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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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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나라, 동물의 왕국

아프리카의 뿔, 에티오피아에서 칼 든 강도를 만난 건 순간이었지만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우간다와 르완다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케냐 국경에서 버스를 타고 곧장 나이로비로 향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조금씩 가다 보면 언젠가 거대한 아프리카 종단도 끝이 나리라.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소년 시절, 유명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 촬영지는 언제나 '세렝게티 초원'이었던 것 같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미지의 세계였던 그 '동물의 왕국'에 내가 발을 디딜 줄이야. 아프리카에 오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케냐 쪽 세렝게티, 마사이 마라 국립 보호 구역. 사파리 트럭에 둘러싸여 갈 길을 잃은 사자 ⓒ 유최늘샘
 
스와힐리어로 '거대한 초원'을 뜻하는 세렝게티는 케냐 남부와 탄자니아 북부에 걸쳐 있는 약 3만 제곱킬로미터의 사바나(열대 초원) 지대다. 3백만 마리의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고, 물과 풀을 찾아 멀게는 250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초식동물들의 규모는 세계 최대라고 한다.

'사파리(Safari)'는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란 말인데, 외국인들에게는 흔히 트럭을 타고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게임 드라이브'의 의미로 사용된다. 온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보던 동물의 왕국을 직접 보고 확인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중동부, 케냐와 탄자니아를 찾는다. 

세렝게티 지역의 75퍼센트가 탄자니아에 있지만, 탄자니아는 사파리 참가 비용이 케냐보다 몇 배 비싸다. 저가 배낭여행자들은 탄자니아 세렝게티를 포기하고, 흔히 '마사이 마라(Masai Mara, 마사이의 땅)'로 불리는 케냐 쪽 세렝게티를 여행한다.

나이로비 도심의 여러 여행사를 만나 본 뒤 가장 저렴한 곳을 선택했다. 2박 3일 동안의 안내자와 차량, 국립공원 입장료와 숙식이 포함된 가격은 250달러였다. 그 또한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세렝게티라니, 평생 한 번 할까 말까 한 경험이 아닐까, 기대하며 주머니의 달러를 탈탈 긁어모았다.

가이드이자 운전사인 케냐인 새미, 다정한 인도인 가라시, 멋쟁이 유튜버 미국인 쇼비, 쿨한 캐나다인 부부 이브와 댄과 함께, 뚜껑이 활짝 열리는 사파리 전용 트럭에 탑승했다. 한때 유행하고 지나간 게임 '포켓 몬스터'의 희귀 생명체를 찾듯, 열대 초원 사바나의 동물들을 찾아 나선 다국적 다인종 여행자 원정대의 트럭이 줄을 지어 세렝게티를 향해 출발했다.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을 태운 사파리 트럭이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 보호구역을 가로지르고 있다 ⓒ 유최늘샘

창살 없는 동물원, 세렝게티 

대지를 뒤흔들며 이동하는 누(Gnu 뿔말) 떼와 얼룩말 무리, 초식동물 잡아먹는 사자들, 갓난 새끼를 돌보는 하이에나 가족, '라이온킹' 심바의 친구 멧돼지 품바들(심바와 품바는 스와힐리어로 사자와 멧돼지를 뜻한다), 서벌캣을 뒤쫓아 연못을 뛰어넘는 표범, 느릿느릿 코끼리 무리와 성큼성큼 기린들, 나무 꼭대기에 앉아 벌판을 바라보는 원숭이와 굶주린 대머리 독수리들. 과연 세렝게티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바로 그 동물의 왕국이었고, 보랏빛으로 물든 사바나의 노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동물의 왕국 세렝게티는 온전히 동물들의 세상은 아니었다. 매일 매일 수백대의 트럭에 탄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말 그대로 게임을 하듯, 사냥감을 쫓듯 쉴 새 없이 동물들을 따라다녔다. 특히 '빅 파이브(Big 5)'라고 순위를 매겨 부르는 사자, 코끼리, 표범, 버팔로, 코뿔소는 사람들의 집요한 미행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사이 강 하류 우거진 나무 위에 사자 가족이 있어!"
"표범 두 마리가 가젤 무리를 쫓아가는 중이야!"

게임 드라이브 안내자들은 서로 무전을 통해 동물들의 위치를 파악했고, 사파리 투어 고객들이 만족할 만큼 많은 종류의 동물들을 보고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동물들 가까이로 차를 몰았다.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서 때로는 트럭들이 부딪힐 것 같았다. 초원의 맹수들은 동물원 창살에 갇힌 동물들처럼, 온갖 인종들의 파파라치같은 카메라 세례 때문에 피곤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수많은 사파리 트럭에 쫓기며 카메라 세례를 당하는 표범 ⓒ 유최늘샘
 
대지를 뒤흔들며 이동하는 누떼 ⓒ 유최늘샘
 
이곳은 야생이지만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서, 이미 완전한 야생은 아니었다. 맹수들은 야생 먹이사슬의 최강자들이고 세렝게티 초원은 끝이 없이 넓다지만,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사륜구동 트럭을 타고 종일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피할 방법이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불쌍하다고 말한다. 세렝게티 어디에도 창살은 없지만, 세렝게티는 동물원과 무척 닮아 있어 마치 거대한 동물원 같았다. 나 역시 인간 세상의 소문을 따라 세계 최대 규모 세렝게티 동물원에 찾아든 관광객이었다. 사자와 표범이 달아날까 봐 다른 사람들처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도, 야생에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다. 

