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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의 모든 사진은 모두 135규격 필름 Portra400을 이용하여 촬영하여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기자말]
어릴 때 물감을 사면 전체 색상 가짓수보다 더 눈여겨보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녹색 계통의 물감 수였다. 기억나는 이름은 녹색, 진한 녹색, 밝은녹색, 연두색, 풀색 등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노란색과 연두색을 섞어 형광빛이 나는 색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지금도 나에게 가장 화려한 계절은 다름 아닌 초여름이다. 장미와 튤립의 자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봄의 끝자락, 꽃을 떨구고 피어난 다양한 이파리에서 뿜어져나오는 수십가지의 녹색들을 말하는 것이다.
 
화암사 주차장에서 아기 나뭇잎들 사이로 아직 지지 않은 늦깎이 벚꽃이 서 있다. ⓒ 안사을
 
4월 26일 토요일 8명의 사람들과 함께 완주군 불명산을 찾았다. 주차장에서부터 화려한 색감이 눈을 덮었다. 햇살은 녹색들에게 채도를 더해주었고 세찬 바람은 나뭇잎의 질감을 멀리까지 전달해주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불명산 중턱에 자리한 화암사였다. 화암사까지 가는 길에는 널찍한 임도와 자연관찰로가 나란히 나 있다. 중간에 연결 부위가 몇 차례 있어서 다양하게 오고갈 수 있다. 그리 유명한 산은 아니지만 복수초와 얼레지가 많아 야생화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제법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날은 미나리냉이꽃이 가장 많이 보였다. 그 외에도, 야생화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동행인 덕분에 많은 식물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꽃과 풀의 이름도 인상적이었지만 100미터가 멀다하고 무릎을 꿇어, 소년처럼 환호성을 지르던 동행인의 눈동자가 가장 푸르렀다.
 
미나리냉이꽃과 빌로오도재니등에 ⓒ 안사을
   
한 분이 함께 온 이들에게 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안사을
 
싱그럽고도 편안한 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폭포가 하나 나타난다. 원래는 폭포 왼편으로 가파른 등산로가 있었는데 낙상이 잦아 폭포길로 철제 계단을 놓았다. 그 모습이 을씨년스럽기도 한데 이날은 햇살이 좋아서인지 그리 거슬리지는 않았다. 

비가 많은 계절이 아니라 계곡에 물이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겨울과 봄에도 물이 쉬지 않고 내려오는 까닭에 작은 물고기와 올챙이가 제법 많다. 오전에는 폭포 바로 위에 해가 떠 있어서 역광의 눈부신 풍경이 만들어진다.
 
계곡길을 걸으며 ⓒ 안사을
   
비룡폭포 명패는 없지만 비룡폭포로 불리운다고 한다. HDR기능이 있는 Dslr로 촬영하면 빛이 갈라지는 해도 명확하게 표현하고 암부도 밝게 표현할 수 있다. 필름촬영의 보편적 한계. ⓒ 안사을
 
계단의 중간에는 안도현 시인의 시가 걸려 있다. 모두 함께 서서 누군가의 목소리로 시를 감상했다. 거기에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3분만 걸으면 깔끔하게 놓인 돌계단이 나온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참 잘 늙은 절 한 채
- 안도현의 시 '내 사랑 화암사' 중에서
 
돌계단 맨 아래에서는 절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아직도 멀었느냐는 탄식이 나올 수도 있지만 몇 개만 올라가면 금세 처마 끝이 보인다. 처음 보이는 건물은 우화루(보물 662호)의 뒤편이다. 화려하게 칠하지 않은, 나무색의 옛 건물이 차츰 눈에 들어오는 과정은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벅차다. 
 
돌계단과 우화루 처음으로 화암사를 보게 되는 각도 ⓒ 안사을
   
화암사 전경 공간이 넓어보이지만 사진을 찍은 언덕과 화암사의 실제 거리는 매우 가깝다. 14mm 초광각 화각으로 찍었기 때문. 24mm만 넘어가도 전경을 모두 담기 어렵다. ⓒ 안사을
 
우화루를 오른편에 두고 작은 문으로 들어서면 네모 반듯한 경내 마당이 한 눈에 쏙 들어온다. 아담한 절이다. 정면에 보이는 극락전은 국보 316호이다. 얼핏 보기에는 단촐하기 그지없는 3칸짜리 작은 법당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건축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매우 가치 있는 건축물이다.

극락전은 하앙식 구조로 지어졌다. 하앙식 구조란 도리와 보 사이에 구조재를 하나 더 넣어 하중을 분산시키고 처마를 더 길게 뺄 수 있도록 만든 건축 방식이다. 중국과 일본에는 그 예가 많으나 우리나라에는 화암사의 극락전이 유일하다. 

물론 현재 만든 건축물까지 더한다면 유일한 것은 아니다. 전북대학교에 새로 지은 누각인 '문회루'가 하앙식 구조로 지은 건물이다. 문회루는 처마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는 하앙식 구조 덕분에 처마를 더욱 길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암사 극락전 단촐한 모습이지만 국보의 호칭을 받고 있다. ⓒ 안사을
   
하앙식 구조 노란색 동그라미 안의 구조재가 바로 '하앙'이다. ⓒ 안사을
 
여기까지 왔다가 다시 내려가면 참 좋은 산책코스가 완성된다. 그런데 아직 등산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불명산 능선을 반바퀴 돌고 다시 화암사의 뒷자락으로 내려와야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은 보람이 생긴다. 경내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폐 속에 충분히 담은 후, 김밥과 과일 꾸러미를 배낭에 넣은 채 불명산의 능선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통과했던 정문을 다시 나서서 맞은편 오솔길로 들어서면 등산로의 시작이다. 처음부터 경사가 상당하다.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 오를 정도로 연속되는 오르막이었다.

무성한 산죽 잎을 온 몸으로 헤쳐가다 보면 어느새 능선에 올라 있다. 정상 바로 밑에서 간단하게 점심 도시락을 까먹고 참새처럼 수다를 떤 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멀리서 볼 때는 망망한 바다 같았던 초록의 숲이었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나무에 돋은 새싹이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불명산으로 짧지만 꽤나 경사가 있는 등산로 ⓒ 안사을
   
철쭉 하늘하늘하고 투명한 색상의 철쭉을 만났다. ⓒ 안사을
 
능선에서 내려와 내리막 등산로를 조금만 걸으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에서 좌측으로 꺾어 내려가면 화암사의 뒤편으로 도달한다. 시간은 오후로 들어섰지만 아침에 보았던 싱그러운 산 빛깔은 여전했다. 오늘 처음 산을 탔던 동료는 '저 곳을 우리가 지나왔다'며 신기해 하기도 했다.

4월 말, 5월 초에는 어느 산이나 모두 아름답다. 꼭 멀리 있는 유명한 산을 찾아가지 않아도, 근처 야트막한 산에서도 충분히 행복한 경치를 만날 수 있다. 수많은 녹색들을 눈 앞으로 가져오다 보면, 해묵은 낙엽이 쌓여 있던 나의 마음 속에서도 금세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는다.
 
불명산과 화암사 화암사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불명산의 모습. 초여름에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산은 활엽수가 많으니, 가을에도 역시 그럴 것이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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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