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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는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볼 수 있었던 여행지다. 구석구석 펼쳐진 시간의 흔적들, 볼 만한 명소가 가득했다. 만약 당신이 나주를 선택한다면 여행의 선구안(選球眼)이 분명하다. 낯선 골목 곳곳을 맘껏 누비는 동안 어릴적 기억이 소록소록 피어났다.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여행에 빠져보는 건 어떤지.

낭만 가득한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
  
나주의 메타세콰이아 길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 나주의 메타세콰이아 길에서 낭만을 만끽하는 건 어떠신지. ⓒ 최정선
 
메타세콰이아 길하면 두말없이 담양을 떠오른다. 담양만큼 메타세콰이아 길이 유명하진 않지만, 나주에도 메타세콰이아 길을 거닐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다.

이곳은 다정하게 손잡고 거닐기 좋은 곳이지만 나는 늘 카메라만 덜렁 메고 방문하곤 한다. 타인의 눈엔 낭만스러워 보이겠지만 정작 자연을 온전히 즐기질 못하는 것 같다.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 나주의 메타세콰이아 길에서 낭만을 만끽하고 싶다.

우리가 도착한 날도 무려 서너 곳의 유치원에서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를 방문했다. 연구소에선 최근 숲을 통해 어린이의 오감 만족을 깨우고자 '유아 숲 교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 이외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치유의 숲 등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자연 프로그램도 있다.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는 일반인에게 내부를 개방한 지 몇 년이 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꼭 가봐야 될 나주의 대표적 명소가 있다. 바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사계절 빼어난 정취로 드라마 등 TV에 자주 등장해 방문지 일위로 꼽는 곳이다. 메타세콰이아 길만 걸으면 5~10분 정도이지만 산림자원연구소는 생각보다 꽤 넓다. 뒤편 등산로 일부를 제외하고 둘러보는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본관에서 뒤편으로 가면 약 48ha에 달하는 산림욕장이 나온다. 이곳엔 500여 종의 수목이 뒤섞여 울창한 숲을 이룬다. 숲은 식산의 등산로로 이어진다. 등산로 이외에 팔각전망대, 종합놀이대, 사각 정자 등 29종의 다양한 시설이 설치돼 있다. 연구소 일원의 넓은 산림욕장과 울창한 숲 덕분에 치유와 나들이 장소로 부상했다.

한여름이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 나무 아래는 맥문동이 보랏빛을 발산한다. 푸른빛과 보랏빛의 조화는 강한 색채의 마술사 같다.

이곳은 애초 관광지가 아니라 수목 연구를 목적으로 시작한 터라 아기자기한 민간 정원이나 수목원과 느낌이 다르다. 하지만 뜻밖의 횡재라고 해야 하나. 다양한 나무 수종과 각종 꽃을 사계절 감상할 수 있다. 연구소답게 곳곳에 꽃과 나무에 대해 작은 안내판이 설치돼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사람들은 주로 가로수길을 오가며 사진을 찍고, 쉼터나 연구소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 돌아간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지만 방문객들이 오랜 시간 머무르지는 않는 것 같다. 모든 걸 잠시 잊고 자연에 동화돼 보는 것도 좋겠다. 메타세콰이아가 발산하는 피톤치드 덕분인지 마음이 평온해진다.
 
옛 정취 넘실거리는 도래전통한옥마을
  
도래전통한옥마을의 양벽정 연못을 마주보고 있는 솟을 대문의 양벽정을 시작으로 도래전통한옥 탐방의 시작점이다.ⓒ 최정선
 
햇볕이 따가워 살갗에 와 닿는 느낌이 상쾌하지 않다. 하지만 쪽빛 하늘의 뭉게구름이 시원스럽게 떠 있다. 골목길 돌담의 길섶에는 여름꽃이 흔들린다. 덩굴인 호박도 영글기 시작해 담장에 대롱 매달려 있다.

