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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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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취재를 이어오고 있는 김진선 목포MBC 기자.ⓒ 이희훈
       
세월호 참사 당시 3년차 막내 기자였던 김진선(33) 목포MBC 기자는 이제 어엿한 8년차 팀장이자, 예비 엄마다. 5년 전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동고동락했던 김 기자는 지금도 그들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출산을 2개월여 앞둔 김 기자는 지난 3일 전남 목포를 떠나 경기도 안산까지 출장을 왔다. 단원고 옆에 있는 '치유센터0416 쉼과 힘'에서 사진전을 연 세월호 형제자매 모임을 취재한 김 기자를 다시 <오마이뉴스>가 취재했다. (관련기사: [세월호 5주기-기억과 망각 ①] 유족 형제자매 5명, 카메라를 잡은 이유 http://omn.kr/1ig25)

"손혜원 보도하면서 세월호 때를 계속 떠올렸다"

전남 서남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던 목포MBC는 올해 초 '손혜원 보도'를 계기로 '전국구' 방송으로 거듭났다. SBS에서 지난 1월 손혜원(서울마포구을) 무소속 의원의 목포 문화재거리 투기 의혹을 최초 보도한 뒤, 목포MBC는 '건물 값 4배 폭등' 같은 일부 의혹에 반박하는 지역밀착보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목포MBC 보도를 공유하는 다른 지역 시청자들이 늘면서 유튜브와 페이스북 조회수도 급증했다.(관련기사: SBS 손혜원 의혹 제기, 끝까지 파겠다는 목포MBC  http://omn.kr/1hddp)
 
5년 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희생자 가족들도 목포MBC 뉴스를 SNS로 공유했다. 당시 '서울MBC(MBC 보도본부)'에선 볼 수 없었던 진실이 담겼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서울MBC'의 편향된 보도가 나갔고, 현장에 있던 목포MBC 기자들이 그 멍에를 다 뒤집어 써야 했다.
 
"세월호 때는 (목포MBC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유가족이나 4.16연대 등 관련된 분들이 공유하고 퍼 날랐어요. 하지만 유가족 안에서만 공유되고 일반 시민들이 많이 보진 못하니까, (서울MBC 보도로) 욕먹는 건 현장에서 마주치는 우리였죠."
 
MBC에서 최초 보도한 것으로 드러난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가 대표적이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사고 해역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박영훈 기자를 비롯한 목포MBC 기자들은 구조자 숫자 중복 집계 가능성을 데스크에게 알렸지만 '서울MBC'는 무시했다. (관련기사: [박영훈 기자 기고] 세월호 참사 당일 목포MBC의 좌절... 본사 정말 이상했다 http://omn.kr/o7cp)
 
"서울(MBC)에서는 비인간적인 보도가 나왔지만, 당시 우리 데스크가 중심을 잘 잡았고 박영훈 선배도 해상 사고를 많이 겪어서 잘 알았어요. 우리는 지역에 좀 더 밀착돼 있어 당시 유가족이 언론에 적대적이었지만 취재와 관계없이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같이 자면서 이야기를 듣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한 게 그 뒤에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서울MBC에 가려졌던 목포MBC의 절치부심
 
세월호 참사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취재를 이어오고 있는 김진선 목포MBC 기자가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 사진전을 취재하며 취재원의 말을 집중해 듣고 있다. ⓒ 이희훈
 
'전원 구조 오보' 뒤에도 '서울MBC'의 세월호 보도는 여론의 지탄을 받았지만, 목포MBC 보도는 유가족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목포MBC 보도 역시 서울MBC를 거치며 통째로 사라지거나 왜곡됐다.
 
"목포 팽목항이나 사고 해상에서 2주기, 3주기 같은 행사가 있으면 우리가 촬영해서 서울로 보내는데, 유가족 인터뷰에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으면 (서울에서) 바꾸라고 요구해요. 그냥 슬퍼하면서 '아이들 보고 싶다'는 내용만 나가서, 목포에서 나간 인터뷰와 서울에서 나간 인터뷰가 다른 경우도 있었어요."
 
목포MBC를 비롯한 전국 MBC 기자들이 지난 2017년 김장겸 사장 체제에 맞서 총파업을 벌인 이유다. 하지만 '세월호 보도 참사'에서 드러났던 '서울 중심' 언론 보도의 문제는 올해 초 SBS의 손혜원 보도에서도 반복됐다.
 
