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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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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이른바 땅콩회항 사태를 경험했던 대한항공 직원들은 이번에는 그때 침묵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단체 메신저 창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촛불과 가면. 2006년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2018년 대한민국에서 촛불을 만나 <대한항공판 브이 포 벤데타>가 시작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긴급 캠페인을 통해 그들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응원(좋은 기사 원고료)은 대한항공 직원들의 저항에 사용됩니다. (응원하기) http://omn.kr/r5sw [편집자말]
"조양호 일가 OUT, 갑질 STOP" 3차 촛불집회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대한항공직원연대 주최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STOP 3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권우성
대한항공 빌딩앞, "조양호 일가 OUT, 갑질 STOP"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STOP 3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직원과 시민들이 행진을 한 뒤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있다.ⓒ 권우성
18일 오후 8시 30분, 광화문 앞 도로에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만들어졌다. 가면을 쓰고 피켓을 든 대한항공 직원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행진에 나선 것. 그들이 향한 곳은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이었다. 시청을 지나 덕수궁을 거쳐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조씨 일가 물러나라" 구호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대한항공 익명 채팅방에서 '무소유'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 승무원은 회사를 등진 채 마이크를 들었다. 하늘색 재킷과 베이지색 치마, 목에 두른 스카프는 그가 대한항공 직원임을 증명했다. 또한 웃음 짓고 있는 '벤데타' 가면과 챙 넓은 모자, 마주하고 있는 동료·시민들이 그의 저항을 응원하고 보호했다. 그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총수 일가에 부치는 편지를 'KOREAN AIR(코리안 에어)' 간판 밑에서 읽어 내려갔다.



"조양호 회장님. '사소한 실수에도 자비를 베풀지 말라. 부끄러운 줄 알아라. 월급으로 피해보상하라'고 하셨죠. 회장님 말씀에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말하겠습니다. 우리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양호 회장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며 본인 월급으로 이 사태에 대한 피해를 보상해야 할 것이고, 퇴진해야 할 것입니다.

조원태 사장님. 13년 만에 격려금과 연차수당 지급하셨죠. 그리고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직원 휴가 사용을 장려해 (문제가) 개선됐다고 하셨죠. 언제 휴가를 장려해왔습니까. 직종 가리지 않고 모두 연차 휴가 100일 이상씩 쌓여 있고, 객실 승무원의 경우 이번에 받은 휴가는 고작 이틀입니다. 격려금 필요 없으니 사장직 내려놓으십쇼.

조현아씨는 땅콩사건 때 '직원과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왜 슬그머니 복귀했나요. 직원과 국민들이 그리 우스웠습니까. 두 번 다시 얼굴 보지 맙시다. 조현민씨. 휴가간다고 찾지 말라고 했었죠. 무한대로 휴가를 줄 테니 다시는 한국을 찾지 말고 당신 나라 미국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의 짧지만 강렬한 편지 낭독에 현장을 찾은 이들은 촛불과 환호로 화답했다. 곧장 "지켜내자 대한항공 조씨 일가 물러나라", "조씨 일가 간신배들 물러나라 물러나라", "갑질 원조 조양호는 퇴진하라 퇴진하라", "국민 기업 한진그룹 지켜내자 지켜내자", "자랑스런 대한항공 지켜내자 지켜내자" 등의 구호가 쏟아졌다. 함성을 마주한 몇몇 불 켜진 대한항공 사무실은 그저 고요했다.

"조양호 일가 OUT, 갑질 STOP" 거리행진 3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직원과 시민들이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까지 행진하고 있다.ⓒ 권우성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STOP 3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직원과 시민들이 행진을 한 뒤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있다.ⓒ 권우성
어깨동무한 대한항공 직원들 '이젠 든든한 동지'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STOP 3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직원과 시민들이 행진을 한 뒤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있다.ⓒ 권우성
무대 위 오른 승무원의 용기

편지를 읽은 승무원 '무소유'는 앞서 오후 7시 30분 세종로공원에서 시작된 대한항공 3차 촛불집회의 사회를 맡았다. 이전까지 사회를 맡았던 박창진 전 사무장이 비행 일정으로 3차 집회 사회를 볼 수 없게 되자, 그가 용기를 내 무대 위에 오른 것이다. "너무 떨린다"는 말로 처음 입을 연 그는 "오늘이 5.18이다. 5.18 희생자의 정신을 본받아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하지 않겠나"라며 이내 힘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날 그의 파트너는 변영주 영화감독이었다. 변 감독은 "사실 제게 집회 사회를 요청하신 분을 잘 모른다"라며 "며칠 전 밤에 집에 갔더니 문 앞에 쪽지와 (대한항공) 머리핀, 그리고 '갑질 근절 함께해요' 스티커가 붙어 있더라. 쪽지에는 '네가 시민이면 나와라'라고 적혀 있길래 그래서 오늘 나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 감독은 "바로 이곳에서 중요하고 용감한 일을 하시는 분들과 한 편임을 증명하게 돼 정말 영광이다"라며 "우리를 안전하게 이동시켜주는 고마운 분들이 보다 더 우리 승객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잘못된 사람들을 교화시키자"라고 외쳤다. 그는 "이명희의 악지르는 모습을 보며 엑소시스트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분 꼭 캐스팅하고 싶다"라고 말해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자유발언 경청하는 변영주 감독과 '무소유' 공동사회를 맡은 변영주 감독과 대한항공 익명 대화방에서 '무소유'로 활동하는 직원이 자유발언에 나선 한 직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권우성
대한항공 익명 대화방에서 '무소유'로 활동하는 직원이 사회를 보고 있다.ⓒ 권우성
이날 두 사람이 익명 채팅방에서 화제가 됐던 '총수 일가 삼행시'를 읊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지기도 했다. 아래는 이날 두 사람이 읽어 내려간 조중훈, 조양호, 이명희,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 삼행시다.

