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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쉽게 오지 않았다. 꽃이 활짝 폈지만, 마음은 늘 겨울이었다. 난생처음 재택근무도 했다. 비정상의 일상이 계속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요구되었다. 혼자서 산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2020년 봄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던졌다.

5월이다. 온통 신록이다. 아카시아 향 가득한 날, 구천동 33경을 찾았다.
 
나제통문(羅濟通門) 구천동 33경 중 제1경이다. 무주 설천 석모산 아래 뚫린 바위굴이다. ⓒ 정명조
 
파회(巴?) 구천동 제11경이다. 수심대와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56호다. 길가 전망대에서 본 모습이다. ⓒ 정명조
 
천송암(千松巖) 파회 가까운 길가에 천년송이 있다. 일지 대사가 소나무 가지를 꺾어 바위틈에 꽂았다고 한다. ⓒ 정명조
 
수심대(水心臺) 구천동 제12경이다. 병풍처럼 둘린 낭떠러지다. 일지 대사가 물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고 도를 깨우쳤다는 곳이다. ⓒ 정명조
 
아름다운 길 10경 만조탄과 12경 수심대 사이는 익사 사고가 나서 출입이 금지되었다. 나란히 달리는 37번 일반 국도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다. ⓒ 정명조

나제통문

나제통문 앞에 섰다. 무주 설천 석모산 아래 뚫린 바위굴이다. 그 옛날, 동서로 나뉜 사람들이 치열하게 맞서던 곳이다.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루었던 곳이다.' '양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지금도 안내판에 적혀있다. 백제와 신라군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나제통문 앞 다리 밑 원당천에 '파리소(沼)'가 있다. 작은 연못이다. '양국의 격전 시에 시체가 산처럼 쌓여 파리가 모여들었다.' 백제와 신라군의 함성이 더 크게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아무튼, 이제는 차를 타고 무주 설천에서 무풍으로 곧장 갈 수 있다.

나제통문에서 10.9km 떨어진 곳에 11경 파회가 있다. 골짜기를 휘어 감고 흐르던 물이 못에 머물다, 바위를 타고 떨어진다. 길가 바위 위에 노송 한 그루가 있다. 천년송(千年松)이다. 신라 일지 대사가 바위틈에 꽂은 소나무라고 한다. 흙이 없는 바위에서 지금까지 살아 있다. 파회는 12경 수심대와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56호로 지정됐다.
 
인월담(印月潭) 구천동 제16경이다. 탁 트인 하늘 아래 펼쳐진 너른 바위 사이로 폭포가 쏟아진다. ⓒ 정명조
 
사자담(獅子潭) 구천동 제17경이다. 사자가 목욕을 즐기던 곳이다. ⓒ 정명조
 
비파담(琵琶潭)과 다연대(茶煙臺) 구천동 제19경과 제20경이다. 구슬 같은 물방울이 다연대를 타고 내려와 비파담에 모인다. ⓒ 정명조
 
명경담(明鏡潭) 구천동 제27경이다. 맑은 물에 비친 마음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수련하는 곳이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 정명조

어사길

어사길은 15경 월하탄에서 시작해 32경 백련사까지 이어진다. 달을 새겨놓은 연못인 16경 인월담, 사자 생김새 바위가 있는 17경 사자담을 지나, 19경 비파담에 다다른다. 커다란 바위 위로 흐르던 물줄기가 여러 개 폭포를 이루며 떨어져서 모인 곳이다. 물이 맑아 밑바닥까지 훤히 보인다. 물 색깔이 파란색이 아니라, 신록이 비쳐 푸른색이다.
 
비파담과 이어진 20경 다연대도 있다. 신선들이 비파담으로 미끄러지는 구슬 같은 물방울을 보며, 차를 마셨다는 바위다. 25경 안심대(安心臺)는 구천동과 백련사를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다. 어사길과 자연탐방로가 만나는 곳이다.
 
27경 명경담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28경 구천폭포(九千瀑布)와 30경 연화폭(蓮花瀑)의 멋들어진 폭포가 줄을 잇는다. 31경 이속대(離俗臺)에서 중생은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 이쯤에서 모든 괴로움과 욕망을 내려놓고, 어사길의 마지막 32경 백련사에 오른다.
 
향적봉 조망 왼쪽부터 중봉, 무룡산, 삿갓봉, 남덕유산, 서봉이 보인다. 중봉 뒤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아스라하다. ⓒ 정명조
 
덕유산 산줄기 향적봉에서 바라보는 산줄기마다 온통 신록이다. ⓒ 정명조

향적봉
 
백련사에서 향적봉 가는 길은 늘 힘에 부친다. 가파르고 계단도 많다. 햇볕이 잘 든다. 시원한 바람이 간간이 불어 땀을 식혀준다. 귀를 쫑긋 세우면 물소리와 바람 소리도 들린다.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디딘다. 마침내 33경이다. 덕유산 최고봉 향적봉이다. 정상에 서면 사방이 보인다. 푸른빛으로 물든 산봉우리가 끝없이 펼쳐진다.
 
파리소 나제통문 앞 다리 밑 원당천에 있다. 학이 놀던 곳을 파리가 모여들던 곳으로 바꿔 소개하고 있다. 왼쪽 바위에 큼지막하게 鶴潭이라고 새겨져 있다. ⓒ 정명조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제통문의 진실은 무엇인가? 본래 나제통문은 '기니미굴'이고, 파리소는 '학담(鶴潭)'이다. 나제통문은 '1925년 일제 강점기에 충청도 영동에 있는 용화 금광 개발을 위해 뚫은 인공터널'이다. 박종인의 <땅의 역사>(상상출판, 2018)에 나온다. '日治時鑿山通道'(일제 강점기에 산을 뚫어 길을 냈다). 1957년 발간된 무주군지 기록이다.
 
1961년 구천동 33경이 만들어졌다. 그 뒤 '1963년 관광지 개발을 위해' 기니미굴이 나제통문으로 그럴듯하게 바뀌었다.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고, 국정 교과서에도 실렸다. 관광객을 유혹하려는 기발한 생각이 눈물겹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눈을 부릅뜨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제통문 관련 내용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구천동 골짜기 멈추면 바로 최고의 전망대가 되는 곳이다. ⓒ 정명조
 
설천봉 가는 곤돌라 길 지난겨울의 설원이 푸른 초원으로 바뀌었다. ⓒ 정명조

억지 스토리텔링 없어도, 구천동 골짜기는 모자람이 없다. 찾을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결코, 실망하게 하지 않는다. 그곳에 가면 이야깃거리가 차고 넘친다. 멈추면 바로 최고의 전망대가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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