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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의거 90주년 올해는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90주년이 되는 해다. 예산군에서 덕산 충의사의 충의문 앞 잔디마당에 포토존을 마련했다. ⓒ 정명조

충남 예산은 충절의 고장이다.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그곳에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있다. 수암산과 덕숭산과 가야산 기슭으로 에워싸여 있다. 지난 4월 29일은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90주년 기념일이었다. 해마다 이맘때 '매헌윤봉길평화축제'가 열렸다. 올해는 윤 의사가 태어난 6월로 연기되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수암산에 올랐다. 곳곳에 널린 바위가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손자를 잃은 할머니, 병든 부부, 부모를 기다리는 오누이, 아버지 원수를 갚은 다섯 형제 들이 바위가 되어 곳곳을 지키고 있다. 곧 굴러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석조보살상
 
세심천온천호텔 왼쪽으로 돌아가면 산행 들머리다. 오르는 길이 널찍하다. 소나무 뿌리가 보일 정도로 바닥이 반들반들하다. 조금 올라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고려 시대 보살상이 우뚝 서 있다. 보물로 지정된 '예산 삽교읍 석조보살입상'이다. 높이가 549cm나 된다.
 
석조보살상 수암산 오르는 길에 고려 시대 보살상이 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모습을 하고 서 있다. ⓒ 정명조

두 개의 돌로 윗몸과 아랫몸을 이었다. 머리는 사각형 두건으로 깔끔하게 정리했고, 뒤에 두건 매듭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 위에 육각형의 지삿갓을 쓰고 있다. 네모난 얼굴은 표정이 없다. 코는 파여 뭉개졌고, 귀는 길게 늘어졌다.
 
몸통은 얇은 옷으로 가린 듯 줄무늬 몇 개로 표현했다. 왼손은 몸에 붙인 채 아래로 내리고,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긴 지팡이를 두 다리 사이로 길게 내려뜨리고 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모습이다.
 
30분쯤 올라 나무계단을 지나 두 번째 쉼터에 다다르면 드디어 전망이 탁 트인다. 평상 세 개가 널찍이 놓여 있고, 왼쪽으로 삽교 들녘이 오른쪽에 덕산 들녘이 빙 둘러 보인다.
 
수암산
 
돌탑을 지나면 산등성이 길이다.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양옆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정자가 있는 곳에 다다르면 수암산 정상석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마실 다니듯 오를 수 있는 거리다. 그곳에 거북바위가 있다. 바다에 나간 손자 대신 돌아온 거북이를 데리고 살았다는 할머니 이야기를 품고 있다. 거북바위라고 하지만 생김새를 가늠하기 어렵다.
 
풍차 전망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덕산 들녘 가운데 윤봉길 의사가 나고 자란 곳이 있다. 해미까지 이어지는 45번 국도 양쪽에 덕숭산과 가야산도 보인다. ⓒ 정명조
 
할매바위 길가에 있는 할매바위는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것 같다. ⓒ 정명조
 
오형제바위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은 오형제의 넋이 깃든 바위다. ⓒ 정명조

풍차가 있는 전망대에 들어섰다. 앞을 보니 들녘 가운데 매헌무궁화공원과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있고, 멀리 45번 국도를 따라 왼쪽과 오른쪽에 덕숭산과 가야산이 자리 잡고 있다.
 
길가에 있는 할매바위는 금방이라도 한쪽으로 굴러떨어질 것 같다. 이어지는 오형제바위가 압권이다. 아버지 원수를 죽인 다섯 아들의 넋이 깃든 바위다. 아래쪽 비탈에 있는 바위도 아슬아슬하게 낭떠러지에 걸쳐 있다.
 
합장바위 의좋은 오누이가 부모를 찾으러 산속으로 갔다가 되었다는 바위다. ⓒ 정명조
 
의자바위 산신령이 있던 곳에 남겨진 바위다. ⓒ 정명조

아기 엉덩이와 해골 모양을 한 바위를 지나니, 멀리 합장바위가 보인다. 오누이가 부모를 기다리다 지쳐 산속까지 찾으러 갔다가 되었다는 바위다. 의자바위도 있다. 산신령의 도움을 받은 동생을 시샘해서 형이 산신령을 찾아갔더니 의자만 있었다는 이야기다. 뒤로 돌아가 보면 바위 여러 개가 모여 큼지막한 의자가 되었다. 여럿이 앉을 수 있을 정도다.
 
장군바위 적과 싸우다 큰 상처를 입은 장군이 자기 발에 칼을 꽂아 길을 막았다는 곳이다. ⓒ 정명조

안내판의 등산 지도에 수암산 정상이라고 나온 곳이 장군바위다. 적과 싸우다 큰 상처를 입은 장군이 자기 발에 칼을 꽂아 길을 막았다는 곳이다. 정상석은 없지만 아마도 이곳이 수암산에서 가장 높은 곳일 성싶다.
 
연인바위 병든 부부가 아이를 맡긴 수덕사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죽은 뒤에 바위가 되었다. ⓒ 정명조

10여 분 더 가면 연인바위가 멀리 보인다. 공깃돌 같은 바위 두 개가 나란히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병든 부부가 날마다 산에 올라 아이를 맡긴 수덕사 쪽을 바라보다 죽은 뒤 돌이 되었다고 하는 슬픈 이야기다.
 
연인바위를 바라보는 곳에 거무스름한 바위가 있다. 사람들이 바위를 긁어낸 자국이 있고, 밑에는 하얀 가루가 쌓였다. 불상의 코를 갈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처럼, 바위 가루를 손에 묻히면 연인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산림을 훼손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수암산 바위의 슬픈 이야기는 끝난다.
 
내포사색길
 
내포사색길 수암산 산허리에 난 둘레길이다. 야자매트와 나무테크로 되어 있어서 걷기 좋다. ⓒ 정명조

가루실고개에서 200m쯤 내려오다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용봉산과 수암산 산허리에 만들어진 내포사색길의 한 부분이다. 이곳부터 법륜사까지 약 3km 이어진다. 야자매트와 나무테크가 잘 갖춰져 있다. 이름 그대로 사색하기 좋은 길이다. 알맞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전망도 드문드문 탁 트여 지루하지 않다. 봄날에 걸으면 좋은 길이다.

산 아래에서는 골프장 공사를 하는 굴착기 소리가 났다. 진달래가 피고 진 뒤에 이어 핀다고 해서 연달래라고도 부르는 철쭉은 거의 지고, 하얀색과 분홍색 모란꽃이 활짝 피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향기가 진동했다. 하얀색의 공조팝나무꽃도 바람에 하늘거렸다. 산당화의 마디마디에 꽃망울이 맺혔다. 그윽한 향기가 멋을 더했다. 산비탈에서 고사리와 고비를 꺾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포사색길이 끝나는 곳에 법륜사가 있다. 바위 절벽을 파서 만든 굴법당이 있는 절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새소리만 요란했다. 굴법당 옆 바위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는 듯했다. 애써 눈길을 피하고, 서둘러 세심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난 두 해와 다른 마음으로 맞이한 신록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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