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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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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뭐 합니까? (일본 대사는) 맨날 밥이나 먹고 잠자러 왔어요? 일본 정부에 전하세요. 내가 전 세계로 다니면서 (소녀상) 동상을 세울 테니, 다 세우기 전에 하루빨리 일본 정부에 말을 해서 사죄하고 배상하라. 알겠습니까?"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보라색 저고리를 입은 채 인자하게 웃고만 있을 뿐, 그는 영정 속 주인공이 돼 아무런 말이 없었다.
 
천여 명의 시민들은 마지막 길을 떠나는 김복동 할머니를 향해 "잘 가세요"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이날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복스러운 아이 '복동'... 열넷에 위안부로 끌려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1일 오전 서울시청을 출발해 수요시위가 열리는 옛 일본 대사관 앞을 향해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차와 가고 있다. 시민장 참여자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 이희훈
 
복스러운 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던 김복동 할머니. 그는 1926년 5월 1일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났다. 1940년 불과 열넷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과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했다.
 
1945년 싱가포르에서 일본군 제16사령부 소속 제10 육군병원에서 간호사로 위장당하여 일본 군인들을 살피다 버려진 뒤 미군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1947년에야 겨우겨우 고향에 돌아왔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째 22살 나이다. 이후 김 할머니는 부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고 한평생을 살아왔다.
 
김 할머니는 1992년 3월 67세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는 남은 생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로 살았다.
 
김 할머니는 1993년 6월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전세계에 증언했다. 이후엔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나와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며 남은 생을 보냈다. 그 세월만 만으로 27년이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권에 의해 한일 위안부 협상안이 타결되자 김 할머니는 이 합의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암 투병 중이던 지난해 9월 김 할머니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외교부 앞에 나와 "일본하고는 우리가 싸울 테니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해달라"는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억울하고 분통해 죽지를 못하겠다"라면서 일본대사관 앞에서 호통 치던 김 할머니는 그토록 원하던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받지 못한 채 지난달 28일 우리 곁을 떠났다.
 
94개의 만장이 뒤따르다
  
1일 오전 서울시청을 출발해 수요시위가 열리는 옛 일본 대사관 앞을 향해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차와 시민장 참여자들이 가고 있다. ⓒ 이희훈
  
1일 오전 서울시청을 출발해 수요시위가 열리는 옛 일본 대사관 앞을 향해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차와 시민장 참여자들이 가고 있다. ⓒ 이희훈
   
1일 오전 서울시청을 출발해 수요시위가 열리는 옛 일본 대사관 앞을 향해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차와 시민장 참여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1일 오전 서울시청을 출발해 수요시위가 열리는 옛 일본 대사관 앞을 향해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차와 시민장 참여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김복동 할머니의 운구 차량에는 94개의 만장을 든 시민들이 뒤따랐다. 김 할머니의 나이가 94세라 만장도 94개가 준비됐다.
 
만장에는 '우리의 영웅 김복동!', '전쟁 없는 통일된 나라',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 '일본군 성노예제 해결하라' 등 김 할머니가 그간 해왔던 발언과 그를 기억하는 문구가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만장이 서울시청과 광화문을 지나자, 수천 명의 시민들도 걸음을 멈추고 김 할머니의 마지막을 가만히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이날 오전 6시 30분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이 엄수된 뒤 운구차는 할머니가 생전에 살았던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으로 향했다.

이 자리에서 김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영정을 양손으로 어루만지며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 이렇게 빨리 안 갔어도 좋은데"라며 "먼저 좋은 데 가서 편안히 계세요, 나도 이따가 갈게요"라고 말했다.
 
이후 김 할머니의 운구차량은 노제가 열리는 서울 중구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오전 9시 노제가 열린 뒤 서울 광화문을 지나 일본 대사관 앞으로 향했다.
 
이날 전체 행렬은 두 팔을 벌리고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이끌었다. 그 뒤로 할머니의 영정을 든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뒤따랐다.

빈소부터 할머니의 곁을 지켰던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수개월동안 영상으로 담아낸 미디어몽구 김정환씨도 할머니의 유해를 모신 운구차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운구차 뒤편에는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님 나비 되어 훨훨 날아가소서'라는 플래카드가 뒤따랐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할머니 평생 지켰던 공간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오전 10시 본격적인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소녀상 옆 의자에 앉아 "우리는 열다섯 나이에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했다"면서 "반드시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아야 한다, 여전히 (일본의) 망언이 이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영결식에서 호상 인사를 맡은 윤미향 대표는 "김 할머니가 전쟁도 이겨내고,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편견도 모두 이겨내 죽음을 딛고 희망의 나비로 되살아나고 있음이 느껴진다"면서 "할머니의 장례식을 찾은 많은 이들을 보며 할머니의 죽음이 사람들의 행동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일 오전 서울시청을 출발해 수요시위가 열리는 옛 일본 대사관 앞을 향해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차와 시민장 참여자들이 가고 있다. ⓒ 이희훈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윤 대표는 이어 "김복동 할머니는 차곡차곡 모아놓은 통장을 탈탈 털어서 전 세계 전쟁 피해자들에게 기부하고, 당신들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수많은 생명들에게 전 재산을 모두 내놓았다"면서 "당신이 죽을 때는 재일조선인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면서 죽을 때 쓰라고 남겨놓은 돈마저 모두 기부했다"라고 덧붙였다.
 
윤 대표는 "김복동 할머니는 자신이 가는 길은 걱정하지 않았다"면서 "실제로 수천 명이 장례위원이 되었고 수많은 언론과 방송이 할머니의 삶을 보여줬다, 수많은 사람들이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통해 평화가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배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는 이날 오후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으로 향해 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곁에 영면한다.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시민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한편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것과 관련해 애도 표명 없이 대사관의 안전 문제를 거론했다"면서 "니시무라 야스토시 관방부장관이 영결식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의 안녕을 방해하거나 위엄을 침해한다면 외교 관계에 관한 빈 조약의 규정에 비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일본 측의 우려와 달리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에서는 시민들의 절제된 슬픔만 이어졌을 뿐 충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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