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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카와 고라는 마을이 있다. 가파른 삼각형의 지붕이 두툼한 눈을 이고 있는 겨울 풍경으로 알려진 곳인데,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사진만 보면 북유럽 어딘가의 마을일 것이라 짐작했던 동네가, 1시간만 날아가면 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마음이 동했다. 엄마를 열심히 꼬드겨 비행기를 탔다. 
 
장난감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시라카와 고의 상징적인 장면이예요. 이런 가파른 지붕은 겨울에 큰 눈이 쌓여도 집에 무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테구요. 지붕이 눈을 잔뜩 이고 있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졌어요. ⓒ 이창희

"눈이 많이 내리면 2미터를 넘기도 해요. 가끔 집들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죠."

이번에 머문 여관은 130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었는데, 지금의 3대째 주인장이 마을에서 가장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안내하고는 설명을 더한다.

깊은 산골의 마을은 3월의 온기에도 눈을 남겨 두었다. 멀리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봉우리는 아직도 두꺼운 눈으로 하얀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다른 곳보다 일찍 해가 졌고, 늦게 떠올랐다. 눈이 많이 내리면 고립될 것이 뻔한 곳에 마을이라니, 놀랍다.
 
'낙설주의',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경고 표지판입니다! 지붕에 쌓인 눈이 녹아내리면서 쏟아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가, 여기 저기에 붙어 있었어요. 재밌지 않나요? 하지만,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았어요. 일순간 눈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창희
  
"유이의 정신이에요."

마을이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더니, 여관의 4대째 주인이 될 딸내미가 설명을 한다. '유이'란 한자로 '맺을 결(結)'자를 일본어 식으로 읽은 것이다.

서로가 이어져 있다는 것이고,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는다는 뜻이다. 시라카와 고에 대해 안내하는 홈페이지에서 찾아본 유이에 대한 설명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두레'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한다. 내용 중 일부를 옮겨 본다.
 
'시라카와 고에서 '유이'의 마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유이'라는 것은 상호부조의 개념이에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라카와 고의 생활은, 옛날부터 개개의 가족이 서로 돕고 협력해야만 성립되는 것이었어요. 겨울에 눈으로 마을이 닫혀버리기 때문에, 가족들끼리 서로 돕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가혹한 자연조건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때문에, 1년 내내 다양한 생활의 순간과 행사에서 서로 돕는 것은 필수적이었고, 시라카와 고에서는 '유이'와 같은 상호부조의 관계가 형성되었답니다. …(중략)... 이런 '유이'의 마음은 현대사회가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서로 돕는 것의 중요성'과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나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 시라카와 고 홈페이지 (https://shirakawa-go.gr.jp/about/) 중 발췌
 
시라카와 고의 풍경입니다. 3월인데도 멀리로 보이는 산봉우리는 아직 하얗게 눈을 얹고 있어요. 사진에서 보이는 새 지붕은 작년 가을에 마을사람들이 같이 올렸다고 하더라구요. 집이 비춰진 물은 곧 모내기를 하게 될 논이예요. ⓒ 이창희
    
혹독한 자연은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을 좀 더 긴밀하게 연결했고,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세계'로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일본에서 당연한 친절이 이 마을에서 더욱더 따듯하게 느껴진 것도 '인연'에 대한 그들의 자세 덕분인 듯하다.

얼마 전 '섬마을 인생학교' 프로그램으로 찾았던 신안의 섬마을에서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 지난 17일 참가한 '섬마을 인생학교'는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쯤 바다를 넘어가면 도착하는 도초도에서 진행되었다. 
 
모내기를 막 끝낸 논의 풍경입니다. 도초도엔 논이 많았어요. 넓은 수로에는 물도 풍부했구요. 섬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이 모든 환경을 그들이 스스로 만들었다니, 놀라웠답니다. ⓒ 이창희
 
선착장에서 학교까지 이동하는 길은 길었고, 넓은 수로를 가득 채운 물과 모내기를 막 끝낸 반듯한 논들은 이곳이 섬이라는 것을 잠시 잊게 했다. 섬은 예상보다 컸고 여느 농촌 마을의 분위기를 그대로 품고 있어 의아했다. 분명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들어왔는데 말이다.
   
