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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원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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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동명동 화재현장 고성에서 4일 오후 7시 17분 발생한 산불이 속초 시 동명동까지 번졌다.ⓒ 정덕수
 
4일 저녁 속초시 동명동 중앙초등학교.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양양과 속초가 지척이라 해도 이렇게 골목에서 골목으로 빙빙 돌 수밖에 없는 지형적인 조건에서 그것도 밤중이다.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잠을 못 자고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언제 불길이 닥칠지 모르니 잠인들 편히 잘 수 있을까.
 
"대피는 바닷가로 하시기 바랍니다."
 
가두방송인지, 아니면 누군가 확성기를 들고 외치는지 알 수 없지만 똑똑히 들렸다. 그 소리에도 사람들은 아파트 창을 통해서나, 옥상을 올라가서라도 불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샌드위치패널 집으로 뛰어든 남자
  
소방차 속초 동명동에서 처음으로 만난 소방차는 물이 덜어졌는지 호스를 챙겨 어딘가로 출발했다.ⓒ 정덕수
   
취재를 나온 기자들 속초 동명동엔 서울에서 달려 온 걸로 보이는 취재차량이 여러 대 도착해 카메라 등 취재장비를 든 기자들이 보였다.ⓒ 정덕수
 
골목을 돌아 조금 넓은 길로 나서자 소방차가 보였다. 그런데 물이 떨어졌는지 이내 호스를 챙기더니 소방차는 떠났다. 매캐한 연기가 숨이 막히게 했다. 순간적으로 열기를 느껴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앞 소방차가 떠난 지점에서 멀지 않은 산자락에 불길이 번지고 있다.
 
골목에서 여인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가파른 골목길을 내쳐 올라갔다. 한 여인이 주저앉아 "아이고 어떻게 해. 여보 얼른 들어가서 아버님하고 할아버지 영정사진이라도 챙겨와"라고 했다.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가 "알았어. 여기 꼼짝 말고 기다려"라 하더니 샌드위치패널로 지은 걸로 보이는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미 집에서 헛간으로 사용하려고 지었음직한 작은 구조물에 불이 붙어 타는 상황에서 망설임도 없었다.
 
잠시 뒤 몇 가지 물건을 들고 남자가 나왔다. 뭔가 챙겨야 할 게 더 있는지 다시 들어가더니 커다란 액자 위에 몇 가지 물건을 더 들고 나왔다. 남자가 챙겨온 물건을 살피던 여자가 "아버님 영정은"이라 말하며 남자를 보자 "거긴 이미 불이 옮겨 붙어서 가져올 수 없어. 나중에 어떻게 해 봐야지"라며 여자를 부축해 물건을 들고 언덕을 내려갔다.
  
화재현장 속초시 동명동 불당골 언덕 위 가옥 처마 밑에서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정덕수
   
불당골 현장 속초 동명동 불당골을 지도로 확인하고 보니 바로 산너머가 보광사다. 그렇다면 이미 불길은 보광사를 집어 삼켰단 이야긴가?ⓒ 정덕수
   
화재현장 속초시 동명동 불당골 화재현장엔 취재를 나온 언론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소방차도, 군인도 안 보이고 화마 앞에 속초시문화회관 직원들만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정덕수
 
비라도 내리는지 물방울이 날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지만 치솟는 불길과 하늘을 꽉 채운 연기 때문에 별이 떴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때 "저쪽으로 더 갈 수 없어? 저기다 물을 뿌려야 여기로 불길이 안 와"란 소리가 들렸다. 빗방울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었다.
 
불은 불과 10미터도 안 되는 가까운 위치에서 닥치는 대로 태워버리겠다는 욕망을 드러낸 아귀처럼 일렁거리는데, 피할 생각은 그들에겐 추호도 없어 보였다.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섰다. 누군가 긴박한 순간에도 앵두나무를 잘라놓았다. 찬찬히 이글거리는 불빛을 의지해 살펴보니 주변에 있는 나무를 제법 많이 잘라놓았다.
 
소방대원이나 의용소방대원은 되겠지 했던 이들은 젊은 청년들이다. "이 집 주인인가요"라 묻자, "아뇨, 저흰 문화회관 직원입니다"라 했다. 의아해 재차 묻자 "요 아래 속초시문화회관이 있어요. 거기 직원들입니다"라 한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다 지도로 위치부터 확인했다. '불당골', "그래서 여기 점집이나 무당집이 있구나" 하고 혼자 중얼거리곤, 외벽은 멀쩡한데 처마 밑으로 시커먼 연기가 나오는 집을 살폈다. 다행히 미리 대피했는지 인기척은 없다.
 
"소방차가 많이 왔다는데 왜 여긴 안 들어와?"
"여긴 아직 못 오는 거 같아. 어떻게든 끝까지 한번 해봐야지."
"이럴 때 지원 좀 나와 줘야 하는 거 아냐?"
"난들 아나."
"호스 좀 이쪽으로 와서 물을 뿌려주면 좋겠는데."
"아직 저쪽에서 뿌리고 있어."
"아이고, 지금 물만 미리 뿌리면 저 집은 안 타는데…"


"어디서 가스통이라도 터지면 큰일 납니다"
  
속초시문화회관 직원들 화재현장에 근접해 불을 끄고 미리 예방 차원의 물을 뿌리는 작업을 소방대원이 아닌 속초시문화회관 직원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정덕수
   
화재진압 속초시문화회관 직원이라고 자신들의 신분을 밝힌 젊은이들이 불길에 휩싸인 가옥에 물을 뿌리며 불과 맞섰다. 나중에라도 이들을 국가는 챙겨야 된다.ⓒ 정덕수
   
불 타는 서민의 재산 연탄은 가난한 서민들이 겨울을 나는 중요한 난방연료다. 지난 겨울 얼마나 아꼈을까. 그 연탄이 화마에 속절없이 탄다.ⓒ 정덕수
 
잠시 뒤 호스를 끌고 남자 셋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목소리로 미뤄 속초시문화회관 직원이라고 했던 청년들이다. 그런데 호스가 짧아 원하는 위치까지 물을 뿌리지 못한다. 호스 굵기는 소방용이긴 해도 좀 가늘어 보였다. 어디에서 물을 끌어오는지 모르지만 그나마 그 호스 덕에 주변 몇 집은 화마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때 처마 밑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던 집에서 유리창이 깨지며 불길이 치솟았다. 휴대용가스레인지에 사용하는 가스통이 터지는지 곳곳에서 총 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너무 가깝게 접근하지 마세요. 어디서 가스통이라도 터지면 큰일 납니다" 이 말밖엔 불과 맞서 싸우는 그들에게 해 줄 말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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