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여행

대전충청

포토뉴스

파라도르 데 카르도나 캐슬ⓒ wikimedia commons
 
스페인에는 '파라도르(Parador)'라는 것이 있다. 파라도르는 휴양지라는 의미로, 톨레도나 론다, 그라나다처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거나 혹은 유서 깊은 도시들에 남아 있는 옛 성이나 수도원 등을 개조한 호텔을 말한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도시들에는 파라도르가 한두 개씩은 꼭 있으며 모두 국영으로 운영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에서 잠자고, 밥 먹고, 산책과 명상을 하면서 공간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다.
 
파라도르 호텔은 현대적인 호텔들에 비해 건물이나 시설이 낡은 편이다. 어떤 파라도르는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곳도 있다. 객실 가격도 일반 호텔보다 훨씬 비싸다. 파라도르 데 그라나라 호텔은 예약사이트 기준으로 하룻밤에 30만 원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도 객실 예약은 보통 일찌감치 마감된다. 톨레도나 론다의 파라도르 호텔들도 마찬가지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가 설계한 저택 카사밀라도 곧 파라도르로 개방할 예정인데, 몇 년 치 예약이 이미 다 찼다고 하니 파라도르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비싼 숙박료를 내면서 파라도르에 묵고 싶어 하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파라도르 자체가 지닌 '역사성'과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 아닐까. 
              
'알함브라 궁전에서 하룻밤을 보내다니…'
'언제 알함브라 궁전에 자 보겠어?'
'18세기에 세운 누에보 다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네티즌이 남긴 글들에서도 문화와 가치에 대한 동경심과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쉽게 읽힌다. 

파라도르 호텔은 하룻밤 혹은 며칠간의 숙박이 전부다. 물론 전망이 좋고 근처에 명소와 근사한 레스토랑도 많다. 그런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비싼' 파라도르 호텔을 열망하는 건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서 하룻밤
   
법주사 팔상전 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수행이 시작된다. ⓒ 변영숙
     
한국에도 이와 유사한 문화 상품이 있지 않을까. 전 세계에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상품으로 한국의 템플스테이는 어떨까. 언뜻 템플스테이는 '불교'라는 종교적인 틀에 국한돼 보이지만, 2018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7개 산사에서의 템플스테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법주사 경내 수정봉 오르는 길에 본 법주사 경내ⓒ 변영숙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지승원들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꼽히는 곳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찰 건축물들은 한국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보물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유일한 목조탑인 팔상전, 부석사의 무량수전, 선암사 원통전, 마곡사 대웅보전 등을 감상하면서 하루 이틀 머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템플스테이의 상품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식사와 숙박은 기본이요, 산책과 명상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옵션이다. 또한 산사 생활을 통해 불교의 수행문화를 접할 수 있고, 연등만들기, 사찰음식 만들기 등 다채로운 불교 문화 체험도 가능하니, 템플스테이는 가히 '종합문화상품'이라고 할 만하다. 템플스테이 마니아들은 줄여서 '템스'라 부르기도 한다.
 
여러모로 템플스테이는 스페인의 파라도르처럼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 실제로 7개 산지승원이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 한국의 불교 문화에 관심을 갖고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활성화할 다양한 방안들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법주사의 템플스테이
    
법주사 경내 법주사는 세계인에게 한국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외국인 전담 인력도 두고 있다. 법주사를 관람하는 외국인들. ⓒ 변영숙
    
기자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산지승원' 기사를 연재하면서 계속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는데, 올 3월과 4월 두 차례 다녀온 법주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인 곳이다. 산사 수행, 어린이 여름 캠프, 영어 캠프, 휴식형 템플스테이 등 상시로 운영되는 프로그램 외에도 외국인과 관광통역사 등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수시로 진행된다. 외국인 전담 인력도 따로 두고 있어 템플스테이에 머물렀던 외국인들의 평가도 좋은 편이라고 한다.

다른 템플스테이와는 다른 법주사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곳에서 만난 한 스님의 설명이다.

"법주사는 접근성이 좋아요. 그동안은 교통이 좀 불편했지만 이제 고속도로가 개통돼서 서울에서도 2시간 반이면 올 수 있어요. 그리고 길이 아주 좋습니다. 오면서 보셨겠지만 정이품송부터 시작해서 사찰까지 이어지는 소나무길이 일품이죠. '오리숲길'의 소나무들은 모두 백 년 이상 된 나무들입니다. 그런 소나무들은 쉽게 볼 수 없죠. 복천암까지 올라가는 세조길도 너무 아름답죠. 이렇게 아름다운 길은 또 없을 거예요." 

