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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붓 터치를 따라, 인천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는 '큰물' 덕적도의 가을을 유사랑 시사만평가가 그렸다. 깊고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그림으로.[기자말]
덕적도 갈대숲(210x297mm, 커피 그림, 2021). 섬 북쪽 능동자갈마당 가까이에 있는, 서해 최대의 갈대 군락지. 가을이면, 은빛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느닷없이 부는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하지만 섬 바닷가엔 도시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포근함이 공기 사이를 맴돈다.

인천 덕적도 바다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진리해변,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덕적초·중·고등학교. 고른 한낮이 지나고, 오후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까르르 햇살 같은 웃음소리를 퍼트리며 학생들이 학교에서 쏟아져 나온다. 발걸음도 거분거분히 노란 버스에 오른다.

그렇게 구불구불 섬길 따라 다다른 섬 북쪽 끝자락. 능동자갈마당에 조금 못 이른 북2리 마을. 눈앞에 거대한 은빛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서해에서 가장 큰 갈대 군락지다.

"갈대는 덕적도 정신이에요. 혼자선 흔들리지만 함께하면 무너지지 않지요. 우리 섬사람들은 예로부터 갈대처럼 잘 뭉쳤어요. 여러분은 덕적도의 미래예요. 그 뜻을 품고 더불어 살아가길 바랍니다."
 
권순학(58) 덕적중학교 교사는 덕적도의 힘을 '단합'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정신을 '서해 낙도의 슈바이처' 고 최분도 신부, 그와 함께한 주민들에게서 본다. 얼마 전엔 '덕적군도 바로 알기' 수업으로 학생들과 그의 발자취를 밟았다.

1966년 4월, 최 신부가 섬에 오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전기와 수도, '문명'을 맞았다. 1960년 간척 사업을 시작한 이래 공사를 중단하기 수차례, 끝내 바다를 메워 농지를 만들었다. 병원선 '바다의 별'과 '복자 유 베드로' 병원이 품을 열고 아픈 이들의 마음까지 끌어안았다. 그때마다 온 덕적도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깊고 푸른 '큰물' 덕적도. 그 섬에는 바다보다 마음이 깊고, '바다의 별'보다 빛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덕적도 사람들의 헌신과 사랑, 단합 정신이 깃든 덕적도 성당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갈대 군락지에서 '덕적군도 바로 알기' 수업 중인 권순학 덕적중학교 교사와 학생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황금벌판엔 오늘, 갈대가 춤추고

"황금물결이 춤추는 섬에서 가장 큰 농경지였지." 가을빛 일렁이는 저 아름다운 갈대숲은 섬사람들에겐 눈물겨운 생존의 장이었다. 1920~1960년대 덕적 바다에 사시사철 자연의 산물이 모여들고, 민어 파시로 북리에 돈과 사람이 넘치던 시절. 배를 부리지 못하던 사람들은 가난했다. 땅 한 뙈기 있으면 농사라도 지었지만, 먹고사는 형편은 크게 낫지 않았다. 고된 농번기 끝에 가을걷이해 내다 팔아도 가족들 주린 배 채우기도 힘들었다.
 
김계철(68) 북2리 이장은 대대손손 섬 북쪽 마을에 뿌리내려왔다. 그의 집안은 바다가 아닌 땅에 기대어 살았다. 칠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옛 기억이 떠오른다. 봄이 오고 얼어붙은 땅이 녹으면 집집마다 소를 몰고 나와 쟁기질했다. 햇살의 농도가 짙어지면 모내기하고 바람이 소슬하게 불면 생명을 갈무리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았다.

세월이 흐르고 섬은 늙어갔다. 젊은 사람들이 육지로 떠나고 농사짓던 터만 덩그러니 남았다. 버려진 땅엔 갈대 씨앗이 날아들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본래 그들만의 세상이었던 것처럼.

