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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을 반대하며 일어난 반중국 시위에서 홍콩정부의 폭력 진압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도 무차별 적으로 피해를 당했고 자녀를 둔 엄마들은 '엄마들 집회'를 열었고 쿰쿰씨는 이 곳에서 시민들에게 힘을 더하기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 이희훈
홍콩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홍콩시민들은 지난 6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범죄인 인도 조례'(일명 송환법) 반대 집회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인해 참가자들이 부상당하고, 학생들이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홍콩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 사태를 폭동으로 규정했다. 자녀를 둔 여성들은 이에 반발해 '엄마들의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 현장에서 바로 광둥어로 번역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등장했다. 홍콩에서 구의원을 지내고, 학생들에게 젠더와 문화 운동을 가르치는 '쿰쿰'(활동명·55세)씨가 노래를 이끈 주인공이다. 쿰쿰씨는 자신의 밴드 '위치스 인 액션'(행동하는 마녀들) 멤버들과 함께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며 집회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9일 홍콩 중앙청부청사 앞 타말 공원에서 쿰쿰씨를 만났다. 그녀에게 송환법 반대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이유와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임을 위한...>은 대만·홍콩 노동운동계서 이미 유명한 노래"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쿰쿰(활동명)씨가 홍콩 중앙정부 청사가 보이는 타말 공원에 섰다.ⓒ 이희훈
   
- 한국에서 쿰쿰씨가 부른 광둥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주목을 받고 있다. 알고 있나? 
"내가 광둥어로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이렇게 알려지게 되어 영광이다. 이렇게 될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주목받기 위해서 노래를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기회가 된다면 꼭 불러 보고 싶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을 어떻게 알게 됐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대만과 홍콩의 노동운동계에서 잘 알려진 노래다. 중국어로 된 가사를 친구에게 배웠고, 그 내용이 감동적이고 힘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한국어 원곡을 배우고 싶었다."

- 가사의 내용과 의미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어디인가?
"기본적으로 가사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문법적으로 어려웠고, 섬세하고 시적인 표현들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가사는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이 부분이다. 지금의 홍콩의 상황을 위로해주는 문장으로 느껴졌다.

1997년 홍콩이 반환되면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송환법 반대 운동을 하면서 젊은 학생들이 감옥에 잡혀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본국 정부의 강력한 힘으로 희망이 없지만, 역사가 기억할 거라는 의미에서 이 가사가 위로가 됐다."

- 집회 당시 혼자서 노래를 불렀나? 왜 노래를 부르게 되었나?
"대중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잘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혼자 불렀는데, 집회 참가자들이 점차 쉽게 따라 불렀다. 노래를 부르면서 친구 알렝이 2005년 홍콩 세계무역기구 (WTO) 반대 시위에 참여한 한국농민단체에서 배운 손동작을 함께 가르쳐줬다. 

홍콩의 젊은 사람들은 집회에서 노래하거나 특별한 행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5년 전 우산혁명 때도 노래로 힘을 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래를 통해 격려하고, 포기하지 않도록 힘이 되고 싶었다.

"유튜브로 본 '촛불혁명'서 전율... 홍콩도 바뀔 것, 자신감 생겼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쿰쿰(활동명)씨. ⓒ 이희훈
 
- 이 노래는 한국의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있다.
"<택시운전사> 등 한국 영화를 보고 (노래의 배경을) 알게 되었다. 감동적이었고, 천안문 사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 홍콩이 한국의 광주 민주화 운동과 천안문 사태 당시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우 슬프다. 그래서 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을 부르게 된 것이다."

- 한국에는 최근 '촛불혁명'이 있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유튜브를 통해 봤다. 몸서리가 쳐졌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시민의 힘이 강하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집회하는 곳곳에서 두려움 없이 자진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시민의 힘으로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촛불혁명과 검은 행진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나?
"나도 검은색 옷을 입고 행진을 했던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행진했지만 한국의 촛불집회처럼 예술과 음악이 없어 건조했다. 기독교인들의 밤샘 찬송 농성이 있었지만 음악과 예술이 더해진 집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앞으로 검은행진이 어떻게 될 거라고 보나?
"아직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계속 지속할 거 같다. 200만 명이 모인 검은행진 이후 시민들은 자신감과 잠재력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선거가 앞으로 다가온다. 2013년 우산혁명 이후 분위기가 식고 분열이 있었지만 2019년에는 무엇인가 바뀔 것을 기대한다. 자신감이 생겼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래와 문화가 있는 한국의 모습에 동기부여가 됐다. 홍콩사람들이 더 자신감을 가지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국제사회에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 함께 홍콩의 송환법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쿰쿰(활동명)씨. ⓒ 이희훈
   
홍콩시민을 향한 백기완 선생의 헌사 "눈시울이 뜨거워져"

홍콩에서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공연 영상을 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도 지난 2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쿰쿰씨와 홍콩시민을 향한 메시지를 남겼다. 백 소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원작 시인 <묏비나리>를 쓴 작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는 홍콩시민 여러분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노래만 들어도 울컥한데, 홍콩에서도 이 노래를 불러주니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이 뜨거운 정열을 여러분들에게 다시 띄웁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980년 12월 옥중에서 쓴 시 <묏비나리>를 발췌해 만들었다. 황석영 작가가 노랫말을 다듬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작곡해 1981년에 만든 곡이다. 

이 노래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숨진 고 윤상원씨와 노동운동을 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박기순씨의 영혼 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극 <넋풀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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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이희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