산림자원연구소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도래전통한옥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골목마다 옛 정취가 넘실댄다. 도래전통한옥마을 초입 안내판을 열심히 눈으로 스캔했다. 마을 입구엔 방문자센터가 손님을 맞고 그 바로 옆엔 나그네가 편히 쉴 수 있는 영호정(향토문화유산 제34호)이 있다. 연못을 마주 보고 있는 솟을대문의 양벽정(향토문화유산 제35호)은 마을 탐방의 본격적인 시작점이다.
 
이곳 양벽정의 기품 있는 누마루 천장엔 시인 묵객이 남긴 시가 가득 걸려 있다. 양벽정은 조선중기 선공감역(繕工監役)과 성균사업(成均司業) 등을 지낸 홍징(洪澄)이 1587년 화순 도암에 세운 정자다. 이곳에서 양산보, 정철, 최시망 등 당대 시인들과 교류했다. 이후 정자가 훼손되면서 후손이 도래전통한옥마을로 이전 건축했다. 지금은 마을 주민과 출향인사들이 모여 '도래의 날' 행사를 치르는 장소다.

시민문화유산 2호인 '도래마을 옛집'은 내셔널트러스트가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매입했다. 현재 문화유산 보호 차원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한옥 숙박 체험과 전통 체험을 할 수 있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개방하고 일요일과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황톳빛 골목길은 홍기헌 가옥(국가민속문화재 제165호)과 홍기응 가옥(국가민속문화재 제151호), 홍기창 가옥(국가민속문화재 제9호) 등 남도 양반가의 대표적인 옛집과 연결된다. 
 
까치발을 하고 내다본 기와집이 단아하다. 예스러운 기와는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 있다. 물 흐르듯 유연한 곡선의 처마가 춤을 춘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도 예사롭지 않다. 이곳 옛집 지킴이가 내어준 시원한 모과차가 달다. 동료들 몰래 무려 5잔이나 마셨다. 
 
짜릿한 놀이시설로 인기몰이 중인 빛가람 전망대
  
빛가람 전망대 100m 높이의 최첨단 시설로 설계된 이 전망대로, 이곳에서 바라본 신도시의 풍경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황홀하다.ⓒ 최정선
 
나주가 혁신도시로 확정되면서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해 전력거래소, 한국농어촌공사 등 16개의 공공기관이 나주로 이전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2008 한국의 아름다운 도시' 혁신도시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곳엔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빛가람 전망대'가 인기몰이 중이다. 2016년 7월 개관해 나주 혁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전망대 외관은 도시를 아우르는 빛, 남도의 젖줄인 영산강의 흐름이 배메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됐다.

구성은 전시동과 전망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시관에선 디지털 영상쇼와 사진전을 관람할 수 있다. 리프트 형식의 영상관이 전망대로 가는 줄 알았다. 리프트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무심코 동료들과 탔다. 이곳에서 나주 혁신도시 홍보영상을 5분 이상 봤다. 좁은 공간에 대여섯 명이 서서 보는 동안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다.

빛가람 전망대는 100m 높이의 최첨단 시설로, 전망대에 오를려면 나무 계단과 모노레일 중 하나를 이용해야 된다. 우리의 선택은 두말할 것 없이 모노레일이다. 현대문명의 기기인 모노레일을 타고 4층에 내려 레스토랑을 지나 5층 전망대로 직진했다. 전망대는 360도 유리로 혁신도시를 조망할 수 있다. 탁 트인 파노라마 속 신도시의 풍경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황홀하다.
 
빛가람 전망대의 돌 미끄럼틀 찰나의 순간 내려오는 돌 미끄럼틀은 그야말로 짜릿함 그 자체다. ⓒ 최정선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올랐다면 내려올 땐 돌 미끄럼틀을 타길 추천한다. 찰나의 순간 내려오는 돌 미끄럼틀은 그야말로 짜릿함 그 자체다. 전망대 관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중국 장자제의 돌 미끄럼틀 시설을 벤치마킹해 제작한 놀이 시설이란다.
 
국내 유일의 돌 미끄럼틀로, 전망대에서 15초 만에 내려온다. 몸을 맡기는 순간 짜릿한 스릴이 장난 아니다. 이보다 즐거운 시간이 없을 뜻. 게다가 가격도 1000원으로 저렴해 가격대비 만족도 높다. 안전이 우선이라 안전교육을 필두로 안전모, 안전복, 보호대 착용을 엄수해야 된다.
 
