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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할미꽃 동강댐건설을 막은 장한 꽃이 동강할미꽃이다. 그래서일까. 동강할미꽃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곧게 세워 핀다.ⓒ 정덕수
 
"동강댐 건설을 막은 꽃이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국가에서 시행하는 사업을 뭔 꽃이 막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동강할미꽃'이 바로 댐건설을 막아낸 꽃이다.
 
1991년 정선과 영월을 넘어 원주에까지 동강에 댐이 건설된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공식적으로 정부에서 동강댐 건설을 밝혔다. 댐 건설이 공식화되자 수몰 예정지에선 이주가 시작됐다.
 
사람이 떠난 집엔 또 다른 사람이 들락거렸다. 육송으로 짠 방문이 떼어지고, 맷돌, 항아리, 낡은 식기와 나무주걱이나 놋주걱과 같은 들고 나를 수만 있으면 모두 어딘가로 실려 나갔다. 한 집에서 1톤 트럭 하나는 기본적으로 채울 정도로 버려둔 생활도구와 세월의 켜가 쌓인 물건이 나왔다.
 
때론 장정 서너 명 대동하고 나타나 외양간에서 구유를 떼고, 방앗간에서 돌확을 파내기도 했다. 우편물취급소 간판부터 겨울에나 내놓던 점방의 호빵통까지 참으로 다양한 물건들을 탐냈다. 심지어 당시엔 보기 어려워진 간장병과 소주병도 그들은 모두 가져갔다.
 
몇 년에 거친 논란 끝에 2001년 동강댐(영월댐)이 백지화 됐다. 당시 찬반양론으로 분열 양상을 보이던 영월과 정선 주민들도 지금은 그 상처들을 치유해 누군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기억도 아련하겠다. 습관처럼 1년 만에 찾아간 이방인으로서야 그런 상처에 대한 잔상조차 느낄 틈이나 여지가 없다. 다만 동강은 시푸른 물이 굽이돌아 흐르고 있었다.
  
동강할미꽃 석회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동강할미꽃은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특산종이다.ⓒ 정덕수
 
동강을 매년 찾은 이유는 따로 있다. 정선군 일대에는 먹을 수 있는 꽃 참꽃(진달래)과 너무도 많이 닮은 개꽃(산철쭉)이 진달래가 지고 난 뒤 강변 바위에 지천으로 피어난다. 그때면 강변은 온통 붉은 물결이 녹색으로 살을 찌워가는 강변에 일렁거린다.
 
진달래를 닮았지만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는 꽃이라, 참꽃의 반대되는 표현인 개꽃으로 지역주민들은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 개꽃의 아름다움에 취한 난 어머니가 돌아가신 1985년부터 매년 봄 정선 일대 강변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특이한 색상을 지닌, 그러면서도 분명히 모양은 할미꽃인 꽃을 만났다. 이 꽃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설악산 주변에서도 발견되던 분홍할미꽃 정도로 이해하는 이들뿐이었다. 물론 동강할미꽃은 분홍색도 있다. 흰색과 은빛, 분홍, 연한 보라색, 짙은 보라색까지 정말 다양한 색감을 지닌 꽃이 동강할미꽃이다.
 
도감을 뒤적여도 찾을 수 없는 꽃, 그런데 실제로 존재하는 꽃이었던 동강할미꽃이 동강댐이 건설되는 걸 막은 주역이 된다. 그리고 그만큼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려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는 반증이다.
 
물론 동강할미꽃 외에도 동강댐건설을 막은 공로를 인정해야 할 대상이 또 있다. 자연지형적인 조건이다. 이는 동강할미꽃의 생태와도 관련 있다.

정선과 영월은 석회암지대라 곳곳에 동굴이 있다. 지금도 발견되지 않은 천연동굴이 정선에서 영월로 이어지는 강변에 숨어 있으리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댐을 건설했을 때, 어딘가에 있을 동굴로 인해 발생할 재앙도 염두에 둘 필요가 분명히 있었다.
  
동강할미꽃 석회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동강할미꽃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무리한 욕심을 부려 묵은 잎을 모두 떼버리고, 주변의 다른 풀까지 제거하는 경우가 많다. 있는 그대로 촬영해도 얼마든지 멋진 작품인데….ⓒ 정덕수
 
이제까지 동강할미꽃을 몰랐던 이라도 사진을 보았으니 봄철 산소에 핀 할미꽃과는 분명히 구조적 형태나 색상 등이 다르다는 걸 공감하게 되었겠다. 하지만 당시엔 어떤 도감에도 이 꽃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오지 중의 오지인, 더구나 탄광촌인 이곳을 식물학자들이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테니 당연한 이야기겠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이라는 말이 있다. 꼬불꼬불 사려놓은 것 같은 양의 창자를 이르는 말로, 정선과 영월 일대 길(路)이 구절양장 그대로였던 시절이 있다. 걷는 맛이 남 다른 곳이지만, 그만큼 속살 쉬 드러내지 않는 지리적 특성으로 외지인의 발길이 적었다.
 
