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사회

포토뉴스

 
"제가 한 음해를 해명하면 또 다른 음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거미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거미줄과 싸울 것이 아니라, 거미줄을 친 거미를 직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서지현 검사는 미투 폭로의 시작점이 아니라 끓는점이다.ⓒ 이희훈

"부끄러운 생각이 먼저 드는데요, 제가 '올해의 인물'이라기보다는 '미투(#metoo)'가 올해 우리사회에서 큰 울림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서지현 검사의 소감 첫 문장은 <오마이뉴스>의 의도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2018년 '올해의 인물'로 '서지현과 미투 폭로자들'을 선정했다. 서 검사의 소감은 이렇게 이어졌다.
 
"미투는 공격적인 폭로가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운동이고, 저는 누구 한 사람을 공격하려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서야 할 검찰을,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우리가 바꿔나아가야 할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에 공감하고, 성폭력이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 사회의 문제였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함께 바꿔가야 할 세상을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0℃
 
서 검사는 지난 1월 29일 JTBC <뉴스룸>에 직접 출연해 지난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당시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이후 인사 보복 피해까지 입었다고 폭로했다.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미투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후 정치권력, 문화권력, 학문권력에 의한 수많은 피해사례가 연이어 폭로됐다.
 
사실 어찌보면 올해의 인물 '서지현과 미투 폭로자들'은 동어반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가 굳이 서지현이라는 이름을 따로 뽑아내 명시한 이유는, 그 세 글자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서도 수많은 '용기'가 있었다. 올해 미투 이전에도 많은 피해자들의 호소가 있었다. 유력 정치인이 "딸 같아 그랬다"며 여성 캐디를 성추행한 사건, 국회의원이 대학생들 앞에서 특정 직업군을 성희롱한 사건 등 수많은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법 앞에, 미디어 앞에 나섰다. 다만 그들은 분리돼 있었다. 그때마다 사회는 시끄러웠고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미투와 같은 사회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 검사로 촉발된 미투는 단지 '시작점'이 아니라 섭씨 100℃를 만들어낸 '끓는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쌓여온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그동안 숨죽여온 피해자들의 행동을 더해내는 마지막 발화의 스위치를 서 검사가 누른 것이다.
 
연말 수많은 인터뷰 요청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만큼 미투가 올해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는 방증이다. 서 검사와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서면으로 적는 만큼 서 검사는 보다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먼저 미투 이후에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물었다. 좀 조심스러웠다. 성폭력을 폭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우려와 달리 서 검사는 담담하게 답을 써서 보냈다.
 
- 올 초 미투에 나선 이후 삶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아직 출근을 하지 못하고, 집밖을 거의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빼면 특별히 저 자신이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처음 입을 열기로 결심했을 때, '검사도 변호사도 하지 못할 것이다, 평생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결심과 지금의 제 삶이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때론 행복하고 때론 슬프고, 때론 희망을 갖고 때론 절망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그냥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미투를 하기 전 예상하거나 걱정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었나요?
"제가 입을 열면 검찰에서는 제 업무능력, 인간관계 등을 음해하고 다른 목적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예상과 너무나 똑같이 음해하고, '인사불만으로 벌인 일이다', '정치 하려고 벌인 일이다'는 주장을 여전히 계속 하고 있어요.
 
실은 예상과 너무 정확히 똑같아서 처음에는 우습기도 했어요. 이렇게 창의력이 없나 싶기도 하고... '거짓의 힘은 진실의 힘보다는 약할 테니, 그런 헛소리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내 업무능력이나 인간관계에 부끄러움이 없고, 15년 검사생활을 했으니 내가 그런 음해들을 다 증명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런 음해가 너무 효과적으로 작동해서 많은 사람이 그 말을 믿는 것을 보고, 그렇게 구태적인 음해 매뉴얼을 계속 작동시키는 것은 이유가 다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죠."
 
용기 + 맷집
 
서 검사의 말은 어쩌면 미투에는 폭로에 나서는 용기보다 그 이후 상황을 헤쳐나갈 맷집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게 2018년 미투가 남긴 최대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서 검사는 이 상황을 '거미줄과 거미'로 설명했다.
 
