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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1번지 지리산권(구례, 남원, 하동, 함양, 산청)에 사는 청년들은 독특하다. 퀴어, 페미니즘, 동물권, 비혼·비출산, 탈성장 등 진보적 의제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작지만 놀라운 실험을 벌인다. 그들은 왜 지리산 시골을 무대로 택했을까. 이전 귀농·귀촌 세대와 무엇이 다를까. 남원시 산내면 등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말]
상글(왼쪽)과 보석(오른쪽)은 비건과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기 위해 전북 남원으로 내려왔다. 바뀐 건 두 사람의 신상과 일상만이 아니다. 그들이 친구들과 벌인 몇몇 축제와 행사, 모임이 조용하던 마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 김혜리
  
서울이 재미없어졌다.
 
대학에 붙어 시작한 서울생활이었다. 지역에 사는 학생들에게 '인서울' 진학은 곧 성공가도였고, 경남에서 나고 자란 보석(별칭) 또한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서울에 즐거운 것도, 얻을 것도 많았다. 그런데 힘들었다. 지하철·버스 한번 탈 때면 콩나물시루 같은 인파에 진이 빠졌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조그마한 것을 나눠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의심이 계속될수록 서울이 점점 피곤하고 지루해졌다.
 
2년 전 시작한 비거니즘(동물권을 옹호하며 종차별에 반대하는 사상) 독서모임이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비건(완전채식)과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고 실험하기에 도시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화장실이 싫었다. 내가 싼 똥과 오줌을 흘려보내기 위해 너무 많은 물을 써야만 하는 구조를 바꾸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세 들어 사는 처지에서 남의 집 변기를 뜯어낼 순 없는 일이었다.
 
'지역살이를 해 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확 이끌려 "그럼 나도!"라고 대답한 까닭이다. 2020년 3월, 지역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대안대학에 입학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시골살이의 막이 올랐다. 생태화장실을 직접 만들어 쓰겠다는 꿈과 함께.
 
보석의 대안대학 동기인 상글(별칭) 역시 생태주의를 실천하고 싶어 귀촌했다. 도시인 광주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며 기후위기와 제로웨이스트를 이야기했지만, 정작 개인의 생활에서 실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집에 돌아오면 가스와 전기에 의존하고 화장지를 쓰고 음식물쓰레기도 결국 비닐봉지에 넣어 버려야 했다.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대안이 없을까' 하며 방법을 찾던 중 생태적인 삶을 같이 고민하는 공동체(대안대학)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곤 산내로 향했다. 그해 입학한 학생은 8명. 보석과 상글뿐 아니라 "대부분 비슷한 고민으로 찾아온" 이들이었다. 자연 가까이에서, 자연을 지키며, 자연에 덜 해를 끼치며 살기를 원했다. "학교 밖 마을 청년들까지 합치면 그런 친구들은 약 20명 정도" 된다.
 
보석과 상글이 또래 청년들과 지리산 산골에 터를 잡은 지 약 1년 9개월. 지금은 대안대학을 나와 각각 산내와 구례에 집을 구해 독립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바뀐 건 두 사람의 신상과 일상만이 아니다. 그들이 친구들과 벌인 몇몇 축제와 행사, 모임이 조용하던 마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국내 귀농·귀촌 1번지인 산내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또 한 번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웃통 벗고 걸어볼까?" 웃자고 한 말에서 시작된 변화
 
보석은 초등학교 텃밭교사부터 청소년 쉼터 공간지기까지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 김혜리
 
지난 11월 25일 산내면 아동·청소년 쉼터 '룰루랄라'에서 보석과 상글을 만났다. 보석이 공간지기로 근무하는 곳이다. 그는 "초등학교 텃밭교사까지 포함하면 하고 있는 일이 5개"라고 말했다. 상글은 주중엔 보석과 텃밭교사로 활동하고 주말엔 구례 마을카페에서 일한다.
 
둘은 시골에 온 뒤 달라진 일상을 마음에 들어 했다. 보석은 그토록 바라던 생태화장실을 집에 만들었다. 사람의 몸에서 나온 것들이 퇴비가 되어 땅으로 돌아간다. 그는 "대소변을 처리하기 위해 물을 한 방울도 쓰지 않아도 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상글은 도시에서 해보지 못했던 텃밭을 가꾸게 됐다. 같이 농사 짓는 마을 커뮤니티에서 서로 키운 작물을 나누고 교환하니 먹을거리가 풍성해졌다. 도시에서 스트레스였던 쓰레기를 줄이는 기술도 늘었다.
 
