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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비키니 입고 오르는 산, 뭐가 있기에 이러실까에서 이어집니다.)

사실 이 일대는 법적으로 다소 시끄러운 곳이다. 부자들이 땅을 소유하고 있고 주인도 계속 바뀌면서 각종 소송이 있었다. 특히 수도 사업권을 가진 업체가 산에서 흘러나온 물을 파이프로 연결해 부자들의 저택으로 연결하는데, 계약과 다르게 지나치게 많이 공급해 법적 소송이 오가고 있다.
 
영국 해리스 왕자 부부가 구매한 몬테시토의 저택이다. ⓒ santabarbarasluxuryhomes
 
한 예로 2020년 6월 영국 해리 왕자가 구매한 수백억짜리 저택에는 침실 9개에 욕실이 무려 16개다. 파티용 욕실이 있다고 감안해도 지나치게 많다. 미시건대학 인류학자 호러스 마이너 교수는 1956년 자신의 논문 <나시레마족의 신체 의례 Body ritual among the nacirema>에서 이런 사치스런 미국 문화를 꼬집었다.

미국인(American)의 알파벳 철자를 거꾸로 뒤집어 '나시레마(Nacirema)'라고 표현한 뒤 50년대 미국인을 원시 부족처럼 관찰해 글을 썼다. 그는 "나시레마 부족은 집안의 욕실 갯수로 부유함을 과시한다"고 조롱했다. 욕실이 미국인의 쾌락과 이기심, 사치를 상징하며 이들에게는 상아빛 치아를 넘어서 완전한 미백에 몰두하는 세균 혐오 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마저 이 일대에서 다행인 것은 비영리단체인 랜드 트러스트(The Land Trust For Santa Barbara County)가 펀드를 조성해 온천 주변 땅을 매입한 뒤 2013년 미연방 산림청에 맡겼다. 원주민이 신성시하던 곳이 160여 년 만에 다시 일반인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랜드 트러스트와 몬테시토 트레일스 파운데이션(www.montecitotrailsfoundation.info)은 꾸준히 생태 보전 활동을 하고 있다.

기타 치고 춤 추고 발가벗고 마시고

1950~1960년대 이곳 분위기를 흠뻑 느끼기 위한 좋은 자료가 있다. 유튜브에 영어로 'Seconds'와 'Rock Hudson'을 함께 검색해 보자. 알고리즘이 뽑아 올린 흑백 영상은 영화감독 존 프랑켄하이머가 제작한 심리 공포 영화 <세컨즈>(1966년 개봉)의 클립 영상이다. 주인공 아서 해밀턴(배우 락 허드슨)은 비밀 기관을 통해 뉴욕 은행원이라는 지루한 신분을 세탁하고 제도의 속박에서 탈출한 자유로운 영혼들을 만난다.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만난 사람은 몬테시토 온천 일대에서 활동했던 보헤미안 커뮤니티인 '마운틴 드라이브'다. 영화는 두 인물이 포도밟기 행사(Wine Stomp)에 참여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해 선정된 와인 퀸이 홀딱 벗은 상태에서 황금색으로 칠한 포도잎 화관만 쓰고 포도주 통에 들어가 포도를 밟기 시작한다. 이후 남녀 주민이 모두 발가벗고 와인 통에 들어가 포도주를 마시며 얼싸 안고 춤추고 웃고 키스하며 포도를 밟는다. 당시 영화사는 실제 축제 장면을 촬영하는 대가로 커뮤니티에 돈 5000달러를 냈다.
 
영화 세컨즈(Seconds)에서 촬영된 마운틴 커뮤니티의 모습이다. 포도밟기 행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 황상호
 
마운틴 드라이브는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던 유럽계 정착민인 바비 하이드와 플로피 부부가 일군 보헤미안 커뮤니티다. 이들은 1940년대 이 일대 땅을 산 뒤 자유롭게 살고 싶은 영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땅을 나눠줬다. 20여 년 만에 커뮤니티는 40가구로 증가했다.

책 <마운틴 드라이브, 산타바바라의 선구적인 보헤미안 커뮤니티>의 작가 엘리아스 치아코스는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 여자들은 옷을 거의 걸치지 않았다. 남자들은 포도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텔레비전도 없어 기타와 탬버린,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여흥을 즐겼다"고 소개했다. 

커뮤니티는 와인밟기와 주현절, 핼러윈, 독립기념일, 공예품 페스티벌 등 축제를 기점으로 돌아갔다. 이들이 몬테시토 온천 리조트에서 목욕을 하면서 온천은 더 알려졌다. 그러다 1964년 코요테 화재가 나면서 터줏대감인 하이드의 집 등 14채가 소실됐다. 커뮤니티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믿거나 말거나 천연 화장품, 온천 머드팩
 
온천 아랫탕은 물이 뜨겁지 않아 아이들이 놀기 좋다. ⓒ 황상호
 
한 시간쯤 천천히 산을 오르다 보면 대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온천에 거의 도착했다는 증거다. 온천탕은 모두 6개다. 두꺼운 쇠 파이프를 따라 뜨거운 유황 온천수가 콸콸 흘러 아래 탕으로 이어진다. 계단식 논처럼 층층이 만들어져 있다. 가장 높이 있는 탕은 대중목욕탕 열탕 수준으로 아주 뜨겁다. 아재력을 발휘하면 꾹 참고 몸을 담글 만한 온도다. 나는 오빠이고 싶기에, 종아리까지만 담궜다.  