근대문화유산의 보고, 영산포
  
영산포등대 고려시대부터 세곡의 담당하던 조창이 설치된 영산포는 물류의 중심지다. 내륙의 유일한 등대가 영산포 중요성의 증거다. ⓒ 최정선
 
영산강은 4대강 중에서 가장 조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으로 과거부터 뱃길이 왕성했다. 고려 시대부터 세곡의 담당했던 조창(漕倉)이 설치된 영산포는 물류의 중심지다.

조선 초기에도 남부 지방세를 거둬 영산포로 집결시켰다. 그 물산은 영산강을 통해 한양으로 갔다. 일제강점기엔 목포가 개항과 동시에 나주 평야의 쌀을 영산포를 통해 일본으로 보내는 요충지 역할을 했다. 이렇듯 오랜 시간 내륙수운의 교통요지가 영산포다.
 
1914년 호남철도 개통과 영산강 목교의 완공 1년 뒤, 포구의 안내자로 영산포 등대가 건립됐다. 우리나라 내륙 하천의 유일한 등대였다. 또한 1989년까지 물난리가 자주 발생한 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당시 수위 측정과 등대의 역활을 겸했다. 안타깝게도 등대의 역할은 1978년 영산강 하구언 건설과 동시에 그 막을 내렸다.

특히 영산포 등대는 고깃배들이 드나들지 않는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콘크리트 구조의 몸통엔 거푸집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과거 영산포의 번영과 근대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산증인이다. 황포돛배 선착장 앞에 우뚝 서 있는 등대를 한 번쯤 눈여겨봐도 괜찮다.
 
영산강 하굿둑이 만들어지며 영산포 뱃길은 끊어졌지만, 2000년경 황포돛배가 다시 영산강의 영화를 재현하고자 뱃길을 열었다. 과거 홍어 뱃사공들이 탔다면 지금은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1시간에 1대씩 운항 중이며 과거 뱃길을 따라 거슬러 가는 시간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황포돛배는 한국 천연염색박물관이 있는 강어귀까지 갔다 돌아오는 원점회귀형 코스로 운행된다.

영산포는 나주평야와 인접해 강을 통해 바다로 나간다. 이런 장점으로 이곳엔 목포의 개항과 함께 1900년대 초반부터 일본인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근거지인 영포은좌(榮浦銀座)나 본정통(本町通) 같은 일본인 상점 거리가 생겼다. 당시 일제에 의해 목포와 군산처럼 수탈의 근거지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영산포에는 적산가옥이 남아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산포 근대역사 여행은 홍어 거리의 영산포 역사갤러리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에게 사업자금을 대주던 조선식산은행이었다. 현재는 영산포의 변천 과정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그 이외 갤러리 주변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의 촬영지인 영산포 극장과 일본인 지주가옥, 역사가 100년도 넘은 영산포 교회 등이 남아있다.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본인지주가옥 영산포 원정(元町) 안쪽의 널찍한 마당과 정원, 청기와로 구성된 2층 적산가옥이다.ⓒ 최정선
 
우린 일본인 지주가옥으로 가, 전통 일본식 가옥을 살펴봤다. 영산포 원정(元町) 안쪽에 들어서자 널찍한 마당과 정원, 청기와로 구성된 2층 적산가옥이 보였다. 나주에서 최고의 부자였던 구로즈미 이타로(黑住 猪太郞)가 살던 집이다. 그는 1905년 영산포에서 도착해 불과 4년 만인 1909년 영산포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됐다. 이 집은 1935년 일본에서 자재를 들여와 지었다.

해방 후, 이 적산가옥은 선교사가 보육원으로 운영했고, 그 뒤 1961년 개인이 매입해 주택으로 사용했다. 최근엔 나주시가 2009년 근대건축물 역사 보존 차원에서 사들여 찻집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정선 시민기자는 책 <생각없이 경주> 저자입니다. 이 기사는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https://blog.naver.com/bangel94)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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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한국여행작가협회). <생각없이 경주> 저자이며 여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