"섬이 넓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도초도는 주변의 수많은 섬들을 이어서 만든 거예요.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간척을 한 거죠, 사람의 힘으로."

놀라웠다. 500년 전의 조선 땅에 살았던 선대를 상상한다. 섬의 사람들은 거친 바다로부터 자신들의 '삶'을 보호해야만 했다. 홍도, 흑산도는 당시 가장 악명 높은 귀양지였으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중앙의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삶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돕기로 결정한다. 조수 간만이 심한 서해의 바다라면 가까운 곳의 섬을 연결하여 좀 더 안전한 땅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힘을 모아 바다를 메우고, 수로를 만들어 농지를 늘려간다. 살아갈 수 있는 땅이 넓어질수록 바다의 거친 파도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졌고,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땅에서 키워낸 작물과 서해의 바다가 허락한 수확물들로 한결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서로를 돌보았기에 '삶'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성공의 경험이, 그들의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을 테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원망이 없어요."

섬마을 인생학교를 왜 굳이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도초도에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신안 군수의 답이었다고 한다. 혹독한 자연환경은 섬의 주민들을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고난으로 밀어 넣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단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원망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었고, 상황을 더 나빠지지 않게 만들어 내야 하는 동료였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긍정', 인생학교가 이곳에 마련된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래가 쓸려내려가지 않도록 세워놓았어요!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모래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놓은 대나무 담이예요. 거친 파도가 모래를 쓸어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지혜였겠죠? 이걸 보는 순간 울컥했어요. ⓒ 이창희
 
인생학교 동기들과 함께 명사십리 해변을 찾았다. 가벼운 비가 바람에 날리는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의 기분은 황홀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해변을 즐기던 잠깐의 시간 동안 내 눈에 들어온 구조물이 있었다.

대나무로 튼튼하게 짜서 모래사장 끝에 지그재그로 세워진 방벽이었다. 설명을 듣자니 거친 파도에 모래가 쓸려나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직 쓸려가지 않은 모래 언덕 위에도 촘촘하게 대나무 벽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동네의 어딘가에 모여서 대나무를 쪼개 벽을 만들었을 주민들을 떠올렸다. 같이 힘을 합쳐 촘촘하게 방벽을 세웠을 그들을. 상상은 나래를 펴 기억 어딘가의 장면을 끌어올렸고, 지붕을 새로 올리기 위해 몰려들어 지붕을 채웠던 수많은 시라카와 고의 주민들이 연결되었다.

갑자기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천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진 두 마을의 사람들은, 혹독한 자연으로부터 그들의 '삶'을 그렇게 지켜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온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시목 해수욕장에서 만난 대나무 가림막이예요. 미로처럼 들어갔던 대나무 가림막 안에는, 언젠가 든든한 방풍림으로 자라날 작은 소나무들이 열심히 자라고 있었어요. ⓒ 이창희

인생학교에서의 사흘을 보내며,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시간을 여러 번 견뎌야 했다. 전국 각지에서 인생학교를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따뜻해서 자꾸만 울었다.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상처받기 두려워 사람을 멀리하고 있던 나를 깨달았고, 스스로를 속여왔던 외로움을 알아챘다. 연결되어 있음으로 서로에게 전달하는 온기가 이렇게 행복한 것이었다니.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느꼈어요. 지난 5월 17일부터 도초도에서 열린 '섬마을 인생학교'의 한 장면이예요. 싱그러운 초록의 잔디 만큼이나 따뜻하고 싱그러운 사람들 덕분에, 한참을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채민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관계를 통한 상처는 깊다. 피하거나 관계를 멀리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이 깊어졌을 때 그들이 나타났다. 고립된 섬에서의 사흘은 인간으로부터 나눠받은 온기만이 상처의 치유제가 될 것임을 일깨워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기꺼이 기댈 수 있는 등을 내어주는 그들을 만나, 행복했다. 그러니, 우리 함께 섬으로 가자.    

- 섬마을 인생학교 4기 내용을 자세히 보려면 http://omn.kr/1iq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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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