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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포토뉴스

   
바다에 비친 실종자 가족들의 기다림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의 구조선을 기다리며 부둣가에 서있는 그림자가 바다 위에 비치고 있다. ⓒ 이희훈
 
"'찰칵' 소리, 한동안 이 작은 소리에도 온 몸이 굳었어요. 비슷한 소리가 들려도 온 신경이 거기로 몰리면서 몸이 움츠러들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생긴 트라우마였어요. 심각했죠."

그날, 동생의 죽음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진도체육관 2층 관중석에 앉아 1층 강당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던 가족의 모습을 내려찍었다. 체육관만 그런 게 아니었다. 거리는 물론이요, 버스 위, 건물 옥상까지. 팽목항 전체가 카메라로 둘러싸였다. 취재진은 울다 졸도해버린 어머니의 질질 끌려가던 모습도, 엄마 품에서 경기를 일으키며 울던 아이의 모습도 렌즈에 담으려고 달려들었다. 언론은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극적인 장면을 담는 도구로 카메라를 이용하는 듯했다. 위로는 없었다.

단원고 2학년 3반 '윤민이 언니', 최윤아(29)씨의 기억이다. 그에겐 이 모든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2학년 3반 윤민이 언니 최윤아씨ⓒ 이희훈
 
참사 후 5년이 흘렀다. 이번에도 세월호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이들이 있다. 카메라 트라우마가 있다던 최윤아씨를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 형제자매 다섯 명이다. 이들은 세월호 5주기를 앞두고 4월 1일부터 6일간 <세월호 형제자매 사진전 - 나와 우리의 시간>이라는 이름의 사진전을 열었다. 참사 이후부터 지금까지, 본인들이 세월호와 관련해 찍어온 사진들을 전시했다. 그런데, 이들의 사진은 우리가 자주 마주했던 세월호 사진들과는 어딘가 다르다.

"기자들 사진은 엄청 현실적이잖아요. 때론 우리가 무뎌져버린 현장을 찍기도 하고. 이번 사진전을 하면서 느낀 건, 세월호를 보여주기 위한 사진과 유가족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사진은 시선에서부터 다르다는 거였어요."

사진전을 함께 연 단원고 2학년 5반 '성호 누나', 박보나(26)씨의 말이다. 세월호 참사 후, 남겨진 가족들이 사진에 담아내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3일, 이들의 사진전이 열렸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옆 '치유센터0416 쉼과 힘' 전시공간 오름홀에서 박보나씨와 최윤아씨를 만났다.

[보나의 사진전] '나'와 그날 이후의 '나'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2학년 5반 성호 누나 박보나씨ⓒ 이희훈
 
"동생 영정사진, 그거 제가 이전에 찍어줬던 증명사진이에요. 이 기억 때문에 누구 사진을 찍을 때면 동생 기억이 울컥 올라오더라고요. 그래도 사진을 꾸준하게 찍으려고 노력했어요.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세월호 참사도, 동생도, 그리고 저 자신도."

'역사는 기록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후, 박보나씨가 주변에 자주 말하고 다녔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2017년부터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들을 할 때, 그는 제일 먼저 카메라를 집었다. 물론, 그에게도 사진이란 '눈물 흘리고 울부짖을 때나 찍히던 것'이었다.

"언론이 만든 '비참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기사 내용에 맞추기 위해 우리를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낙인찍는 게 정말 싫었어요. 우리 삶에 세월호만 있는 게 아닌데.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모습 외에도 평범한 언니, 혹은 누나로서의 삶이 따로 있는 건데. 이때 '더 이상 찍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야 유가족으로 분류된 박보나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박보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전시된 박보나씨의 사진 앞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그의 사진들은 유독 여행지에서 찍은 것이 많았다. 17년도에 찍었던 제주도 사진과, 지난 3월 스페인, 헝가리 등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이다.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2학년 5반 성호 누나 박보나씨ⓒ 이희훈
 
"참사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도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문득 앞으로 제게 남은 모든 순간이 이러진 않을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이 죄책감과 슬픔이 무뎌질 때가 올까 싶고.

이런 생각에 여행을 떠났어요. 참사 이후,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서.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조차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그냥 울고 싶어서 떠난 것도 있어요. 여기서는 어떻게든 눈물 꾹 참고 버티려고 하거든요."