동틀 녘부터 온 종일, 수 만 마리의 야생 동물을 보고 수 백 수 천 장의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천막 숙소로 돌아왔다.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우리들은 종일 찍은 야생 동물 사진을 고르고 골라 SNS에 올리고는 잠이 들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種)이 얼마나 많은 다른 동물들을 멸종시켰는지, 인류가 다른 땅보다 비교적 늦게 도달한 마다가스카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량 동물 멸종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동물의 왕국' 세렝게티가 이러한 모습인데, 지구의 어느 한자리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을까. 

생물 종 다양성을 파괴하는 지구의 권력자 호모 사피엔스는 어떤 지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또는 어떤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나는 주변 사람들, 다른 생명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 수 있을까. 
 
마사이마라 강을 건너는 얼룩말 무리 ⓒ 유최늘샘
 
아프리카 여행은 비싸다?

마사이 마라 사파리를 마치고 나이로비에서 버스를 타고 나망가 국경을 넘어 탄자니아에 도착했다. 탄자니아 북부에는 세렝게티, 빅토리아 호수 옆으로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은 산, 5895미터 높이의 킬리만자로산이 있다. 정확한 거리를 확인한 건 아니지만 지도에서 볼 때 킬리만자로는 동아프리카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이집트에서부터 시작한 아프리카 육로 종단 여정의 절반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프리카 종단을 시작하기 전, 터키 괴레메에서 만난 사진가 구준호씨에게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준호씨가 했다는 아프리카 남부 트럭킹(Trucking) 여행은 몇 주 동안 수 백만 원 가격이라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아시아에서 온 황인종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났다기에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나보다 먼저 아프리카를 가로지른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종종 '아프리카 여행은 물가 비싼 유럽보다 더 비싸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했는데, 아프리카 절반을 육로로 종단해 보니 나에게 아프리카 여행은 다행히 비싸지 않았다.

다른 대륙에는 거의 없는 나라별 비자비와 개인적으로 갈 수 없는 화산 지역이나 동물 사파리 같은 여행사의 단체 투어를 제외하면, 이동비와 숙박비, 식비는 저렴한 편이었다.

킬리만자로 입장료와 숙박비는 2박 3일에 무려 1000달러 이상. 남미 파타고니아에서 남극으로 가는 배삯만큼이나 비쌌다. 산으로 장사를 하다니. 100만 원이면 내가 두세 달을 여행할 수 있는 금액이다. 킬리만자로는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유명한 장소를 돈 때문에 포기할 거면 세계일주를 왜 하냐'라는 얘기도 종종 들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멀리서라도 그 모습이 보이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유명 관광지보다는,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며 만나는 숱한 사람들과 풍경을 더욱 오래 기억하고 싶다.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면 /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복작복작 완행버스를 타고 킬리만자로 아랫마을 모시(Moshi)로 가는 길, 마침내 킬리만자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수 조용필의 노랫말처럼, 처음엔 구름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눈 덮인 킬리만자로였다. '구름인가 눈인가'라니,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른 조용필이나 <킬리만자로의 눈>을 쓴 헤밍웨이는, 이곳에 와 본 것이 틀림없으리.     

이상하게도 케냐나 잠비아, 보츠와나나 말라위에서 남한으로 가는 비행기보다, 거리가 더 먼 아프리카의 남쪽 끝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남한으로 가는 비행기 가격이 더 저렴했다.

지난해 콜롬비아 수면제 강도에 이은 에티오피아 노상 강도 사건으로 세계일주의 의지가 다시 한 번 크게 주춤했으나, 이곳 아프리카의 중간에서 남한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남아공까지, 아프리카의 끝까지, 강도에게 입은 상처를 치유하며, 나머지 여정의 절반도 걸어가리라.  

아메리카의 끝,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이미 확인했듯이, 아프리카의 끝에 마침내 도착해도, 무언가 특별한 보물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마음먹은 만큼만 산다고 하던가. 이 길의 끝에 아무런 특별한 것이 없을지라도, 내가 마음먹은 아프리카 종단을, 나의 세계일주를 끝까지 마치고 싶다. 

"사파리 은제마 Safari njema! 좋은 여행 되세요!" 
 
킬리만자로 아랫마을 모시 터미널. 아프리카 종단의 나머지 절반을 시작하는 길목 ⓒ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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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달동네 생활영화인 늘샘. 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자라, 지리산 골짜기 간디학교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디스페이스, 늘장, 로드스꼴라,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활동.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노래합니다. 인디언식(式) 이름은 '땅을 치고 춤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