"안타까운 건 이루 말할 수 없어. 어릴 때부터 내 손으로 모심고, 벼 베던 땅이니까. 그래도 이맘때면 갈대숲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 길을 내고 출렁다리라도 놓으면 동네가 좀 북적이지 않겠어."

올 9월 기준 덕적도 인구 1320명, <한국서해도서>에 의하면 1954년엔 1만2788명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간 들판엔 정적이 흐른다. 솨~ 바람 소리와 사그락사그락 갈대 스치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갈대 군락지 가까이에 있는 능동자갈마당. 차르륵차르륵~ 파도 소리가 자갈 위를 구른다.
 
갈대 군락지 가까이에 있는 능동자갈마당. 차르륵차르륵~ 파도 소리가 자갈 위를 구른다. ⓒ 류창현
 
김계철 북2리 이장. 조상 대대로 농사짓던, 지금은 갈대숲이 되어버린 땅엔, 섬사람들의 한숨과 눈물이 배어 있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섬에 사는 행복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새 삶을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1987년 인천에서 처음 교편을 잡은 권 교사는 '섬마을 선생님'의 삶을 자처했다. 그가 가르치는 수학처럼 답이 정해진 도시에서의 삶이 갑갑해질 무렵, 섬과 바다가 가슴으로 들어왔다.

처음 섬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건 10년 전 백령도에서였다. 세상에서 뚝 떨어져 서해 최북단에 오롯이 핀 섬. 혼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얼마 못 가 가로막혔다. 산 넘어 산과 철책이 둘러쳐진 바닷가, 더는 갈 곳이 없었다. '과연 여기서 살 수 있을까.' 그리워서 찾아든 섬 생활이 처음엔 두렵고 막막했다.
 
오늘 덕적도에서 살아가는 그는 행복하다. 소나무 숲이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매일 눈뜨고, 아침 햇살 맞으며 아이들 꿈이 자라는 학교로 간다. 언젠가 학생들에게 '어른이 되어도 섬에서 살겠느냐' 물으니 대부분 떠난다고 했다. 안타까웠다. 조금 더 섬에 머물길, 훗날 육지에서 살아가더라도 고향을 기억하길, 지금 발 딛고 선 땅을 온전히 느끼고 사랑하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아이들과 손잡고 보폭을 느리게 맞추며 섬을 파고든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고 하지요. 덕적도 아이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섬의 풍경이 자리 잡길, 살아가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훗날 인생의 오르막 혹은 내리막길을 걸을 때, 그곳이 어디든, 섬은 그들 마음이 머무는 '집'이 되어줄 것이다.
 
갈대숲의 아이들(210x297mm, 커피 그림, 2021). 지금 발 딛고 선 땅을 온전히 느끼고 사랑하길 바라며, 오늘도 섬마을 선생님과 아이들은 섬을 느릿느릿 걷는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덕적고등학교 2학년 1반 교실. 일곱 학생만 공부하던 반에 야구부 학생들이 전학 와 더 활기가 인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노란 버스가 갈대 군락지에 학생들을 내려놓았다. 섬을 보고 느끼고, 온전히 간직하도록.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서포리 바닷가에서 내일로 달리다

서포리해변의 풍경이 달라졌다. 청춘들이 덕적의 이름을 가슴에 달고 힘차게 달린다. 덕적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다. 서포리해변은 모래가 곱고 경사가 완만해, 운동선수들의 전지 훈련 장소로 사랑받아왔다. 메이저리거 류현진도 동산고 시절 이 바닷가에서 땀 흘리며 꿈을 키웠다. 덕적고 야구부에겐 매일이 축복받은 전지 훈련이다.
 
덕적고 야구부는 우리나라 섬에서 하나뿐인 야구부다. 올해 덕적초·중·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초등학생 5명, 중학생 2명, 고등학생은 단 1명. 재학생은 고등학생이 14명, 초·중·고 학생 다 합해도 56명. 60명이 채 안 된다. 김학용(69) 전 동산고 야구부 감독이 학교의 미래를 위해 "야구부를 만들어 학생들을 유입하자"라고 제안했다. 섬 주민 859명이 서명해 야구부 창단에 힘을 보탰다.

