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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역사속으로'는 국내 역사문화 유산의 멋과 서사를 찾아 떠나는 답사기입니다.[편집자말]
경주 대왕암 일출 새해 첫 답사지로 대왕암에 가보자. 아침 일출이 반겨줄 것이다. ⓒ 홍윤호
  
오전 6시 40분.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150번 버스를 타면, 경주 시내를 관통하고 토함산을 넘어 50여 분 만에 동해안에 도달한다. 1년 중 해가 가장 늦게 뜨는 12월 20일경~1월 10일경까지 이 버스를 이용하면 자가용이 없어도 경주 동해안 대왕암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 새해 첫 답사지로 좋은 이유다.
 
경주 동해안의 대왕암은 토함산을 넘어 동해안으로 빠지면 바로 만나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토함산에서 발원해 동해안으로 흐르는 대종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 봉길해수욕장 앞바다에 홀로 떠 있는 바위 군상들이다.
 
이 바위에 열십자 모양의 물길이 나 있어 파도가 칠 때마다 한쪽으로 물이 들어갔다가 다른 쪽으로 빠져나간다. 물 속에 크고 넓적한 돌이 놓여 있는데, 이 돌 밑에 화장한 문무왕의 뼈를 묻었으리라 추정한다.
 
이 대왕암은 해안가에서 200m 가까이 떨어져 있으므로 가까이에서 보기는 어려우며, 저곳이 대왕암이라는 식으로 쳐다보는 수밖에 없다. 이곳은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대왕암 위로 뜨는 해를 보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

경주 문무대왕릉 안내판에 추가된 한 줄
 
여기에 이르면 어떤 이들은 바다 위에 있는 바위군을 보고 '저게 대왕암?' 하면서 생각보다 볼 거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바위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즉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또 여름에는 대왕암 앞뒤로 모터보트가 굉음을 내며 물살을 가르기도 하고, 물가에는 해수욕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다른 계절에는 방생 법회와 용왕제, 무속인들의 굿 등 토속적인 행사도 이루어지는 등 요란한 답사지이기도 하다.
 
경주 대왕암 바닷가에서 보면 대왕암은 세 개의 큰 바위 덩어리로 보인다. 왼쪽 두 개의 바위군이 문무왕의 장골처냐 산골처냐로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 홍윤호
 
대왕암은 신라의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을 화장한 후에 그 뼈를 묻은 무덤(장골처)으로 알려진 유적지다. 그런데 무덤이 아니라 화장한 뼈를 뿌린 곳(산골처)일 뿐이라는 학술적인 주장이 있어 한때 논란이 있었다. 이는 중요한 문제다. 장골처라면 대왕암은 문무왕의 무덤이자 세계에서 유일한 바닷속 왕릉이 되지만, 산골처라면 그 의미는 퇴색된다.
 
이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2001년 모 방송국에서 초음파탐지기까지 동원하는 난리(?)를 편 끝에 대왕암 내부에 유골이나 유물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근래에는 대왕암에서 화장한 뼈를 뿌린 다음 넓적한 큰 바위를 내부의 빈 곳에 안치시켜 무덤처럼 만든 다음 문무왕의 무덤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논란을 의식했을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안내판을 한번 들여다보라. 과거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해중릉이라고만 안내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마지막에 한 마디 문장이 더 추가됐다.
 
"... 한편 여기를 문무대왕의 유골을 뿌린 곳(산골처, 散骨處)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대왕암 안내판 마지막 문장 한 마디에 의미가 있다. ⓒ 홍윤호
 
그러면 왜 경주의 중심지와 거리가 꽤 먼, 한적해 보이는 이곳 동해안 바다에 문무왕의 흔적이 서려 있을까.
 
<삼국유사>에 보면, 평상시에 문무왕은 지의법사에게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문무왕이 왜(일본)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동해안 쪽에 감은사를 짓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海龍)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는 왕이 죽자 신하들이 유언에 따라 동해 입구의 큰 바위 위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문무왕은 오래전부터 동해안 쪽으로 기습 침입해 신라를 괴롭혔던 왜의 세력을 막아내는 호국룡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자신을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이에 따라 장사를 지낸 곳이 대왕암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을 지켜본 문무왕은 이제 유일한 적대세력으로 남은 바다 건너 왜까지도 제압하고자 하는 염원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새 시대를 열어갈 터전을 닦은 문무왕의 유언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흔히 우리에게 동해 용왕이 되어 신라의 동해안을 지키는 호국적인 존재로 설정된 문무왕은 역사 기록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경주 대왕암과 어린이들 추운 겨울에도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즐긴다. 답사보다 바다와 모래가 좋은 아이들의 동심이다. 이렇듯 대왕암은 이제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 홍윤호
 
<삼국사기>에 보면, 문무왕은 이런 유언을 남긴다.
 
