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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지루하리만치 노란색 해바라기들이 일렁이는 들판을 집요하게 따라가고, 느린 기차 속도에 맞춘 듯 헨리 멘시니 작곡의 OST 'Loss of love'가 천천히 흐른다. 1970년도에 발표된 이탈리아 비토리아 데시카 감독,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해바라기>는 엇갈린 운명의 장난으로 끝내 함께 할 수 없는 두 연인의 안타까운 사랑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약간 촌스럽긴 하지만 두 배우의 절제된 대사와 연기 때문에 더 먹먹했던 영화다. 그리고 해바라기 들판…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
 
해바라기 7~9월 사이에 피는 여름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 변영숙
 
문득 영화 속에 등장하는 끝없이 이어지는 해바라기 들판이 아련하게 떠올라 케케하게 묵은, 무려 상영된 지 반세기가 지난 오래된 영화를 다시 틀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VOD 서비스 채널 목록을 뒤졌더니 <해바라기> 제목도 상영 목록에 있는 것이 아닌가. 지체없이 1540원이라는 '거금'을 결재하고 50년 전 이탈리아와 지금의 우크라이나를 오가는 아련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해바라기와 함께. 
 
7~9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피어나는 해바라기는 여름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인데도 이상하게 쉽게 만나지지 않는 꽃이다. 그래서인가. 시골길을 걷다 우연히 어느집 텃밭이나 대문턱 한 켠에 피어나는 노란색 해바라기들을 만나면 유난히 더 반가운 것은. 
 
해바라기를 찾아 길을 나서다 
 
연천 호로고루 해바라기 밭으로 내 발길을 이끈 것은 순전히 얼마 전 우연히 다시 본 영화 <해바라기>였다. 4년전인가. 처음 연천 호로고루 해바라기밭이 조성됐다는 말을 듣고 찾았을 때에는 너무 늦어서 속절없이 시들어버린 해바라기 몇 송이를 보고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작년에는 태풍에 처참하게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코로나19로 아예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SNS를 통해 노랗게 피어난 연천 호로고루 해바라기 들판 사진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가도 되려나? 하고 한참을 망설였지만, 결국 나는 잠깐만 보고 오자고, 마스크를 쓰고 잠시만 머물다 오자 마음 먹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하필 주말에 가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로고루에 몰려 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한 내가 바보였다. 호로고루로 난 좁은 농경로에 길게 늘어선 차량들을 보는 순간 후회와 자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매달 한두 번씩 연천 나들이를 하지만 이렇게 많은 차가 한꺼번에 연천에 몰린 것은 처음 보았다. 

좁은 농경로에서  앞 뒤로 꽉 막혀 앞으로 나갈수도 뒤로 빠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한참 서 있다 겨우 차를 멀리 떨어진 도로 한 켠에 세웠다. 논두렁을 걸어 호로고루 성으로 갔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 소리가 나왔다. 너무 많은 사람과 너무 많은 해바라기에.  
 
연천 호로고루 해바라기 들판 임진강변의 고구려성 호로고루와 해바라기 들판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의 절경을 이룬다. ⓒ 변영숙
 
푸른 하늘 너른 들판에서 노란색 해바라기들이 일렁이는 장관은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비록 축제를 위해 일부러 심어놓은 것이라지만 바람따라 소리없이 흐느끼는 듯 너울대는 해바라기들이 마침 저무는 석양빛을 받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군락을 이뤄야 더 아름다운 꽃들이 있다. 해바라기가 그랬다. 리듬을 타며 가볍게 흔들리는 해바라기의 가벼운 몸짓을 보니 코로나로 뭉쳐 있던 가슴 속 푸른 멍울까지 살살 풀려나가는 것만 같았다.  
 
연천 호로고루 해바라기 들판 석양빛에 물들어가는 호로고루 해바라기 ⓒ 변영숙
  
호로고루 해바라기들판 호로고루 성 뒤부터 점점 붉어져 오는 석양을 보며 감탄하는 사람들. 코로나에 지쳐 있던 시민들의 모처럼 활기를 모습을 하고 석양을 감상하고 있다. ⓒ 변영숙
 
연천 통일바라기 축제는 취소되었지만…

해마다 8월 말이면 연천군 장남면 호로고루 일대에는 해바라기 들판이 조성되고 '통일바라기축제'가 열린다.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 축제명도 '통일바라기축제'다. 연천군의 적극적인 홍보와 SNS등을 통한 입소문을 통해 꾸준히 방문객이 늘면서 지금은 지역의 최대 축제로 자리잡았다.

태권도단 시범경기, 노래자랑, 초청공연단 공연, 사진공모전 등 DMZ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지역농산물 직거래 판매장도 열린다. DMZ마을에 모처럼 활기가 넘치고 농산물 직판을 통해 농가 소득 증대에도 한몫하고 있으니 장남면 통일바라기 축제는 주식으로 치면 완전 효자 종목인 셈이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통일바라기 축제는 진작에 취소됐다. 그럼에도 꽃밭이 조성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호로고루 성을 찾기 시작했고 들판을 가득 메운 것이다. 다행히 열 체크와 명단 작성을 마쳐야 입장이 가능했고, 입장한 사람들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등 주최 측과 손님들 모두가 방역 수칙을 지키는 모습이었다. 
 
호로고루성 일대 임진강 유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려고 했던 전략적 요충지로, 6세기 무렵 한강 이남까지 영토를 확장했던 고구려군이 임진강일대까지 밀려나 쌓은 최후의 보루다.

임진강 주상절리와 절벽이 자연스럽게 성벽이 되어주는 천혜의 자연성벽 호로고루는 임진강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작은 구릉만한 성벽에 올라서서 붉게 물드는 임진강과 해바라기 밭을 굽어보노라면 웬일인지 눈물이 솟는다. 사람들은 붉어져 오는 하늘을 향해 서서 온 몸으로 붉은 석양빛을 받아낼 태세다.
  
연천 호로고루 해바라기 연천호로고루 들판의 해바라기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 변영숙
 
호로고루의 해바라기를 볼 날도 이제 몇 날 남지 않았다. 태양의 꽃 해바라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코로나19를 피해 해바라기 밭 어느 한 구퉁이에 앉아 이루지 못한 옛사랑에 눈시울을 붉히기에 딱 좋은 날들이지 않은가. 물론 방역 수칙 준수는 철저히 하고, 가능한 사람 많은 때는 피하는 게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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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작가협회준회원, NGPA회원 저서: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