비건 지향 식습관을 가지게 된 것 또한 "엄청난 변화"다. 채식을 시도한 지는 오래 됐지만 완전히 육식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반을 잡는 데는 지역살이가 도움이 됐다. 배달해 먹지 않고 직접 만들어 먹는 데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식습관을 바꾸니 비건을 실천하는 일이 재밌게 다가왔다. 일상의 습관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어떻게 보면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대안대학에 막 입학해 개인의 일상과 습관을 정비해나가던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일부 어른들이 여성 학생의 옷차림을 문제 삼았다. 종교기반 공동체의 특성상 남성 성직자의 수행에 방해되니 민소매 티셔츠나 레깅스처럼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을 들었다.
 
'나의 옷차림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나의 몸을 향한 시선이 잘못된 걸까.'
 
보석과 상글을 비롯한 친구들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피어오르자 그동안 불편했던 일들이 하나 둘 터져 나왔다. 밖에서 운동하다 더워지면 남성 친구들은 웃통을 벗는데 여성은 왜 더워도 계속 가리고 있어야 할까. 왜 몸을 드러내면 부끄러운 일일까. 그게 과연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일까. 우리도 가슴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침에 웃통 벗고 마을 한 바퀴 걸어볼까?" 장난스럽게 꺼냈던 말이 '재밌겠다'는 반응을 얻으며 진지한 논의까지 이르렀다. 시골에서 가슴해방운동을 해보자. 그런데 어떻게?
 
무성한 뒷이야기... "궁금하면 직접 들려 드릴게요"
 
상글은 2020년 6월 열린 가슴해방운동 '찌찌순례'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았다. 그는 기획 당시 '분노로 표현하지 말고 너희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해 보라'는 주민의 조언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 김혜리
 
"산내 주민 중 한 분에게 고민을 털어놨어요. 옷이 그게 뭐냐는 지적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게 해결 안 되면 산내에 사는 게 힘들겠다, 솔직하게 다 이야기했더니 그 주민분이 조언해주셨어요. '분노로 표현하지 말고, 너희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즐겁게 표현해 봐.' 우리가 좋아하는 거? 축제? 그래, 같이 노래 들으면서 마을 한 바퀴 걸어보자. 재밌게 해보자. 자연스레 '찌찌순례'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상글)
 

행사를 기획하고 마을에 참여 독려 포스터를 붙였다. 일각에선 '시골 정서와 맞지 않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응원하는 목소리도 컸다. 온라인에서 소식을 접한 다른 지역에서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제1회 찌찌순례가 2020년 6월 열렸다. 상의를 입지 않은 사람, 평소처럼 입고 온 사람, 한껏 꾸민 사람 등 16명이 모였다. 마을 주민과 청소년도 참여했다. 다들 준비해온 피켓을 들고 산내 이곳저곳을 신나게 행진했다. '몸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용기가 났다'는 후기가 이어졌다. 거나하게 뒤풀이까지 마친 다음 기분 좋게 축제를 마무리했다.
 
2020년 6월에 열린 제1회 찌찌순례 참가자 모습. 이날 상의를 입지 않은 사람, 평소처럼 입고 온 사람, 한껏 꾸민 사람 등이 모여 준비해온 피켓을 들고 산내 이곳저곳을 신나게 행진했다. '몸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용기가 났다'는 후기가 이어졌다. ⓒ 상글

그러나 한 달 후, 그들이 다니던 대학은 돌연 운영이 중단됐다. 학생들은 7월 말까지 숙소 생활을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동네에 각종 뒷이야기가 무성해졌다. 보석과 상글은 친구들의 손을 잡고 또 한 번 위기를 즐겁게 헤쳐 나갔다.
 
"들어보면 소문 중엔 진실이 아닌 이야기도, 청년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정보도 있었어요. 이럴 바엔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우리가 직접 이유를 들려드리자고 했죠.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주민 간담회 느낌으로 '우리 산내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행사를 마련했는데 30여 명 정도 오셨어요. 협소한 공간이 가득 찼죠." (보석)
 
이색적인 간담회는 그들의 시골살이에서 중요한 기점이 됐다. 공동체에서 나온 학생들은 동네 주민들과 더욱 사이가 돈독해졌다. 어른들은 '산내 생활 청산하고 떠날 줄 알았는데 포기하지 않고 다들 남아 있네'라며 그들을 품어줬다. 보석과 상글도 "마을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앞으로 지리산에서 살며 갈등과 난관을 맞닥뜨릴 때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감이 왔다. "즐겁게 이야기를 꺼내자. 어려움을 축제로 승화시키자.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들은 그렇게 다짐했고, 그해 국내 최초 시골 퀴어축제가 탄생했다.
 
[다음기사] "채식주의자 국 따로 끓이는 시골 어른들... 덕분에 삽니다" http://omn.kr/1wa0z
태그:#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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