조씨 가문에 먹칠한 놈
중요한 일 맡기기 전에
훈련 좀 더 시킬 걸

조상 잘 만나 대기업 회장 됐으면
양심껏 잘 운영해야지
호시탐탐 밀수만 하면 되냐

이런 갑질 처음보네
명색이 대기업 사모님이
희극 한 편 보는 것 같소

조아린 머리로 대충 사과하며
현안은 무시하고 다시 업무 복귀?
아무도 인정할 수 없다

조사 좀 받자
원칙 무시하고 인하대 편입하여
태연하게 졸업 했다지

조명 받으니 좋냐?
현존하는 최고 갑질 보고
민심은 뿔났다

가면 뒤 눈물... "제 꿈은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이날 집회에는 1000여 명의 직원과 시민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두 집회의 약 2배 규모다.

직원들의 무대 위 발언은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 직원은 그 동안 용기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대한항공을 위해 거리로 나온 상황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익명 채팅방 닉네임) '메이비'입니다. 저는 세상 모든 일이 귀찮아서 집에서도 누워만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제가 비가 내리고 보복이 두려워도 이렇게 나와서 발언할 수밖에 없었는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조현민 물컵 사건이 이슈화된 후, 한 친구가 제게 그랬습니다. '너희 회사 직원들은 왜 그러고 사냐. 몇 년 전 땅콩회항 때라도 목소리를 냈으면 (총수 일가가) 너희에게 소리지르고 너희를 무시했겠느냐'고요. 저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 사실이었으니까요.

박창진 사무장님이 힘든 싸움을 하시고, 우리 사우들이 목숨을 포기할 때도 저는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뿐, 말도 안 되는 비용 절감과 인원 감축을 강요받고도 그저 술자리에서 푸념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머슴이나 노예가 아니라 힘들게 노력해 이 자리에 오게 된 직원이다'라고 말할 용기를 못냈습니다."

"조양호 일가 OUT, 갑질 STOP" 3차 촛불집회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대한항공직원연대 주최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STOP 3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권우성
대한항공 빌딩앞, "조양호 일가 OUT, 갑질 STOP"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대한항공직원연대 주최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STOP 3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직원과 시민들이 행진을 한 뒤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있다.ⓒ 권우성
말을 이어가던 '메이비'가 눈물을 흘리자 집회 참석자들은 박수로 위로했다. 그는 "인터넷 댓글 중 가장 아픈 말은 '창피하니까 대한 두 글자 빼라. 태극기 떼고 땅콩항공으로 개명하라'와 같은 이야기였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대한항공에 다니고 싶습니다. 제가 꿈꿨던 대한항공은 창피한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대한항공 입사는 저의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이 회사에 들어와 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총수 일가는 제 꿈을 한 순간에 이 나라의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권리를 지키고 우리의 동료를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대한항공을 지켜야 합니다. 이 싸움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할 것입니다. 그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고, 우리는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믿고 꾸준히, 그리고 그들이 질릴 정도로 즐겁게 싸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민 여러분과 이 자리에 나오신 기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얼마나 큰 힘인지 모릅니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고 서툰 우리가 왜 여기까지 나왔는지 절박함과 진심을 보시고 계속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긴급 캠페인, 20일 마감

이날 대한항공 직원들은 정부와 국회, 사정기관을 향한 요청도 쏟아냈다. 익명 채팅방 닉네임 '킬러조'는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항공사들은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있어서 노동자의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없다"라며 "예전과 달리 현재는 대한항공 외에도 여러 항공사가 있어 특정 항공사가 파업한다고 해서 국민들 발이 묶이진 않는다. 필수공익사업장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익명 채팅방 닉네임 '인피닛'은 "관세청, 법무부, 국토부, 노동부, 검찰 모두 총수 일가가 법을 이용해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하시는 건가"라며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이 상황을 덮으려고 한다면 누가 법을 지키고 살고 싶겠나"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여러분만 바라보고 있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려선 안 된다"라며 "정확하게 조사하고, 정확하게 밝히고, 정확하게 죗값 치르고, 정확하게 물러나게 해달라"라고 말했다.

이날까지 총 세 차례 집회를 연 대한항공 직원들은 다음 주 4차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대한항공 직원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지난 4일부터 집회 개최를 위한 긴급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은 20일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긴급 캠페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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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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