- 말씀하신 대로 미투 이후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축시키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서 검사님도 많은 음해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극복하고 있으신가요?
"제가 한 음해를 해명하면 또 다른 음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거미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쳐봤자 점점 더 저를 옭아매서 언젠가는 목숨을 앗아가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이제는 거미줄과 싸울 것이 아니라, 거미줄을 친 거미를 직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피해자의 업무능력을, 인간관계를, 평소 생활을 문제삼는 것은 너무나 우스운 일이잖아요. 저는 제 업무능력, 인간관계, 생활태도 등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지만, 제가 업무능력 등이 나빴다고 한들 그것이 범죄를 당해도 되고, 입을 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아니잖아요.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수치, 모욕, 공포, 고통을 가해온 것이죠."
 
- 그 거미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작게는 가해자와 검찰, 크게는 이 사회라고 생각해요. 왜 이토록 피해자들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참 많이 고민하던 중, 한 책을 읽었어요. 성인의 29%가 에이즈 감염돼 성인 평균 기대수명이 61살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2011년 치료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공공자금으로 무상 에이즈 치료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후, 한 시골 지역을 조사한 결과 불과 7년만에 기대수명이 12년이나 증가했대요. 저자는 묻습니다. '이 지역 주민들은 그동안 에이즈 때문에 죽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치료약을 공공자금으로 제공하지 못했던 공동체로 인해 죽었던 것일까요.'
 
저 역시 묻고 싶습니다. 피해자들은 그동안 성폭력 피해로 인해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받았을까요, 아니면 성폭력을 방치하고, 가해자를 두둔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비난해온 공동체로 인해 입을 열지도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까요? 피해자들을 입을 열 수 없게 만든 것은 그들의 나약함과 두려움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피해사실을, 진실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그들을 꽃뱀, 창녀 등으로 부르며 의심하고 비난해온 이 잔인한 공동체 때문이었을까요?"
 
서 검사는 미투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문제가 된다. 서 검사는 미투를 통해 한국사회에 일어난 변화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법과 제도는 거의 변한 것이 없지만, 사람들의 생각 속에 성폭력이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 가해자들을 두둔하고 피해자들을 비난해왔던 문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미투는 여성들이 약자들이 더 이상 성폭력에 침묵하지 않겠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인간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미투 자체가 무슨 성공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출발점, 시작에 불과한 것이고, 한국사회는 이제 그 변화를 막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스스로를 사랑하자"
 
"그런데 왜 제가 피해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요? 이제는 국가가,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지현 검사는 미투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발견했다.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 이희훈

서면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을 적으면서 서 검사가 말한 첫 방송 인터뷰에 나선 이유 세 가지가 떠올랐다. 그는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또 '최근 가해자가 종교에 귀의를 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니는데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그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나섰다고 했다.
 
이 가운데 그의 마지막 말이 다른 피해자들에게, 또 한국사회에 가장 큰 울림을 준 말로 손꼽힌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어떤 말이 하고 싶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질문을 하자 서 검사는 "그런데 왜 제가 피해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요?"라고 반문했다.
 
- 미투에 나설 때 피해자들에게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셨습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이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십니까?
"사실 이 질문은 모든 언론 인터뷰 때마다 하시는 공통된 질문이에요. 그런데 왜 제가 피해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요? 이제는 국가가,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피해자들에게 할 말이 없어요. 용기 내서 입을 열고 나오라고 할까요? 아니면 입을 열고 나왔을 때,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평생 절대 입을 열지 말라고 할까요?
 
범죄자가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가 보호되고, 그렇게 정의가 이길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그 법과 제도가 제대로 적용되도록 하는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져서 피해자들이 큰 용기를 굳이 내지 않고도 자유롭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어져야 하는 것이지, 피해자들에게 '용기 내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로 생존해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굳이 한마디를 해야 한다면, '스스로를 사랑하자'는 것이에요. '당신이 최대한의 용기로 생존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은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당신은 가해자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구요."  
댓글2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전국언론노조 오마이뉴스지부장. 차이가 차별을 만들지 않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