"학교를 살려야지. 학교가 없으면 섬은 죽어. 배울 곳이 있어야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머무는 거야."

서양원(70) 덕적면 이장협의회장은 야구부 후원회 부회장을 맡으며 선수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고향을 떠나 힘들게 공부한 그다. 덕적군도 분교가 하나둘 사라지고, 본도 학교가 통합되는 걸 지켜보는 일은 뼈아팠다. 학교를 지켜내고 싶다. "덕적도 아이들이야. 듬직해. 섬이 활기차졌어. 그 기운이 육지까지 뻗어가면 좋겠어."

청춘들이 덕적의 이름을 가슴에 달고 힘차게 달린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지금, 꿈꾸는 대로 나아가는 그들이 바로 우리의 내일이다.
 
갈대숲의 아이들(210x297mm, 커피 그림, 2021). 지금 발 딛고 선 땅을 온전히 느끼고 사랑하길 바라며, 오늘도 섬마을 선생님과 아이들은 섬을 느릿느릿 걷는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서포리해변에서 체력을 단련하는 덕적고 야구부. 자신의 이름과 덕적도를 빛내기 위해 오늘도 뛰고 또 뛴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덕적을 가슴에 품고, 홈런

덕적도 외인구단은 장광호(54) 감독과 코치 둘, 육지에서 온 열다섯 선수가 팀을 이룬다. 내년 전반기 고교야구대회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내는 게 가까운 목표다. 노력이 따르겠지만 자신 있다. "선수들 의욕이 넘치고 기량이 좋아요. 땀 흘릴수록 희망이 커지고 있어요." 40여 년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덕적고 선수들이 빛내주리라 그는 믿는다.
 
주장 최민호(18)군은 동산고에서 전학 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야구를 했다. 딱! 배트에 공이 부딪치는 소리가, 어린 소년의 앞날을 바꾸어놓았다. 이제 섬에서 꿈을 향해 성큼 다가선다.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좋아요. 좋은 성적을 내서 가족과 환영해 준 친구들, 선생님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선수들이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은 2주에 단 하루. 고된 훈련으로 길었던 하루가 지나고 하늘빛이 달라질 무렵이면, 문득 가족이 그립다. 그럴 땐 바다를 본다. 어둠 속 빛나는 별빛에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내일, 희망으로 다시 솟아날 태양을 떠올린다.
 
1933년 개교. 학생들로 북적이던 때도 지금도, 90년 가까이 섬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친 학교. 그 안의 맑은 눈동자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지금, 꿈꾸는 대로 나아가는 그들이 바로 우리의 내일이다.

취재영상 보기(https://youtu.be/OpftP5G5kwg)
 
우리나라 섬 유일의 야구부다. 덕적종합운동장에서 훈련하는 미래의 프로 야구 선수들. 벌써 팬이 많다. 이날 연습을 지켜보기 위해 많은 주민이 찾았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그림 유사랑. 그에게 있어 인천은, 첫맛은 쓰지만 고유한 풍미가 살아 있는 에스프레소 커피 같다. 송도국제도시의 화려한 고층 빌딩과 화수동 골목의 기우뚱한 옛집, 소래포구의 거친 갯벌과 덕적도의 푸른 바다처럼 극과 극, 저마다의 강렬함이 있다. 시사만평가이자 커피 화가로 인천을 쓰고 그리고 깊이 새기며 산다. <중앙일보>, <전자신문>, <데일리포커스> 등 여러 언론에서 30여 년 시사만평가로 활동해왔다. 현재 <인천일보>에서 만평을 연재하고, 커피비평가협회 문화예술 이사로 있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에서 발행하는 종합 매거진 <굿모닝인천> 2021년 11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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