이런 생각 외에도 한국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면 매번 마음 한 구석에 죄책감이 들었단다. 이번 여행은 현실에서 벗어나 본인을 찾기 위해 떠난, 모종의 도피 여행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도 결국은 세월호에 대한 기억과, 동생을 향한 추억으로 수렴됐다.

"예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진 찍은 걸 모아놓고 보면 동생과 관련된 것들이 많아요. 이번에 해외여행을 갔을 때도 세월호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여행 사진 중 헝가리를 여행했을 때 찍었던 게 기억에 남아요.

헝가리 도나우 강 주변으로 금속 주물로 만든 유태인들의 신발이 일제히 벗어져있는 설치 예술품이 있었어요. 유태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거였는데, 이게 세월호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사진으로 남겨놨어요. 이렇게 사진들을 찍으면서 느낀 건, 모든 사진이 결국 제 목소리라는 거예요. 말하지 못하고 담아 두었던 얘기든, 혹은 제가 외면하고 있던 것이든."


이어 박보나씨는 전시된 사진 중, 가장 인상 깊은 사진이 뭐냐는 물음에 본인의 사진이 아닌, 최윤아씨의 사진을 골랐다.

"이전에 윤아 언니랑 같이 '드래곤 길들이기'라는 만화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갑자기 언니가 주머니에서 윤민이 학생증을 꺼내는 거예요. 그러더니 카메라 앞으로 윤민이 학생증을 들어 올리고선 영화 엔딩 크레디트와 같이 찍더라고요. 너무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보는데 언니는 무슨 느낌으로 이 영화를 봤을까 싶었어요."

박보나씨의 말을 따라 최윤아씨의 사진 앞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먼저 보이는 사진은 동생의 학생증을 들고 찍은 12장의 사진이다. 사진의 배경은 대부분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다. 그는 왜 이렇게 찍은 걸까?

[윤아의 사진전] 12장의 동생 학생증 사진과 20장의 봉안함 사진
 
세월호 희생자 형제 자매들의 사진 전시 ‘나와 우리의 시간’ 전이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옆 '치유센터0416 쉼과 힘' 전시공간 오름홀에서 열리고 있다.ⓒ 이희훈
 
"윤민이가 바다에서 올라올 때 학생증을 걸고 나왔어요. 이걸 운이 좋았다고 해도 될까. 그래도 그 덕에 윤민이를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었으니까. 참사 후 한동안 윤민이 학생증을 몸에 지니고 다녔어요. 윤민이랑 함께 한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윤민이가 좋아했던 곳이나 좋아하는 것들을 볼 때면 늘 윤민이 학생증과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영화 크레디트와 함께 찍은 것도 같은 이유예요. 윤민이가 만화 영화를 제일 좋아했거든요. 디즈니나 픽사 같은 것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갈 때면 꼭 학생증을 챙겨가요. 얘가 제일 좋아했던 거니까, 여기서도 우리가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전시된 최윤아씨의 사진 가운데 뜻밖의 사진도 있었다. 5년 간 찍어온 동생의 봉안함 사진이다. 봉안함 위로는 화관이 올려 있었고, 함이 안치된 방 내부는 색색의 꽃과 사진, 인형들로 치장돼 있었다. 벽에 걸린 20장의 사진 모두 비슷한 듯 달랐다. 최윤아씨는 이 중 딱 한 사진을 꼬집어 말했다. 처음 찍은 봉안함 사진. 동생을 추모공원에 안치한 직후에 찍었던, 2014년도의 사진이다.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2학년 3반 윤민이 언니 최윤아씨ⓒ 이희훈
 
"처음 동생 봉안함을 만지는데... 이렇게 차가울 수가 있나 싶었죠. 죽음을 만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어요. 전 동생 시신도 만져봤거든요. 그런데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봉안함을 제대로 만지지도 못했어요. 눈물은 또 얼마나 흐르던지.

그러다 동생을 한 평 남짓한 그 공간에 두려는데, 너무 휑한 거예요. 그땐 경황이 없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왔거든요. 동생 혼자 두는 것도 싫은데, 아무것도 없는 이 텅 빈 공간이 어찌나 괴롭게 느껴지던지. 그래서 바로 1층으로 내려가 꽃을 사서 급하게 공간을 채웠던 거예요. 첫 사진을 잊을 수가 없죠."


