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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원제주

포토뉴스

 
파란 하늘 아래 벚꽃이 만개한 영랑호, 그 뒤로 설악산 울산바위까지 모두 하늘빛을 그대로 받아 파랗다.ⓒ 정덕수
 
밭 가장자리에 세워둔 오토바이가 불탔다. 농사일을 보러 다니며 이용했을 오토바이는 이 농부에겐 소중한 재산이다.ⓒ 정덕수
 
4일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발생했던 산불이 5일 저녁 최종적으로 진화됐다고 하고도 사흘이 지난 8일 아침, 속초에서 화재 현장을 지켜본 후유증인지 심란한 마음을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8시에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고성으로 출발했다.
 
고성군 토성면과 속초시 장사동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잠시 갈등했으나 버스가 영랑호를 통과할 때 벌떡 일어나 차 좀 세워달라고 했다. 장사동 입구에서 버스가 정차하자 횡단보도를 건너 맑은 영랑호와 설악산을 향해 지름길로 달려갔다.
  
골목을 빠져나가자 4일 밤부터 5일 새벽까지, 그리고 5일 오전에 돌아보던 속초시 동명동이 정면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눈이 덮인 대청봉과 울산바위가 공룡능선에서 마등령을 거쳐 마산봉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가 파란 하늘 아래 영랑호에 펼쳐졌다.
 
사진 몇 장 촬영하고 아무래도 여기만 둘러볼 수는 없겠다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시간이 되면 아버님 계신 곳을 찾아가려는데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었다. 마침 친구도 곧 출발할 생각이었단다. 속초고등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걸어가는데 조금 전과 판이하게 다른 풍경에 멍해졌다.

자신의 고통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다
  
어렸을 때 농기계 정비와 용접, 선반 등 기술을 배웠다. 먹고살기 위해선 기술이 최고란 말들을 하던 시기였다. 그때라면 이 경운기는 농민이 공장에 당장 가져가 수리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 이걸 수리하는 것과 새로 사는 것 두 중 어떤 쪽이 더 유리한지 모르겠다.ⓒ 정덕수
    
융해된 엔진의 잔해. 660.3°C에 이르면 알루미늄은 융해된다. 가볍고 내식성이 강한 소재로 경량화가 필요한 산업에 많이 사용된다. 철은 융해점이 1538°C다.ⓒ 정덕수
 
밭을 갈려던 경운기는 바퀴와 V벨트, 로터리 바퀴와 고무판이 다 탄 모습으로 기울어져 있다. 삽과 괭이나 호미, 쇠스랑 등 온갖 농기구도 쇳덩이만 남았다. 농사일을 하며 이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오토바이는 실린더와 피스톤 엔진까지 모조리 녹아내린 상태로 주저앉아 있었다.
 
"수명을 다해도 고물상에라도 넘겨지는 게 정상인데, 어떻게 이렇게 알뜰하게 태워지는 운명이란 말인가"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 산이 다 새까맣다. 먹 하나로 그린 수묵화라도 생명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이 풍경에선 도무지 생명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둔덕 위 불탄 집에 차가 서 있어 올라가 "이 집 주인이신가요? 혹 괜찮으시다면 사진 촬영을 좀 해도 되겠어요?"라 물었다. 선선히 승낙을 해줘 현관으로 연결된 계단참을 오르려는데 현관문으로 사용했던 두꺼운 장식 유리가 깨진 게 아니라 조각이 나며 녹은 채 휘고 구부러진 상태로 쏟아져 있었다. 마치 기묘한 작품처럼 보였다.
  
산불 피해를 입은 속초 장사동 한 민가에서 주인의 허락을 받고 촬영했다.ⓒ 정덕수
   
현관으로 오르는 계단 오른쪽 에어컨 실외기와 창문 모두 불에 탔다.ⓒ 정덕수
   
계단참엔 현관문이 불타며 깨지다 못해 녹은 유리가 쏟아져 있다.ⓒ 정덕수
 
하긴 풀도 채 자라지 않은 밭에 세워두었던 경운기도 탈 정도니, 불에 탈 수 있는 옷이며 가구로 채워졌던 집인들 온전할까 싶었다. 알루미늄 문틀도 견딜 수 없는 화염, 그 속에서 두꺼운 유리가 뒤틀리고 녹을 정도였다니. 자칫 집을 지키려고 마지막까지 버텼더라면 대피할 기회조차 없었을 모습이다. 그런데도 이 집 주인은 선선히 사진 촬영을 허락해줬다.
 
허락을 받았지만 막상 처한 환경에 계단참에서 멈칫거렸다. 이 집 주인은 습관처럼 집에 들른 모양인데 그새 어딘가로 떠났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이 주인처럼 많은 이들이 지금 자신의 고통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공감이란 뭔가. 바로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더불어 희망을 찾아가는 거 아닌가. 이들이 웃을 수 있는 그 순간까지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 가족의 단란한 아침이나 저녁이 차려졌을 부엌이 처참하게 주저앉은 지붕 아래 나타났다. 그 옆엔 쇠붙이로 전락한 식탁과 의자가 불기를 먹어 제 빛을 상실한 채 제자리를 지킨다. 식탁에 어린아이들이 앉아 엄마가 차려주는 맛난 밥을 기다렸을 풍경이 그려졌다. '엄마 맛있어요', '엄마 더 주세요' 이런 말들이 들리는 것 같았다.
 
단란한 가족의 건강한 밥상에 올랐던 그릇들이 다시는 쓸모없게 됐다.ⓒ 정덕수
   
어린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 '엄마 더 주세요. 맛있어요'라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정덕수
   
얼마나 단란한 가정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운동기구와 식탁, 그리고 부엌의 그릇들이 이재민의 아픔을 대신 말하고 있다.ⓒ 정덕수
 
곳곳에 흉터를 만들어 놓은 풍경

이 집 주인은 젊어 보였다. 마흔이나 됐을까 싶은 모습이었다. 그릇으로 미뤄 대가족이 한집에 살았던 듯하다. 찜기와 냉면이나 여름철 콩국수를 담았음직한 도자기 냉면 대접이 두 죽(그릇 따위의 열 벌을 묶어 세는 단위) 정도 되는데, 그중 12개의 냉면 대접은 포개어진 상태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있다.
 
시골 가정집에선 볼 수 없는 금고가 있는 방. 가족들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했었나 보다. 부모님을 위해 준비한 듯한 안마의자가 갖춰진 방도 화마엔 달리 도리가 없었다. 불에 탄 금고 옆엔 누군가 금고를 확인하려 했는지 마시다만 물병이 놓여있는데 그것만 다른 색깔이라 낯설다.
 
TV도, 컴퓨터도 모두 불타고 철판만 흉물스럽게 바닥을 뒹굴었다. 유리를 녹일 정도의 열기가 휩쓴 상태에서 가족이 안전한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탈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태워졌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주인은 막막할 뿐이겠다.
 
몇 장 더 사진을 촬영하는데 친구가 전화로 어디냐고 물었다. 속초고등학교 근처라고 일러주고 친구가 기다리는 학교 앞으로 갔다. 차에 오르자 "참 신기하지. 중간에 있는 집은 멀쩡한데 그 주변에 있는 집들은 다 타고 말이야"라 했다. 조금 전 내가 들렀던 집도 바로 앞도 그랬다. 
 
강풍에 불이 어지럽게 날리며 곳곳에 흉터를 만들어 놓은 풍경이 차창 밖으로 지나간다. 흉터를 찾는 일보다 성한 산과 집을 찾기가 더 어려운 풍경, 친구와 돌아보고 싶은 장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음은 어지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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