실제로 법주사 주변에는 광대한 소나무림이 분포하고 있고, 사내리에서 법주사까지이어지는 오리숲은 100년 이상된 소나무들과 느티나무, 참나무, 고로쇠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져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삼시 세끼와 숙박, 사찰문화 체험을 전부 포함해 1박에 5만 원이 조금 넘는 저렴한 참가비는 템플스테이의 가장 큰 미덕 중의 하나다. 겨울이면 뜨끈뜨끈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온돌방, 방문을 열면 펼쳐지는 산봉우리들의 향연, 스님과의 차담과 명상, 계절에 따라 푸른 솔숲과 화사한 꽃길로 변하는 길까지. 그뿐이 아니다. 국보와 보물을 비롯한 수십 점에 달하는 문화재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 역시 법주사 템플스테이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법주사 템플스테이 공양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삼시 세끼와 숙박은 템플스테이의 최고의 미덕 중 하나이다. 줄을 서서 공양을 기다리는 것도 이미 하나의 수행이다.ⓒ 변영숙
      
"한국의 전통문화와 사찰 문화를 익힐 수 있는 곳으로는 템플스테이만한 게 없어요. 매끼 공양을 위해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모두 문화이고 수행입니다." 


밥을 기다리고,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하는 것 모두 문화이자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씀은 템플스테이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침대 없이 바닥에 이불 깔고 자는 것, 스님들의 가부좌 자세, 절하는 것, 다도, 공양 등을 통해 외국인들은 한국의 문화를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접하고 익히게 되는 것이다. 한국 문화에 불교 문화가 상당 부분 스며있음을 고려한다면 법주사는 최일선에서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문화유산을 알리고 있는 셈이다.  
 
스토리텔링의 보고
  
법주사 봄 풍경 온갖 나무와 꽃들이 어우러진 법주사 오리숲길은 최고의 길이다. ⓒ 변영숙
 
법주사 경내는 물론이고 주변의 고개와 길, 나무, 계곡, 바위에 깃든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님의 말씀은 끝없이 이어졌다. 

세조가 연(임금이 타던 가마)에서 내려 걸어서 넘은 말티재, 세조의 연이 걸릴 것을 우려해 스스로 나뭇가지를 들어 올리고, 소낙비를 피하게 해 주었다는 기특한 정이품송, 세조가 복천암에 주석하고 있는 신미대사를 만나러 갔던 오솔길(지금은 '세조길'로 정비됨), 세조가 목욕을 한 후 피부병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계곡물 등. 법주사는 그야말로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그중 세조가 신미대사에게 토지를 하사한 일화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세조가 신미대사를 만나러 복천암으로 가던 길에 속리산 계곡물에서 목욕을 했다. 그 후 거짓말처럼 피부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세조는 자신의 피부병 완치를 위해 기도를 드려준 신미대사에게 토지를 주겠노라 했다.  
 
"하루 동안 복천암에서 댓돌을 끌고 최대한 멀리 가시오. 그 안에 들어온 땅 모두를 법주사에 하사하겠소."

세조의 말에 따라 신미대사는 댓돌을 끌고 복천암부터 지금의 보은군 속리산면사무소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당시 세조가 하사한 땅이 무려 200결에 달했으며, 거기에는 속리산도 포함됐다. (수확량에 따라 1결은 적게는 3만 평에서 15만 평으로 잡는다고 하니, 200결이 어느 정도인지는 독자분들이 짐작해 보시라.)

속리산이 법주사 소유의 땅이 된 배경을 설명해 주는 일화다. 법주사 홈페이지에는 세조가 법주사에 전지 200결을 하사했다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이 소개돼 있다. 

'땅' 얘기가 나온 김에 스님에게 물어보았다.
  
"사찰이 국립공원 방문객들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을 두고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데요…"  
 
법주사 숲 유네스코 세계유산 천년고찰 법주사는 세계에 한국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템플스테이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는 최고의 문화관광상품이다. ⓒ 변영숙
  
스님은 속리산이 국립공원이긴 하나 사찰은 엄연히 법주사 소유의 땅이며, 입장료가 공원관리와 문화재 관리를 위해 사용되는 만큼 징수가 문제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문화재는 국보나 보물 문화재뿐만 아니라 산책로, 나무, 천연기념물 등 자연 문화재도 포함된다고 봤다. 어려운 문제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29일부터 지리산 천은사가 통행료를 받지 않기로 지자체 등과 합의했다고 한다. 속리산은 1970년 우리나라 국립공원 6호로 지정됐다. 법주사 역시 '국립공원 내 문화재 관람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천은사 사례를 계기로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온 이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 산지승원의 세계유산등재로 한층 격상된 한국의 전통문화와 불교 문화, 이를 세계에 알리는 템플스테이의 가치가 관람료 문제로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신록이 우거지는 5월, 마침 부처님 오신 날도 머지 않았다. 봄의 절정, 산사에서 하룻밤 묵어보는 건 어떨까.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한국여행작가협회준회원, NGPA회원 저서: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