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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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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계량기는 미관상 건물의 노출면에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택간 간격이 좁은 곳 많아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틈으로 들어가 검침하는 일이 허다하다. ⓒ 이희훈
김영애씨는 검침을 돌 때는 하루 평균 약 700~1000호를 방문한다. 전체 약 4600호를 돌아야 하고 검침이 끝나면 점검과 고지서 송달 업무를 해야 한다. ⓒ 이희훈
"속도 메슥거리고 머리가 다 띵해요. 이러다 죽겠다 싶다니까요."

15년차 도시가스 점검검침원 김영애(51)씨는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한 번 훔치며 말했다. 도시가스 점검과 검침을 하며 15번의 여름을 보낸 그이지만 요즘 같은 폭염은 처음이라고 했다. 손수건이 지나가지 못 한 그의 목과 양 팔에는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3일 오전 11시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온도는 섭씨 35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체감온도는 37도였다. 하지만 아침사이 달궈진 아스팔트가 내뿜는 지열은 체감온도를 더 높이고 있었다. 단독주택과 오피스텔이 많은 중곡동 골목에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골목에 "가스 검침하러 왔습니다"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김영애씨가 벨을 누르자 '띡'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는 단독주택의 대문을 지나 마당에 난 잡초와 나무 등을 헤집고 건물 뒤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PDA에 계량기 번호를 넣었다. 그나마 이는 수월한 곳이었다. 검침을 위해 햇볕으로 달궈진 주차장과 창고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음식물과 각종 생활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치운 채 철문을 열고 들어가, 높은 턱을 올라야만 계량기를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철문이 낮아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검침을 하고 내려오다 나무뿌리에 걸려 발이 삐끗하기도 했다.
셔터 안 쪽에 있는 계량기의 검침을 마치고 힘겹게 다시 셔터를 내리고 있다. ⓒ 이희훈
검침을 마치고 통로를 겨우 빠져나오고 있는 김영애씨. ⓒ 이희훈
김영애씨는 이 곳에서 검침을 하기위해 낡은 사다리를 오르다 사다리가 부러져 허리를 다쳤다. 건물주의 배려로 철재 사다리로 바뀌었지만 검침환경이 열악한 곳이 많았다. ⓒ 이희훈
하루 8시간 700~1000개 검침 '폭염 노동', "물도 사치"

벽과 벽 사이를 오가는 업무를 김씨는 오전 9시 10분부터 오후 5시 45분까지 꼬박 해야 한다. 이날 700~1000개의 가스 계량기 검침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8시간 '폭염노동'을 해야 하지만 김영애씨는 사실상 맨 몸이었다. 쿨토시, 얼음조끼, 휴대용 선풍기는커녕 물통도 없다. 검은색 캡모자와 손수건이 전부였다. 김씨는 "가방에 가스점검기, 검침용 PDA단말기 등이 담겨있다"라며 "이것만 해도 무게가 상당한데 물은 사치다"라고 말했다.

폭염시 대낮 야외 활동에는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검침원에게 이는 불가능하다. 김씨는 "집집마다 돌아다녀야 하는데 물을 많이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가야한다"라며 "동사무소나 교회 화장실 아니면 가기 힘들다"고 했다. 오전 9시 10분부터 땡볕에 있었지만 김씨가 섭취한 수분은 오전 10시 30분쯤 주민에게 얻어 마신 물 한 컵이 전부였다.
김영애씨는 검침을 하던 중 추윤구 광진구 의원을 만나 검침원들의 민원을 전달했다. 유일한 휴식 공간인 주민센터에 휴게실이 없어져 혹한,혹서기에 검침원들의 휴식 공간이 꼭 마련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 이희훈
김영애씨가 검침 도중 고객의 명의 변경 요청을 하자 자세히 방법을 안내해 주고 있다. ⓒ 이희훈
"그러다 죽어."

주택들을 돌며 검침을 하던 중 마주친 80대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런 날에는 일 좀 안 하면 안 되냐"며 "폭염으로 사람이 죽어난다는데 뭐하는거냐"고 말했다. 양산과 휴대용 선풍기를 든 주민은 김씨에게 "더운데 어떻게 다니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김씨는 "가스 검침기간이잖아요"라며 "할당량 채우기 전에 사무실 못 들어가요"라고 말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시간이 지체됐는지 김영애씨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잠시 숨을 돌리고 싶어도 몸을 숨길 그늘조차 없었다. 그는 "중곡4동 주민센터 4층에 검침원들이 모여 쉴 수 있는 작은 카페가 있었는데 올해 없어졌다"며 "1층 도서관에 무더위 쉼터가 생겼지만, 우리가 들어가서 한숨 돌리기에는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그는 "한 번은 어질어질해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있기도 했다"며 "참을 수 없이 더운 날에는 고객들이 준 페트병 물을 다리 사이나 옆구리 사이에 둔 채 있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캡모자를 쓰고 다니다보니 햇볕에 머리가 그대로 노출된다"며 "뒷골이 땡긴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다고 다른 모자를 쓰면 머리가 더워서 미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축 빌라도 가스계량기는 건물 뒤편에 숨겨져 있다. 좁은 통로를 지나야 검침이 가능하다. ⓒ 이희훈
허리를 숙여 들어간 쪽문 안에는 폐기물들이 쌓여 있다. 그 틈을 지나 미끄러운 바닥 위를 건너야 계량기를 겨우 확인 할 수 있었다. ⓒ 이희훈
김영애씨는 15년째 같은 지역을 검침하고 있다. 계량기가 있는 위치는 거주자 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다. ⓒ 이희훈
김씨에게 이 같은 '폭염노동'은 일상이다. 검침이 끝난다고 야외 업무가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200~300가구씩 방문해 가스가 새는지 확인하는 점검기간이 있다. 이후 지로용지를 집집마다 배달하는 송달 업무도 해야 한다. 집이 비어, 점검이나 검침을 못 한 곳도 중간중간 방문해야 한다. 김씨는 이렇게 15년을 살았다.

김씨는 "서울시와 서울시의 위탁을 받은 예스코는 별다른 폭염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그러는 사이 도시가스 검침원들이 열사병으로 쓰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동료 중 한 명은 폭염에도 중곡동을 돌다가, 어지러움을 느껴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는 "햇볕이 뜨거운 2~3시에는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축축해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그는 "검침이나 점검을 위해 집을 방문해도 고객들이 안 계셔서 헛걸음할 때가 있다"며 "업무시간을 앞당기거나 저녁에 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폭염이다 보니 가스 사용량이 적다"며 "7~8월만 계량기를 검침하지 않고 전달이나 전년 고지금액을 기준으로 청구하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폭염에 일하다 검침원 한 명 죽어야 대책 세울까요?"
체감 온도가 42도에 육박한 날씨에 검침원 김영애씨는 뜨거운 햋빛을 피할 곳이 없었다. 구석진 계량기가 있는 건물 틈사이 숫자를 보는 순간이 잠시였다. 김씨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 방울을 닦으면서도 폭염속 근무하는 동료들의 휴식을 걱정했다. ⓒ 이희훈
폭염 노동을 견디다 못 한 도시가스 검침원들은 지난 2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도시가스 업무를 위탁받은 회사들에게 폭염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다녀온 뒤에도 폭염노동을 한 김씨는 기자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긴 채 중곡동 골목으로 떠났다.

"검침원들끼리 아침에 나가면서 '살아남자'라는 이야기를 해요. 제가 일하다 119에 실려 가면 해결이 될까요? 도시가스 검침원 중 한 명이 일하다 죽어야 서울시와 회사는 폭염대책을 세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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