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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집터에서 바라본 인왕산. 오른쪽 위의 바위가 치마 바위다. ⓒ 오창환
 
매달 세 번째 토요일은 서울 어반스케쳐스 정기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 모임에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어반스케쳐스는 전 세계 어디나 가입 절차가 없다. 따라서 탈퇴도 없다. 회비도 없다.  

서울 어반스케쳐스는 5명의 운영진이 있는데, 이 분들이 의논해서 온라인에 공지를 하면 누구나 가서 그리면 된다. 운영진은 자원봉사자이자 재능기부자들이다(홈페이지 https://urbansketchers-seoul.blogspot.com).

이 달에는 삼청동에서 모이기로 했다. 삼청동은 도로변에 가게도 많고 북촌이 있어서 예쁜 골목이 많다. 어반스케쳐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곳이다. 작년 11월에 했던 서울 어반스케쳐스 전시 도록도 나왔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안국역에서 내려 일단 운영진이 자리 잡고 있는 <과학 서점 갈다>로 갔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하고 도록을 받았다. 디자인도 예쁘고 편집도 깔끔하게 잘 나왔다. 늘 느끼는 거지만 서울어반스케쳐스의 디자인은 언제 봐도 최고다!

도록을 받아 들고 오늘 목적지인 <동양차 문화관>으로 향했다. 동양차 문화관은 카페 겸 갤러리인데, 이 집의 특징은 북촌 꼭대기에 있어서 뷰가 좋다는 것과 이 건물이 조선시대 명 재상이었던 맹사성 대감의 집터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우신 세종대왕께서는 인사에도 능하셔서 역사상 최고의 재상을 곁에 두셨는데, 황희 정승이 영의정 또는 좌의정을 하셨고 맹사성이 우의정을 하셨다. 민간에서는 황희 정승이 어진 관리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황희 정승은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스타일이었고 맹사성이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세종은 이 두 사람을 조화롭게 쓰셨던 것이다.

그분은 생활도 소탈해서 평소에 소를 즐겨 타고 다니셨다. 지금으로 보면 국무총리가 소형차를 직접 몰고 다니는 셈이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동네 평범한 노인네로 보고 하대했다가 혼구녕이 났다는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

그분의 호는 고불(古佛)인데, 그 이유가 그의 허리가 굽어 '맹꼬불'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이를 한자로 음차 한 것이라고 한다. 자기를 낮추어서라도 여러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분은 음악에 조예가 깊어 조선 초기 우리 음악의 기초를 닦는 데 큰 공헌을 했으며 퉁소를 잘 불었다.

여기까지 보면 그분의 스타일이 딱 나온다. 그는 시험만 보면 1등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고위직에 있어도 아랫사람에게 막대하지 않는다. 소탈한 성품에 고급차나 명품을 탐하지 않는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를 잘 다룬다. 

그런 맹사성이 살던 집터로 간다. 북촌 꼭대기인 만큼 계단이 가파르다. 집의 위치만 봐도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다. 이 분이 매일 육조거리나 경복궁으로 출퇴근을 하셔야 하는데 경복궁 근처 좋은 동네도 많았을 텐데 어쩌다 여기다 집터를 잡으셨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숨을 몰아쉬며 동양차 문화관에 들어섰다.

동양차 문화관은 입장료 5000원을 내면 차를 한 잔 준다. 이곳에서는 여기 사장님이 수집한 다양한 다구(茶具)와 목조각품을 전시하고 있다. 1층은 갤러리로 사용하여 지금은 민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차를 한 잔 받아 들고 2층에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경복궁과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앞에 집이 한 채 있는데 그 집이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동양차문화관 테라스에서 바라본 인왕산. 앞을 가리는 건물이 옥에티다. ⓒ 오창환
 
오늘 이곳에 스케치 장소로 택한 이유는 치마 바위가 있는 풍경을 그리고 싶어서였다. 광인(狂人)이 왕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연산군이었다. 연산군의 폭정을 막으려던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된 이가 중종이다.

그는 실권이 없는 왕이었다. 반정 주도 세력은 죄인의 딸은 왕비가 될 수 없다며 중종의 부인 단경왕후 신씨를 왕비가 된 지 7일 만에 인왕산 아래 사직골 옛 거처로 쫓아낸다. 신씨의 아버지가 반정을 반대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에서 가장 재미없는 왕이 중종이다. 그는 재위 38년 동안 특별한 업적이 없다. 그는 반정 후 숨죽여 지내다가 반정 주도세력이 자연사하자, 조광조를 앞세워 개혁을 하는 듯했으나, 이번에는 조광조가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그를 죽여버렸다. 아무튼 그는 그런 왕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중종은 쫓겨난 신씨를 잊을 수 없어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곤 하였다. 신씨가 이 말을 전해 듣고 종을 시켜 자기가 입던 붉은 치마를 경회루가 보이는 이 바위에 걸쳐 놓음으로써 간절한 뜻을 보였다고 한다. 이 일로 사람들은 이 바위를 치마 바위라 불렀다.

그런데 직접 와서 보니 맨눈으로 보기에는 경복궁과 치마 바위는 너무 멀다. 산꼭대기에 치마를 걸치기도 힘들지만 설사 거기에 치마를 걸쳐놓았다 하더라도 빨간 점 정도로 보일까 말까다.

우리나라에는 치마 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꽤 많다. 바위가 주름져 보이거나 널찍한 바위를 주로 치마 바위라고 불렀다. 내 생각에는 인왕산 바위도 주름진 모양 때문에 치마 바위로 먼저 불렀다가 중종 이야기는 나중에 그에 덧붙여졌을 듯하다.
 
어반스케쳐들은 현장에서 그리는 과정을 인증샷으로 올린다. ⓒ 오창환

테라스에서 스케치를 했는데, 앞에 있는 집이 아무래도 거슬린다. 집은 빼고 그린다. 그리고 연속된 숲도 생략한다. 대신 산아래 빼곡히 들어찬 동네를 그렸다. 통창이 있는 실내에 들어와 채색을 했다. 도화지 많은 곳이 비어 있지만 나는 이대로가 좋다. 이 그림은 미완성인 듯한 이 상태가 완성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어반스케쳐들이 이곳에 올라와 있다. 모두들 자기 그림에 몰두해 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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