'정선아라리'라는 특정 지역 이름을 오롯이 살린 우리 소리가 있다. 정선과 영월, 평창을 잇고, 백두대간을 경계로 태백과 울진, 삼척, 동해, 강릉 등으로 이어지는 준령과 뼝대(깎아지른 듯 높이 솟구친 절벽을 이르는 강원도의 방언) 아득한 지형에 가두어진 고장이 정선이다. 그런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야 했던 민초들의 애환을 담은 가락이다.
 
난 그렇게 접근성도 불편했던 정선군을 사북부터 고한을 거쳐 정선읍까지, 구절리에서 여량을 지나 정선읍까지, 매년 물길이 있는 곳이면 찾아갔다. 색도, 피는 자리도 특이한 할미꽃을 제대로 보려고 이듬해 가수리로 가는 뼝대를 개꽃이 피기도 전인 4월 초 찾았다. 하지만 턱도 없이 늦어 이미 대부분 꽃은 진 뒤였다. 겨우 몇 송이 늦게 핀 할미꽃을 만나는 걸로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인연이 된 동강할미꽃을 올해도 만날 약속을 친구와 미리 해두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동강할미꽃이 지금 한창일 텐데 시간이 어때?" 친구에게 말하자, "아직 잘 모르지만 솔직히 요즘 바빠서 정확하게 약속은 못해, 하지만 주중에 어떻게든 시간이 되면 연락을 다시 할게"라 대답했다.
  
동강할미꽃 먼 풍경까지 끌어와 화면을 채워도 좋고, 동강할미꽃만 촬영해도 좋다. 다만 이렇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면.ⓒ 정덕수
   
동강할미꽃 석회암 바위는 배경인 동시에 동강할미꽃의 존재 자체다. 때 맞춰 싹을 올린 무릇이 전혀 다른 느낌의 동강할미꽃이 되도록 만들었다.ⓒ 정덕수
 
아침 9시 반 조금 넘었는데 친구가 전화를 해 거두절미 "지금 가자"고 한다. "지금 글 하나 올리는 중인데 30분 뒤에 출발하면 좋겠어." 그리 대답하고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 하고 나섰다. 오로지 동강할미꽃(pulsatilla tongkangensis Y,N.Lee et T.C.Lee) 하나만을 만나려는 주중행보다.
 
동강할미꽃을 촬영하러 나선 길은 예전과 달리 길이 많이 좋아졌다. 비포장이던 신작로는 포장이 되는가 싶었는데, 최근엔 터널이 뚫리고 새로운 교량이 놓이는 등 고속도로 못지않게 좋아졌다.
 
그런데 출발부터 정선까지는 제대로 갔는데,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전혀 다른 고갯길로 올라가고 말았다. 만지산 자락에 집을 두고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몇 년째 생활하며 사진 촬영을 하시는 조문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만났던 탓이다. '귤암리'라 지명을 기억해냈고, 거기다 정영신 작가님과 통화까지 해 귤암리란 지명을 거듭 확인한 뒤 친구 전화기로 강원도 사투리 유창한 안내를 받게 된 탓이다.
 
가수리로 가는 길인 건 뚜렷하게 기억하면서 귤암리는 왜 전혀 다른 마을로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평창 미탄으로 빠지는 다릿목 솔치삼거리에서야 이정표에 귤암리가 먼저고 가수리가 다음이란 걸 확인했다.
 
동강댐건설을 막아낸 장한 꽃을 올해도 벌써부터 많은 이들이 찾았다. 사다리까지 가져와 촬영하던 풍경은 이젠 사라졌고, 몰래 캐가는 걸 감시하던 무인카메라도 치웠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찾으며 오히려 감시나 통제보다 사람의 눈이 더 두렵게 됐다.
  
동강할미꽃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동강할미꽃이 곱다. 볕이 좋은 날 솜털 보송보송한 동강할미꽃이 어미가 물고 올 먹이를 기다리는 어린 새의 주둥이 같다.ⓒ 정덕수
   
동강할미꽃 봄의 신부가 손에 든 꽃다발이라도 좋겠다. 자연 그대로의 동강할미꽃은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정덕수
   
동강할미꽃 한 해 전 먼저 봄을 만났던 잎은 포근하게 막 꽃을 피운 동강할미꽃을 감싸준다. 대를 이어 꽃이 지고 자란 잎은 내년에 다시 그 역할을 해낼 것이다.ⓒ 정덕수
 
친구와 두 시간 뼝대를 기웃거리며 휘돌았다. 올해 또 어떤 인연으로 정선을 다시 찾을지 모르지만, 조만간 개꽃을 만나러 친구와 나서기 전까진 한동안 정선에 대해선 잊은 듯 살아갈 충분한 양식은 채웠다. 하기야 개꽃으로 부르던 꽃이 수달래도 물철쭉도 아니란 걸 안다. 개꽃이 산철쭉으로 양양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만날 수 있다.
 
5월 초 정선을 찾던 이유였던 어머니 산소도 오래전 형제들과 상의 끝에 파묘를 해 화장 한 뒤 아버님 모신 곳에 모셨다. 산철쭉도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된 이젠 5월에 정선을 다시 찾을 이유는 딱히 없다. 다만 살다 불현듯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나서게 될지는 장담 못한다. 그게 인생이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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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