온천수는 중간에 또 다른 파이프로 물이 들어온다. 이 때문에 내가 가본 자연 온천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수질이 깨끗하다. 오전 10시쯤에는 온천수가 해에 반사돼 옥빛 혹은 에메랄드 빛으로 바뀐다. 인스타그램에 '#montecitohotsprings'를 검색하면 그 분위기를 기가막히게 느낄 수 있다.
 
온천욕을 하러온 남성이 녹색 진흙을 얼굴에 바르고 있다. 돌멩이를 갈아서 녹색 진흙팩을 만들었다. ⓒ 황상호
 
불치병을 치료한다는 풍문 못지 않게 이곳 온천 진흙도 유명하다. 한 중년 여성은 작은 화장품 통을 가져와 진흙을 담아 갔다. 한 남성은 온천 바닥에 있는 작은 돌을 채취해 바윗돌에 갈아 고운 가루를 만들었다. 얼굴에 정성껏 펴바르며 나에게 능청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디 얼굴에 (마사지 진흙이) 빠진 데 없어?"

그의 아내도 가까이 와 고운 가루를 얼굴에 발랐다. 돌은 흙과 녹조가 오랜 시간 꾹꾹 뭉쳐진 덩어리였다. 머리 긴 여자가 풀빛 머드팩을 하니 뮤지컬 <위키드> 속 마녀 엘파바처럼 녹색 인간이 되버렸다. 

수해를 극복하고 재탄생한 계단식 온천
 
몬테시토 온천을 정비하고 있는 데렉. 파이프로 바닥을 뒤짚은 뒤 돌을 꺼내고 있다. ⓒ 황상호
 
방문한 날 마른 체형의 백인 남성이 혼자서 계속 온천을 정비하고 있었다. 온천탕 바닥에 있는 진흙과 돌을 파내 바닥을 깊게 하고 주변 바위 돌을 굴려 온천탕 둘레를 단단히 했다. 그의 이름은 데렉. 4년 전 이 온천에 처음 와 깨끗한 물과 편안한 자연 환경에 반해버렸다고 했다. 

"그때는 온천탕이 2개인가 3개였어. 지금처럼 정비가 돼 있지는 않았지."

그러다 2년 뒤인 2019년 1월 몬테시토 홍수가 터지면서 이 일대가 초토화됐다. 한 해 전 토마스 화재가 발생해 민둥산이 되면서 대형 산사태가 난 것이다. 빗물과 함께 쏟아져 내린 바윗돌과 토사는 순식간에 민가를 뒤덮었다. 이 재해로 2세 아이를 포함해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실종됐던 17세 소년이 3년 반 만에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후 데렉은 혼자서 온천을 재건했다. 맨손으로 바윗돌을 옮기고 진흙을 발라서 탕을 6개나 만들었다. 가끔 놀러온 사람들이 그를 돕기는 했지만 그는 거의 혼자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맨손으로 돌을 굴려서 세운 뒤 진흙으로 발라서 탕을 만들었어. 보름에 한 번씩 오는데 올 때마다 7시간에서 10시간쯤 일해. 그렇게 일하고 집에 가면 녹초가 돼서 잠에 곯아떨어지지."
 
데렉은 지금까지 만든 것이 자기 머릿속 구상의 75%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만든 것도 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했다. 온천의 두 번째 파이프 주변에 아치형 구조물을 세워 그늘을 만들 거라고 했다. 

"어떻게 만들까 구상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꽤 재밌어. 나는, 온천이 스스로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 거야. 안정화 시켜서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말이야. "

캘리포니아 북동쪽에 거주하는 원주민인 마이두(Maidu) 네이션에게는 개구리 여신 신화가 있다. 코요테신이자 남편인 웨-폼(Weh-pom)이 사슴신 서-밈(Suh-Mim)과 사랑에 빠진 뒤 아내인 개구리 여신 웰가팀(Welgatim)을 살해하려고 계략을 짰다. 개구리 여신이 눈치채고 중단하라고 경고하지만 음모를 계속 꾸미자, 여신은 모든 구름과 비를 소환해 세계를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이에 거대한 산은 대홍수를 멈추기 위해 화산을 폭발시켜 불바다로 응수한다.

이곳에서는 50~60년 단위로 대형 산불이 난다. 또 크고 작은 산사태로 홍역을 앓는다. 이처럼 불과 물의 신이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몬테시토의 시지프스 데렉은 맨손으로 무너진 땅을 재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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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단행본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세명대학교 저널리즘 스쿨 대학원 졸업 uq2616@gmail.com

LA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 폭력 생존자를 돕고 있다. 한국에서는 경기방송에서 기자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