그날부로 최윤아씨의 '동생 방 꾸미기'가 시작됐다. 유골함 위에 올려진 화관도, 주변의 꽃까지 모두 그녀가 손수 만들었다. 유골함 아래에 깔린 융단도 동생과 함께 꼬박 3개월을 들여 만들었다. 최윤아씨는 이 일을 '앞으로 평생 할 일'이라고 말했다.
 
"추모공원 내부는 계절이 없어요. 늘 차갑고, 어둡고. 매번 같아요. 동생에게 계절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화관을 직접 만들면서 계절의 색감을 최대한 넣어주려고 했죠. 계절에 맞는 꽃도 넣기도 하고요.

이제는 그 안에 동생이 살아있다면 우리가 해줬을 것들도 같이 넣고 있어요. 어디 여행을 가더라도 동생 선물을 사온다던지. 앞으로도 계속 꾸며줄 거예요. 예전에는 엉엉 울면서 방을 꾸몄는데, 이제는 여유가 좀 생겼어요. 요즘은 가족 모두가 함께 우리 집에 있는 동생 방을 꾸며주는 느낌이에요."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이 안산을 떠났다.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힘든 것도 있었지만, 일상에서 들려오던 세월호를 향한 비난도 이유였다. 최윤아씨도 마찬가지였다.

"참사 2년 후 안산을 떠났어요. 엄마가 이 공간 자체를 너무 괴로워하셨거든요. 일상에서 동생이 갑자기 사라진 거잖아요. 이 와중에 밖에는 안산 추모공원을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었고. 결국 엄마가 먼저 이사 가고 싶다 하셨어요. 지금은 군포에 있어요. 더 멀리 갈 수도 없었어요. 언제든 안산을 올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 사실 요즘 다시 안산으로 돌아오자는 말도 하고 있어요."

어김없이 찾아온 유가족들의 4월. 다섯 번의 봄을 마주하는 동안 남은 이들은 분명 단단해졌다. 작은 '찰칵' 소리에도 몸이 움츠러들었던 이들은 더 이상 '찍히는' 피해자가 아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울면, 떠난 제 동생은 얼마나 불쌍하게 보일까. 그래서 전 이제 동생 얘기도 웃으면서 말해요. 사실 슬프고 아픈 사람인 게 맞지만, 더 이상 그렇게만 기억되고 싶지 않아요. 더 당당해지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피해자인 게 부끄럽지 않도록. 그래야 내 동생도 더 당당해질 수 있을 거고요. 매일 되뇌어요. '당당한 피해자가 되겠어'라고. 세월호 관련한 거면 더더욱."

시종일관 밝은 목소리로 얘기를 이어나가던 최윤아씨. 그가 인터뷰 말미에 속내를 드러냈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던 말처럼, 최윤아씨도 같았다.

기억, 남겨진 자들의 과제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윤민이 언니 최윤아씨(오른쪽)와 성호 누나 박보나씨가 동생들이 다녔던 단원고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이희훈
 
어느덧 대화를 나눈 지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인터뷰 마무리하기에 앞서 두 사람에게 공통 질문을 건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남은 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반대로 잊어야 할 게 있다면 무엇일까.

최윤아 "세월호 참사는 그 무엇도 잊을 게 없어요. 아직 확답이 나온 것조차 없는걸요.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행중이에요. 하지만 잊어야 할 것을 꼽는다면 '세월호 참사 이전의 사회'인 것 같아요. 그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했는지를 알고, 다시 새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참사 이후의 사회는 이전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죠.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것은 사실 그 무엇도 잊어서는 안 돼요."

박보나 "영화 <생일>을 보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말고도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가족, 친구, 이웃 모두가 세월호 참사로 힘들어하면서도 서로를 위로하죠. 저는 이렇게 모두가 세월호를 기억하면서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분들 모두 이번 5주기를 통해 세월호가 들춘 현실을 마주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사회가 망각하고 있던 것까지도. 그렇게 모두가 현실을 가슴에 품고서 자신의 봄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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