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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뜨끈한 방바닥, 방안에서 받아드는 정갈한 남도밥상, 천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오래된 절집의 고즈넉한 풍경. 겨울이 되면 해남이 자주 그립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인 유선관에서 하룻밤 묵으며 바로 옆에 있는 대흥사 경내를 여유롭게 거닐고 싶은 것이다.
 
국토의 최남단인 해남 두륜산 자락에 앉은 대흥사는 창건 시기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신라시대에 건립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륜산의 옛 이름이 대둔산이었으므로 대둔사(大芚寺)라고도 불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찰 7곳 중, 가람의 배치가 제일 독특하며 절의 규모도 상당하다. 개성이 강한 전각들이 단아하게, 또는 화려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이끌었던 서산대사 휴정스님의 의발(依鉢, 가사와 발우)이 모셔져 있다. 조선의 다도(茶道)를 정립한 의순 초의선사가 머물던 일지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흥사 가는 길. 겨울날 오후,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울창한 숲길을 걸어 산사로 오르는 마음은 푸근하고 여유롭다. ⓒ 김숙귀
 
여름 장마비를 닮은 겨울비가 그친 뒤 버스를 타고 해남에 갔다. 해남터미널에서 갈아탄 버스는 시골길을 20여 분 달려 대흥사 입구에 내려줬다. 절집까지 1㎞ 가량 걷는 길.  내가 버스를 타고 온 이유이다. 여름엔 와보지 않았지만 울창한 숲과 계곡을 곁에 두고 걷는 길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대흥사 해탈문. 대흥사는 사천왕상을 모신 천왕문 대신 보현보살과 문수동자를 모신 해탈문이 서있다. '두륜산대흥사' 편액은 구한말 서예가인 해사 김성근의 글씨이며 뒤쪽의 '해탈문'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 김숙귀
  
해탈문을 나서면 넓은 대흥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두륜산이 보인다. 두륜산의 모습이 누워있는 부처를 닮았다. ⓒ 김숙귀
 
산문과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에 들어섰다. 대흥사는 사천왕상을 모시는 천왕문 대신 보현보살과 문수동자를 모시는 해탈문이 서 있다. 해탈문을 나서자 넓은 경내와 절집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두륜산이 보인다. 두륜산의 모습이 누워있는 부처를 닮았다.

대웅보전 앞에 섰다. 대웅보전의 편액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대흥사의 전각들에는 조선 후기 서예의 양대 산맥이었던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 원교의 제자이며 호남의 명필이었던 창암 이삼만, 그리고 정조대왕이 친필로 쓴 편액이 걸려있다. 이처럼 명필을 감상하는 것도 대흥사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특히 조선후기 글씨의 쌍벽을 이루는 원교와 추사의 글씨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귀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대웅보전에는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쓴 편액이 걸려있다.원교의 글씨는 추사체에 비해 획이 마르고 기교가 있다. 아름다운 꽃살문이 있는 천불전과 침계루의 편액도 원교의 글씨이다. 한동안 추사의 그늘에 가려지기도 했으나 향토색짙은 동국진체를 완성한 그의 글씨는 당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다. ⓒ 김숙귀
  
백설당에 걸려있는 추사의 글씨 '무량수각.' 그의 글씨는 획이 기름지게 살쪄 두툼하고 묵직한 예서체로 원교의 글씨와는 상반되는 미감을 보인다.독특한 추사체의 매력에 잠시 빠져들었다. 주지스님의 요사채인 '일로향실(一爐香室) 현판도 추사의 글씨이다. ⓒ 김숙귀
 
대웅보전 편액을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추사 나이 54세, 제주도로 귀양을 가던 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러 벗인 초의를 만난다. 이때 원교의 대웅보전(大雄寶殿 )글씨를 보고 초의선사에게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 놓은 원교의 편액을 떼어내라며 야단을 쳤다. 추사의 극성에 못이긴 초의는 원교의 편액을 내리고 추사의 글씨를 달았다.

63세의 노령에 유배에서 풀려난 추사는 한양으로 가는 길에 다시 초의를 만나러 대흥사에 들렀고 자신이 쓴 대웅보전의 글씨를 올려다 보게 된다. 그리고 그 편액 속에 담긴 자신의 교만과 독선을 깨닫는다.  추사는 자신이 명필 이광사의 글씨를 못 알아보았으니 이광사의 편액을 다시 걸고 자신이 쓴 것은 내리라고 말한다. 추사는 8년여 간의 힘든 유배 기간 동안 깊은 자아성찰을 통해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지혜와 겸손함을 얻은 것이다.
 
표충사 입구에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는 초의선사의 동상이 있다. 동상 앞에 서서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 두 분의 아름다운 우정을 생각한다. 1786년생으로 동갑인 두분은 30세에 만나 평생 차와 마음을 나누었다. 제주도 유배 시절, 대흥사에 있는 벗에게 차를 보내달라고 어린애처럼 떼를 썼다는 이야기가 추사의 편지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표충사에 들어섰다. 표충사는 임금이 내린 사당의 이름으로 밀양에도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당 유정스님을 모시는 표충사가 있다. 표충사의 편액은 정조대왕이 친히 내린 어필(御筆)이다. 힘차고 장중한 필치가 대사의 충의를 기리는 듯하다. 서산대사의 영정 앞에 잠시 머무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유선관의 밤. 마당끝 계곡으로 내려가는 곳에 있는 평상에 잠시 앉았다가 방으로 왔는데 문풍지에 비치는 불빛이 참 따뜻했다. ⓒ 김숙귀
 
일지암은 내일 둘러보기로 하고 숙소인 유선관에 왔다. 주인장이 반갑게 맞으며 묵을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이태 전 내가 묵었던 방이다. 방바닥이 곧 따뜻해져 온다.
좀 있으니 주인장이 밥상을 들여왔다. 집밥처럼 푸근하고 정갈한 밥상을 마주하고 
밥 한 그릇을 달게 비웠다. 그리고 침구와 작은 거울이 전부인 방에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그렇게 겨울 해남 여행은 여유롭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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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