 내 울 안에서 아가씨가 쉬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마음을 진정한 아가씨가 내 옆에 와서 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잠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노라고.

여기서 '나'는 화자인 동시에 주인공인데, 이런 경우를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고 한다. 현장에서 그린 데다가 화가가 그림 속에 들어가 있으면 나는 이를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겸재의 그림 안으로 들어간 겸재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면 자연과 건물 그리고 사람이 조화롭게 들어간 경우가 많아서, 현대의 어반스케쳐들 그림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조선 후기 회화를 많이 연구하신 미술사학자 이태호 명지대학교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겸재의 그림에 나오는 바위가 남근을 형상화한 경우가 많다고 하신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겸재 선생님은 지위도 높고 그림 천재이기도 하지만 권위적이고 엄숙한 스타일은 아니셨던 것 같다, 후대의 감상자들에게 논란이 될 만한 거리를 슬쩍 던지신 것이다.

겸재 선생의 그림 속의 인물은 대부분 겸재 자신인 경우가 많다. 확실히 겸재 선생님이신 경우도 있고 약간 애매한 경우도 있는데 이론적인 뒷받침은 없지만 나는 겸재의 작품에서 누가 그인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이고 나는 그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이다.
 
겸재의 <수성동>과 <박연폭> 중 인물이 나오는 부분을 한 장에 그렸다. 겸재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렇게 사랑스럽다. ⓒ 오창환
 
겸재의 그림 <수성동>을 보면 선비 3명과 시종 하나가 기린교를 지나서 북악산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앞뒤 사정을 보아 앞에서 지팡이를 들고 앞에선 사람이 겸재 선생이신 듯한데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박연폭>에서도 선비 한분이 뒤에 있는 분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겸재의 그림에서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있는 그림에서는 이렇게 설명하는 장면이 많은데, 설명하는 분이 겸재라고 보면 맞는 듯하다. 겸재 선생은 그림 속에 들어가서 지인들에게 그곳이 얼마나 멋진 곳이며 그곳을 자신이 어떻게 그렸는지 자랑하시는 것 같다.

그는 그림 속의 지인에게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지금 그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궁금한가? 나는 그의 말씀이 바로 그의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겸재 선생님은 말씀도 많으시고 유쾌한 성격이셨던 것 같다. 하긴 엄숙주의와 관료적 경직성 속에서 그렇게 위대한 예술이 나올 리가 없다.

1인칭 그림이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림 속에 화가가 들어가면 감상자를 그림 속에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면에서 도전해 볼 만하다. 나도 내 모습을 조금 더 연습해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그림에 도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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