"헛되이 재물을 낭비하는 것은 역사서의 비방거리가 될 것이요,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면 죽은 이의 넋을 구원하지 못한다. (…) 내가 죽고 열흘이 지나면 창고 문 앞 바깥마당에서 불교 의식에 따라 화장하라. 상복은 정해진 규정을 따르되 내 장례의 절차는 철저히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변경의 성과 요새 및 주와 군의 과세 중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세금은 잘 살펴서 모두 폐지할 것이요, 법령과 격식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즉시 바꾸고, 원근에 포고하여, 백성들이 그 뜻을 알게 하라."
 
그는 유언에서 자신의 무덤을 크게 만드느라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지 말고 간략하게 화장을 하라고 한다. 검소와 절약을 강조하며, 백성들의 세금을 줄이는 등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랜 전쟁으로 괴로워했던 백성들을 달래고 한층 성숙한 새 시대를 열고자 한 의지가 엿보인다. 진정한 평화와 통일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문무왕의 이미지는 바뀔 때가 됐다

이전의 왕들과는 분명히 다른 변화다. 사실 문무왕은 자신이 원해서 전쟁을 한 것이 아니었다. 660년 백제와의 통합 전쟁부터 시작된 전쟁이 고구려와의 전쟁, 나당 전쟁으로 이어져 15년 이상 끊임없이 더 큰 규모로 계속됐다. 자신의 부왕(김춘추, 태종 무열왕)과 삼촌(김유신)이 시작하고 주도한 전쟁이 예상 외로 길어졌고, 두 사람 모두 전쟁 중에 사망했다.
 
나당 전쟁이 끝난 676년에 모든 전쟁이 끝났지만, 그 뒤의 역사 전개를 알고 있는 우리의 관점일 뿐, 당시에는 정말 전쟁이 끝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백제와의 전쟁이 끝났을 때 대규모 전쟁은 끝난 것이라 생각했지만,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나 다시 치열한 전쟁을 겪었고, 일본의 구원군까지 상대해야 했다.

고구려가 멸망했을 때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당나라와의 더 크고 파멸적인 전쟁을 계속해야 했다. 676년에 일단 당나라 군대가 물러갔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전쟁이 끝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바다 건너 적대세력인 일본도 있었으니 말이다.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참여한 이 파괴적 전쟁 상황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죽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으며, 왕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불안에 잠들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전쟁은 이런 것이다. 길고 긴 전쟁을 통해 왕 자신도 평화의 소중함을 알았을 것이다.
 
사실 동해를 지키는 호국룡이 되겠다고 한 염원도 애써 이룩한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보아야 한다. 전쟁을 위한 호국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호국이다. 우리는 문무왕을 전쟁의 냄새가 강한 호국의 왕으로 보기보다 전쟁이 끝난 후의 평화를 지향하고 미래의 새로운 시대를 제시한 미래 지향적 왕으로 보아야 한다.
 
전쟁의 위협이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 시대, 평화의 가치가 소중한 우리 시대에 문무왕의 유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대왕암 일출 날만 잘 잡으면 대왕암 앞에서 흔히 오메가 일출이라고 불리는 장관을 볼 수 있다. ⓒ 홍윤호
 
오랜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덜고, 안정된 사회에서 새로운 활력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 바로 그것이 푸른 동해에 서려 있다. 해가 바뀔 때 대왕암을 찾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에 힘을 얻을 수 있는 역사 답사지, 바로 이곳이 적격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왕암은 그 자체의 볼거리를 보러 가는 곳이라기보다 바다에 솟은 바위군을 바라보며 당시 사회 변화와 새로운 시대에 대한 발전적 전망을 생각해보는, 의미 있는 답사지라 할 수 있다.
 
[답사 정보]


- 대왕암은 봉길해수욕장 앞바다에 있다. 해수욕장 주차장은 50여 대 이상 주차가 가능하지만, 한여름이나 1월 1일은 차들로 넘쳐난다.

- 대왕암 앞에는 횟집이 몇 개 있는 정도. 이견대가 있는 대본항 쪽에도 횟집이 여러 개 있다. 그 외에는 식당이 거의 없어 식사가 불편하다. 회를 먹을 게 아니라면 경주 시내나 나아리, 혹은 감포항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 대왕암 앞에는 숙박시설이 거의 없다. 경주 시내나 인근 감포항의 숙박시설들, 혹은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해안의 펜션 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가는 길]

- 주소는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26. 2016년 여름에 울산~포항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가는 길이 빨라졌다. 남경주IC에서 들어가 동경주IC로 나간 다음 양북을 거쳐 4번 국도로 들어서면 바로 대왕암을 포함한 동해안 일대로 빠질 수 있다.
경주 시내에서 갈 경우 4번 국도 감포 방향→양북면 어일리 삼거리에서 우회전→14번 국도→929번 지방도로로 5km 내려가 감은사지를 지나간다. 예전 길이다.
불국사 방향에서 토함산을 터널로 뚫고 양북으로 내려가는 도로를 이용해도 된다.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본사가 양북에 들어서면서 가는 길이 편리해졌다.

 
- 대중교통으로는 경주시내 시외버스터미널 앞, 경주역 앞 등에서 150번 버스(약 50분 간격 운행)를 이용, 대왕암 입구(봉길해수욕장)에 하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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