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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사람을 그리는 어반스케치를 하면서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각합니다.[편집자말]
권진규의 말, RM의 말을 세피아 색으로 그렸다. 뒤에 있는 말머리와 두개의 부조 작품도 테라코타 작품이다. ⓒ 오창환
             
3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 노실의 천사> 전시를 한다. 노실(爐室)이란 가마 또는 가마가 있는 아틀리에를 의미하며, 천사는 노실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말한다. 권진규 자신의 시에서 따왔다.

시청역에서 내려 시립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전시를 알리는 배너를 보니 살짝 가슴이 설렌다. 서울 시립미술관은 언제 와도 편안하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조각, 회화, 드로잉, 아카이브 등 총 24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지난해 유족이 기증한 작품(총 141점)과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박물관, 리움 등 기관과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받은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전시된 작품을 제외하면 권진규의 작품이 거의 다 전시되어 있는 듯하다.

전시장에 가보니 과연 자소상을 비롯해서 여인 인물상, 불상과 예수상, 말을 비롯한 각종 동물상 등 그가 만들었던 조각이 총망라 되어 있다.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이니 작품 소장자들이 모두 협조해서 작품을 대여했다고 한다. 이런 전시를 다시 보려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나는 자소상이나 불상에 가장 관심이 갔지만, 도록으로만 보았던 말머리 돌조각도 인상 깊었다. 또 재미있었던 것은 모델링 작업을 할 때 만든 듯한 작은 조각상까지 선보였다는 것이다. 조각가들은 흔히 큰 작품을 만들기 전에 작은 작품을 시험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모델링 작업이라고 한다. 손바닥 반만 한 그런 작품들도 모아서 전시하고 있다.

권진규 선생님의 작품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자체도 훌륭함을 넘어서 감동이다. 어떤 미술관이든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관람객이 다가갈 수 있는 선을 정해 놓는데, 내가 보기에 탈권위주의적인 갤러리일수록 작품과 관람객의 사이가 가깝다.

요번 전시도 정말 가까이서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가끔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어 안내하는 분들이 분주하기는 하지만 좋은 미술관은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방대한 작품이니까 주제를 나누고 주요 작품은 따로 부스를 만들기도 하고, 또 조각 작업의 특성상 정면으로 봐도 괜찮은 작품은 정면 전시를 하고, 입체적으로 봐야 좋은 것은 사방에서 보게 전시를 해 놨다.

작은 작품이 많으니까, 각 작품별로 좌대를 만들지 않고 넓은 좌대를 만들었는데 시멘트 블록과 시멘트 벽돌로 일정하게 쌓아 좌대를 만들었다. 그 위에 약 2cm를 띄워서 흰 상판을 얹었다. 권진규 작품과 잘 어울리고 모던하다.

전시 말미에 권 선생님의 스케치북 25권 정도를 원본과 똑같이 만들어서 전시를 해놨다. 나는 모든 스케치북을 다 살펴보았는데 표지며, 테이프 자국 등까지 다 원본과 똑같이 만들어 놔서 놀랐다. 마치 친구의 아틀리에에 놀러 가서 작업 노트를 보는 것 같았다.
 
말 조각이 우아하다. 뒤에 보이는 말머리 조각도 테라코타이고 액자에 있는 부조 작품도 모두 테라코타다. ⓒ 오창환
 
이번 전시회에 작품을 대여한 개인 소장자 중에 BTS의 RM이 있다. 그는 미술 애호가이자 수집가로 유명하며 체계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한다고 한다.

기사를 쓰려고 주목할 만한 전시를 찾으면 RM이 그 전시를 다녀 갔다는 기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기사화 되지 않은 것도 많을 테니, 아마 그는 국내 주요 전시는 모두 가 보는 것 같다.

그가 대여한 작품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말 조각으로 권진규가 1965년쯤 작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말은 흰색 테라코타 작품으로 동물 작품을 모아 놓은 곳에 있었다. 권 선생님은 말을 좋아하셔서 말 조각이 많다. 이 말은 흰색으로 채색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고 우아한 자세가 멋있다.

보통 테라코타 작품은 흙으로 빗어 가마에서 800도 정도로 소성한다. 도자 작가들은 초벌구이가 끝난 작품에 유약을 발라 가마에서 1300도 정도로 한 번 더 소성한다. 그런데 어떤 작품이던 일단 가마에 들어가면 그 후로부터는 인간의 작업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다. 소성 중에 파손되는 경우도 많고 변형되는 경우도 많다.

테라코타 작품은 브론즈 작품들과는 달리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특히 사람의 다리나 동물의 가는 다리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RM의 말은 입이 왼쪽 앞다리에 붙어 있는데, 흔히 세라믹 아티스트들이 구조적으로 강도를 더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RM의 말 바로 옆에도 말이 있는데  입을 기수에 붙여 놓았는데 같은 이유다.

이번 전시는 너무 많은 작품이 있어 그릴 대상을 정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갤러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작품을 배치하고 배경이 무채색이어서  구도 잡기도 어렵다. 나는 권진규도 좋아하고 BTS도 좋아하니까, RM의 말을 그리기로 했다. 배경에는 권진규의 부조 작품을 프레이밍 했다. 그러고 보니 오른쪽에 걸려있는 회색 부조를 빼면 모든 작품이 한 가지 톤이다. 그래서 세피아 색으로 모노크롬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세피아(Sepia)는 어두운 갈색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오징어 먹물을 안료로 사용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어 스피아(spia)에서 세피아가 나왔다. 근대에 들어 화학적인 안료가 나왔지만 여전히 진한 갈색을 세피아라고 한다. 19세기 말에는 세피아 색 잉크가 신문이나 잡지의 인쇄에 사용되며 인기를 얻었고, 어두운 갈색의 모노크롬 사진도 현상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아직도 옛날 사진 하면 떠오르는 색이 세피아다.

일단  전경에 말을 넣고 배경에 말머리 테라코타와 부조 작품 2개를 배치했다. 이 그림은 스케치도 세피아 색 잉크로 했다. 누들러 사에서 나온 세피아 색 중성 잉크가 있다. 나는 그 색이 너무 연해서 검은색 잉크를 조금 타서 쓴다. 그리고 세피아 색 수채 물감으로 완성했다. 단색조로 그리니까 형태에 더 집중하게 되고, 빨리 그릴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세피아 색이라 더 옛날 분위기가 난다.

생각해보면 이번 전시는 서울 시립미술관뿐 아니라 국내 모든 소장자들이 힘을 합쳐 만든 전시다. 그만큼 전시도 훌륭하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오후가 돼서 몰려드는 관람객을 보니 그런 말도 필요 없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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