"SBS 보도 다음날 모두 충격을 받긴 했지만 팩트(사실관계)들이 좀 이상했어요. 원래 목포 관련한 큰 보도가 나오면 그날부터 바로 따라붙는데, 이번엔 한숨 접고 가자고 하면서 세월호 얘기를 했어요. 세월호 보도 경험이 있는 박영훈 부장이 무조건 따라가면 안 되고 그때를 떠올려서 침착하게 사실 확인부터 하자고 했어요. 처음 (SBS) 보도가 빈틈이 많았는데, 현장을 가보거나 등본만 떼어봐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도 있었어요. 다만 (시청자들) 반응이 좋다고 해서 들뜨는 것도 경계했어요. 보는 사람이 많아지니 더 조심해야 하고 누구를 편드는 것처럼 비칠 수 있으니, 우리는 사실만 보여주고 시청자들이 판단하게 하자고 했죠. 그 과정에서도 세월호 얘기도 많이 하면서 정신 차리자고 했어요."
 
이처럼 세월호 보도 참사는 목포MBC뿐만 아니라 당시 3년차 막내 기자였던 김진선 기자에게도 큰 교훈을 남겼다. 김 기자에게 '기사 결벽증'이 생긴 것도 그때였다.
 
"전원 구조 오보 파장이 워낙 크다보니 사소한 거라도 사실 확인에 집착해 단신 기사 하나 쓰는 데도 오래 걸려요. 똑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고, 우리가 어쨌든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결국 '너네도 똑같구나'라는 소리를 어디에서도 듣고 싶지 않고, 유가족에게도 마찬가지로 실수할까봐 조심스럽고요…."
 
오히려 지나치게 유가족에게 동화하다보니 기사에 감정이 실리면서 데스크에게 "네가 희생자 가족이야?"라는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기자는 늘 중립성과 객관성을 요구받지만, 세월호 취재를 하며 김 기자 생각도 조금 바뀌었다.
 
"중심을 잡는 건 (현장 기자가 아닌) 다른 분이면 좋겠어요. 제 기사를 검토할 데스크는 많아요. 전 현장에서 가족을 맞닥뜨리고 얘기를 듣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현장에서도 객관적으로 이들을 대하면, 이 사람들이 실제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없어요."
  
세월호 참사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취재를 이어오고 있는 김진선 목포MBC 기자.ⓒ 이희훈
 
목포MBC는 지난달 15일부터 매일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그동안 참사와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해 내보내고 있다. 그동안 김 기자가 만난 피해자들 가운데는 지난 2003년 2월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유가족들도 포함돼 있다.
 
"대구 참사 유가족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미안해했어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참사 유가족들이 위로 방문했을 때 (상인동) 유족들이 역할을 잘해서 안전 관리 시스템을 잘 만들었으면 이런 사고가 또 났겠느냐며 화를 냈대요."
 
대구 지하철 참사에 앞서 지난 1995년에도 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해 101명이 숨졌다.
 
"대구 참사 유족들도 국가나 지자체의 안전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싸워왔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지나 세월호가 터졌어요. 선장 하나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총체적인 문제들이 쌓여서, 구조 안 해서, 시스템이 잘못 돼서 아이들이 많이 죽은 게 자기들 탓이라고 미안해 하는 거예요."
 
하지만 김 기자는 정부에 안전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유가족이 아닌 바로 언론의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잊자고 하고 방해 공작을 해도 계속 관심을 이끌어내고 진상 규명이 되도록 관심을 촉구하는 일들이 결국 재발 방지로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당장 우리가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쳐 진상 규명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왜 가족들이 정부에 특별수사대를 요구하는지 전하는 것도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16살 때부터 기자 꿈꿨는데... 돌아온 건 무력감

김 기자의 바람과 달리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은 너무 빨리 식었다.
 
"(세월호 가족들은) 5년이 지났지만 언론은 변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때는 그렇게 반성한다고 하고, 공영방송 파업이 끝났을 때도 기자와 아나운서들이 울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비슷한 사건들이 나면 예전과 똑같이 한다는 거죠. 언론사마다 (재난보도) 교육이나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어요. 우리가 세월호 관련해서는 반성했고 지금도 잊지 않고 신경 쓴다는 것만 보여줄 뿐 다른 취재 영역은 똑같은 것 같아요."
 
김 기자가 인터뷰를 마치고 목포로 떠난 지 1시간쯤 뒤, 자신이 취재한 세월호 보도가 서울MBC에서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을 때 심정을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면서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안에는 김 기자뿐 아니라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며 언론인들이 느꼈던 자괴감이 함축돼 있었다.

"참사 초기 취재했던 내용들이 서울 본사에서 나가지 않았을 때 느낀 점은 큰 '무력감'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16살부터 MBC 기자가 꿈이었거든요. 꿈꾸던 MBC 기자가 됐고 현장의 목소리와 상황을 취재·제작했는데, 그것이 왜곡돼 나가거나 아예 실리지 않는 상황에 맞닥뜨린 거니까요. 사회를 바꾸겠다고 꿈꿔왔던 기자라는 직업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무력감, 회의감, 허탈함, 죄송함 등등이었어요. 추후 현장에서 듣는 유가족들의 '찍어도 안 나갈 거 뭐 하러 취재하느냐'는 아쉬움은 그 다음인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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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인권 분야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